야코뷔스 캅테인
1. 개요
야코뷔스 캅테인은 네덜란드의 천문학자이다. 1875년부터 1921년까지 흐로닝언 대학교의 천문학 및 역학 이론 교수로 재직하며, 별의 고유 운동 연구와 은하의 별 분포 연구에 기여했다. 캅테인은 케이프 사진 측량법을 통해 캅테인 별을 발견했으며, 별의 고유 운동에 대한 이항성류설을 주장했다. 또한, 은하의 크기를 약 4만 광년으로 추정하는 캅테인 우주 모델을 제시했으나, 성간 매질 흡수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인해 수정되었다. 그는 영국 왕립 천문학회 금메달, 제임스 크레이그 왓슨 메달, 브루스 메달을 수상했으며, 달의 크레이터, 소행성, 캅테인 별, 카프테인 천문 연구소 등이 그의 이름을 기려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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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이름 | 야코뷔스 코르넬리스 카프테인 |
|---|---|
| 출생 | 1851년 1월 19일 |
| 출생지 | 바르네펠트 |
| 사망 | 1922년 6월 18일 |
| 사망지 | 암스테르담 |
| 국적 | 네덜란드 |
| 분야 | 천문학 |
|---|---|
| 알려진 업적 | 은하 회전 증거 발견 |
| 근무 기관 | 레이던 천문대 흐로닝언 대학교 |
|---|---|
| 모교 | 위트레흐트 대학교 |
| 수상 내역 | 왕립천문학회 골드 메달 (1902년) 제임스 크레이그 왓슨 메달 (1913년) 브루스 메달 (191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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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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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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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및 학문적 경력
캅테인은 바르네벨트에서 태어나 1868년 위트레흐트 대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1875년 논문을 마치고 라이덴 천문대에서 3년 동안 근무한 후 흐로닝언 대학교의 천문학 및 이론 역학 교수가 되었으며, 1921년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1888년에는 네덜란드 왕립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1913년에 제임스 크레이그 왓슨 메달을 수상했으며, 1921년 은퇴했지만 빌렘 데 시터의 요청으로 라이덴 천문대를 현대 천문학적 표준에 맞게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도왔다.
캅테인은 남반구의 별들을 관측하고 목록을 만들었으며, 별들의 운동을 연구하여 이항성류설을 주장했다. 이는 은하 회전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또한, 은하의 구조에 대한 모델을 제시했으나, 이후 성간 흡수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흐로닝언 대학교의 천문학 연구소, 흐로닝언 시의 거리, 라 팔마에 있는 야코뷔스 캅테인 망원경(JKT)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그의 딸은 천문학자 에이나르 헤르츠스프룽과 결혼했다.
2.1. 케이프 사진 성표와 캅테인 별 발견
1896년부터 1900년까지 캅테인은 케이프타운 왕립 천문대의 데이비드 길이 촬영한 사진 건판을 분석하여 남반구의 별 454,875개의 위치와 등급을 목록화한 《케이프 사진 측량법》을 출판했다. 1897년, 이 작업 도중 캅테인은 고유 운동이 가장 큰 캅테인 별을 발견했다. 이 별은 1916년 버나드 별이 발견되기 전까지 알려진 별들 중 고유 운동이 가장 큰 별이었다.
2.2. 이항성류설과 은하 회전 연구
1904년, 캅테인은 별들의 고유 운동을 연구하면서, 별들이 무작위가 아니라 거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두 개의 흐름으로 나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이항성류설이라고 한다. 캅테인의 연구 결과는 훗날 베르틸 린드블라드와 얀 오르트가 은하 회전을 발견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었으며, 은하수가 회전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최초의 증거가 되었다.
2.3. 캅테인 우주 모델
1906년, 캅테인은 여러 방향에서 별의 개수를 세어 은하의 별 분포를 연구하는 계획을 시작했다. 206개 구역에서 별들의 겉보기 등급, 분광형, 시선 속도, 고유 운동을 측정하는 이 방대한 프로젝트는 천문학에서 최초의 조직적인 통계 분석이었으며, 40개 이상의 천문대가 협력했다.
1922년, 캅테인은 일생의 역작인 항성계의 배열과 운동에 대한 이론의 첫 번째 시도를 출판했다. 이 책에서 그는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밀도가 감소하는 렌즈 모양의 섬 우주를 묘사한 '캅테인 우주' 모델을 제시했다. 캅테인 우주 모델에서 은하는 크기가 약 4만 광년이며, 태양은 은하 중심에서 약 2천 광년 떨어진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고 가정했다. 이 모델은 높은 은하 위도에서는 유효했지만, 성간 매질 흡수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은하 평면에서는 실패했다.
캅테인이 사망한 후, 로버트 트럼플러가 성간 적색화의 양이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은하의 크기는 약 10만 광년, 태양의 위치는 은하 중심에서 약 3만 광년 떨어진 곳으로 수정되었다.
3. 은퇴 이후 및 사망
캅테인은 1913년에 제임스 크레이그 왓슨 메달을 수상했다. 1921년 70세의 나이로 은퇴했지만, 그의 전 제자이자 라이덴 천문대의 책임자인 빌렘 데 시터의 요청으로 라이덴으로 돌아가 천문대를 현대 천문학적 표준에 맞게 업그레이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의 일생의 작품인 《항성계의 배열과 운동에 대한 이론의 첫 번째 시도》는 1922년에 출판되었으며,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밀도가 감소하는 렌즈 모양의 섬 우주를 묘사했는데, 이는 현재 '캅테인 우주'로 알려져 있다. 캅테인은 암스테르담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