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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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복은 전한 시대의 무관으로, 남월과 위만조선 정벌에 참여했다. 천부 신분으로 시작하여 관동의 도적을 토벌하고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했다. 남월 정벌에서 공을 세워 열후에 봉해졌으며, 동월과 민월을 정벌하는 과정에서도 활약했다. 이후 위만조선 정벌에 참여했으나, 순체와의 불화로 인해 관작을 잃고 파면된 후 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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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천부 신분으로 아전이 되었고, 하남의 천거로 어사가 되었다. 관동의 도적들을 토벌하고 윤제를 본받아 과감히 통치하여, 주작도위로 승진하였다. 무제는 양복을 유능하다고 생각하였다.

남월과 동월 정벌에 누선장군으로 참전하여 공을 세워 장량(將梁侯)에 봉해졌다. 좌장군 순체와 함께 조선 정벌에 나섰으나 불화하여 차질을 빚었고, 평정 후 관작을 박탈당하고 병들어 죽었다.

2.1. 초기 생애 및 관직 진출

천부 신분으로 아전이 되었고, 하남의 천거로 어사가 되었다. 관동의 도적 단속을 맡아, 먼저 어사가 된 윤제를 본받아 공격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이러한 연유로, 『한서』는 양복을 혹리 중 한 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군정(군정) 당시, 병서의 흩어진 글들을 모아 편찬한 『병록』을 무제에게 헌상했다.

원수 4년 (기원전 119년)에 중위승에서 주작도위가 되었으며, 무제에게 능력을 인정받았다.

2.2. 남월 정벌

양복은 남월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누선장군(樓船將軍)이 되어 진압에 나섰고, 공을 세워 장량후(將梁侯)에 봉해졌다.

원정 5년(기원전 112년), 남월이 반란을 일으키자, 양복은 루선장군이 되어 예장군에서 남쪽으로 진격하여 남월을 공격했다. 양복은 남월과 처음 교전하여 승리하고, 병량을 탈취하는 등 공을 세웠으며, 복파장군 노박덕 등과 함께 남월을 정복했다.

원정 6년(기원전 111년) 3월 을유에, 남월을 공격하여 적의 날카로운 기세를 꺾고, 견고한 진지를 함락시킨 공적으로 열후(장량후)에 봉해졌다.

2.3. 동월 정벌

무제남월이 반란을 일으키자, 양복은 누선장군(樓船將軍)이 되어 진압에 나섰고, 공을 세워 장량(將梁侯)에 봉해졌다. 동월의 반란 때에도 왕온서와 함께 이를 진압하였다.

양복은 민월이 남월 정벌에 참여하고 싶다고 요청하면서 실제로는 군사를 내지 않은 것을 규탄하며, 민월왕 추여선을 주살할 것을 요청했다. 무제는 병사들의 피로를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지만, 예장의 매령에 주둔시켜 명령을 기다리게 했다. 민월이 반란을 일으키자, 양복은 횡해장군 한설・중위 왕온서 등과 함께 민월을 공격했고, 무림에서 출격했다.

당시 양복은 남월에서의 무공을 자랑했기 때문에, 무제는 위태롭게 여겨 남월에서의 죄나 과실을 꾸짖는 칙서를 양복에게 내렸다. 양복은 두려워하며 죽음을 다해 죄를 갚을 것을 맹세하고 출격했다.

원봉 원년(기원전 110년) 겨울, 한나라 군대가 일제히 민월을 침공했다. 무림 방면에서는 민월의 순북장군이 맞이하여, 양복의 부하 교위(부대장) 수 명을 격파하고, 장사(보좌관)를 죽였다. 그러나 마침내 양복 군의 원종고가 순북장군을 참수했다. 민월은 추여선을 죽이고 항복했다.

2.4. 위만조선 정벌과 몰락

남월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양복은 누선장군(樓船將軍)이 되어 진압에 나섰고, 공을 세워 장량후(將梁侯)에 봉해졌다. 동월의 반란 때에도 왕온서와 함께 이를 진압하였다. 이후 좌장군 순체와 함께 조선 정벌에 나섰으나 불화하여 차질을 빚었고, 평정 후 관작을 박탈당하고 병들어 죽었다.

원봉 2년, 한나라에 따르지 않는 위만조선을 토벌하기 위해 누선장군 양복은 병사 5만 명을 이끌고 제나라에서 발해를 지나 공격해 들어갔다. 양복은 조선왕 우거왕에게 패하여 한때 병사를 잃고 산 속에 숨기도 하였다. 좌장군 순지와 함께 수도 왕검성(평양)을 포위했지만, 항복을 제의한 위만조선은 순지보다 양복에게 마음을 쏟았기 때문에 양복과 순지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결국 양복은 순지에 의해 붙잡히고 지휘권을 빼앗겼다.

위만조선은 정복되었지만, 순지는 공을 다투었다는 이유로 처형되었고, 양복도 명령 위반과 병사 손실이 많았던 점을 이유로 주살될 뻔했지만 죄를 사서 파면되어 서인이 되었다. 그 후, 양복은 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