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검성
1. 개요
왕검성은 단군왕검이 도읍을 정한 곳으로 알려진 고조선의 수도이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사기》 등 여러 역사서에 기록이 남아 있으며, 기원전 109년 고조선 멸망 시 우거왕이 1년간 농성했던 곳으로 묘사된다. 왕검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요동 지방이라는 설과 평양 지역이라는 설이 있으며, 요동설은 《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랴오닝성 타이안 현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평양설은 대한민국 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며, 낙랑토성이나 대동강 북쪽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
고조선의 수도 -
장당경
장당경은 삼국유사에 언급된 지명이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당장경이라고도 불린다. -
고조선의 수도 -
아사달
아사달은 고조선의 도읍지로 《삼국유사》에 기록된 민족의 시원과 관련된 상징적인 장소이며, 위치와 어원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고 현대에는 민족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
위만조선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위만조선 -
한사군
한사군은 기원전 108년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후 설치한 낙랑군, 진번군, 임둔군, 현도군의 네 군현을 지칭하며, 위치에 대해서는 한반도와 요동반도 주장으로 나뉘고 특히 낙랑군의 위치는 논쟁의 대상이다. -
한국 신화의 장소 -
삼성혈
삼성혈은 고씨, 양씨, 부씨의 시조인 삼신인이 솟아났다는 전설이 있는 탐라국 건국 신화와 관련된 제주도의 중요한 유적이다. -
한국 신화의 장소 -
경주 계림
경주 계림은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있는 숲으로, 김알지 탄생 후 계림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신라의 별칭으로도 쓰였고 현재는 다양한 수종이 자라는 숲으로 보존되고 있다.
2. 역사
왕검성은 왕험성(王險城)이라고 표기하기도 하였다. 고조선의 수도에 대한 기록은 여러 역사서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삼국유사》 고조선조에는 《위서(魏書)》를 인용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아사달(阿斯達)에 처음 도읍을 정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겼다고도 전한다. 또한, 후에 백악산(白岳山, 묘향산의 별칭)으로 천도했다는 기록도 있다.
《삼국사기》 권17 고구려 동천왕 21년(서기 247년) 조에는 “평양성은 본래 선인 왕검의 집이다. 또는 왕의 도읍을 왕험이라 한다(平壤城 本仙人王儉之宅也 或云 王之都王險).”라고 기록하여 왕검성(왕험성)이 단군왕검의 거처이자 수도였음을 시사한다.
한편,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史記) 〈조선열전〉과 《한서》(漢書) 〈서남이양월조선전〉 등에는 고조선의 수도를 왕검성 또는 왕험성으로 기록하고 있다. 기원전 109년, 한(漢) 무제가 고조선을 침략하자 우거왕은 왕검성에서 1년 동안 농성하며 항전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기원전 108년, 내부 분열로 우거왕이 피살되고 성이 함락되면서 고조선은 멸망하였다. 《사기》에는 왕검성이 함락되기 직전까지 성기(成己)라는 인물이 남아 완강히 저항했다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다양한 기록 때문에 고조선의 정확한 수도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현재의 평양 일대를 왕검성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요동 지역(현재 중국 랴오닝성 일대)에 위치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3. 위치에 대한 논란
왕검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크게 요동 지방에 있었다는 설과 평양 지역에 있었다는 설이 대립하고 있다. 또한, 초기에는 요동에 있다가 나중에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다는 이동설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