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추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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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추는 후한 시대의 인물로, 장양을 살해하고 조조에게 호응하려 했으나 장양의 부장 수고에게 살해당했다. 198년 조조가 여포를 공격하자 장양은 여포를 구원하려 했고, 이에 양추는 장양을 살해했다. 양추가 장양을 살해한 시점은 사료에 따라 198년 또는 199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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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양의 모반과 최후

장양은 평소 동향 출신인 여포와 교분이 있었다. 건안 3년(198년), 조조여포를 공격하여 팽성을 함락시키고 하비로 몰아붙이자, 장양은 여포를 구원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부하였던 양추는 이러한 장양의 움직임에 반하여 그를 살해하고 조조에게 투항하려 했다. 하지만 양추는 곧 장양의 부장 수고에게 살해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2.1. 여포와의 관계

장양은 평소 동향 출신인 여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건안 3년(198년), 조조여포를 공격하여 팽성을 함락시키고 하비로 몰아붙이자, 장양은 여포를 구원하려 하였다. 그러나 양추는 이러한 장양의 움직임에 반하여 그를 살해하고 조조에게 투항하려 했다. 이로 인해 여포를 구원하려던 장양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양추는 이후 장양의 부장이었던 수고에게 살해당했다.

장양 살해 시점에 대해서는 기록마다 차이가 있다. 양추가 장양을 살해했다고 명시한 기록들에서는 건안 4년(199년)으로 기록하고 있으나,후한서》 본기에서는 구체적인 살해자 언급 없이 건안 3년(198년) 11월의 일로 기록하였으며,자치통감》 역시 이를 따랐다.

2.2. 조조와의 대립

건안 3년(198년), 조조여포를 공격하여 팽성을 함락시키고 하비로 몰아붙였다. 당시 장양은 평소 동향인 여포와 교분이 있었기에 그를 구원하고자 했다. 그러나 부하였던 양추는 장양을 살해하고 조조에게 호응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양추 역시 장양의 다른 부장 수고에게 곧바로 살해당했다.

양추가 장양을 살해한 시기에 대해서는 기록마다 차이가 있다. 일부 기록에서는 건안 4년(199년)으로 명시하고 있으나,후한서》 본기에서는 장양의 살해자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건안 3년(198년) 11월의 사건으로 기록했다.자치통감》은 《후한서》 본기의 기록을 따랐다.

2.3. 양추의 배신과 장양의 죽음

장양은 평소 동향 출신인 여포와 친분이 있었다. 건안 3년(198년), 조조여포를 공격하여 팽성을 함락시키고 하비로 몰아붙이자, 장양은 여포를 구원하려 하였다. 그러나 부하 양추는 이러한 장양을 살해하고 조조에게 투항하려 했다. 하지만 양추 역시 장양의 부장이었던 수고에게 곧바로 살해당했다.

2.3.1. 장양 살해 시점에 대한 이설

양추가 장양을 살해한 시기에 대해서는 기록마다 차이가 있다. 장양의 살해자를 양추로 명시한 기록들에서는 건안 4년(199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반면, 《후한서》 본기에서는 장양의 살해자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건안 3년(198년) 11월에 살해되었다고 기록했으며,자치통감》 역시 이를 따라 198년으로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