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캘빈 켄들
1. 개요
에드워드 캘빈 켄들은 1886년 코네티컷주에서 태어나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파크 데이비스 앤 컴퍼니 연구원으로 시작해 갑상선 호르몬 연구를 진행했으며, 메이오 재단에서 생화학 연구를 이끌었다. 티록신 분리, 글루타티온 구조 규명, 부신 피질 스테로이드 분리 등의 업적을 남겼으며,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에 사용된 코르티손 개발에 기여했다. 1950년 "부신 피질 호르몬, 그 구조 및 생물학적 효과에 대한 발견"으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1951년 메이오 클리닉에서 은퇴 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객원 교수로 활동했으며, 1972년 사망했다. 래스커상, 파사노 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으며, 여러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이름 | 에드워드 캘빈 켄들 |
|---|---|
| 원어 이름 | Edward Calvin Kendall |
| 출생 | 1886년 3월 8일 |
| 출생지 | 미국 코네티컷주 사우스 노워크 |
| 사망 | 1972년 5월 4일 |
| 사망지 |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 |
| 국적 | 미국 |
| 모교 | 컬럼비아 대학교 |
|---|
| 직업 | 생화학자 |
|---|---|
| 근무지 | 파크-데이비스 세인트 루크 병원 메이요 클리닉 프린스턴 대학교 |
| 주요 업적 | 티록신 분리 코르티손 발견 |
| 수상 내역 | 래스커상 (1949년) 파사노 재단 (1950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1950년) 에든버러 대학교 치료학 캐머런 상 (1951년) |
|---|---|
| 노벨상 | 노벨 생리학·의학상 (1950년) |
| 노벨상 업적 | 여러 종류의 부신피질 호르몬의 발견과 그 구조 및 생물학적 작용의 발견 |
-
코네티컷주 출신 -
셰인 맥마흔
미국의 사업가이자 프로레슬러인 셰인 맥마흔은 빈스 맥마흔과 린다 맥마흔의 아들이며, WWE에서 선수 및 경영진으로 활동하며 유러피언 챔피언십, 하드코어 챔피언십, 스맥다운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했고 WWE 월드컵에서 우승했으며, WWE 외에 유 온 디맨드 CEO, 인터내셔널 스포츠 매니지먼트 이사 등을 역임했다. -
코네티컷주 출신 -
존 브라운
존 브라운은 미국의 노예제 폐지 운동가로서, 1859년 하퍼스 페리에서 노예 해방을 위한 무장 봉기를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처형되었으며, 캔자스 준주에서 포타와토미 학살을 주도하기도 했다. -
래스커-드베키 임상 의학 연구상 수상자 -
찰스 브렌턴 허긴스
찰스 브렌턴 허긴스는 캐나다 출신의 생화학자이자 외과의사로, 호르몬 요법을 통해 전립선암과 유방암 치료에 기여한 공로로 1966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카고 대학교에서 암 치료 분야에 획기적인 연구를 수행하여 의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래스커-드베키 임상 의학 연구상 수상자 -
카를 란트슈타이너
오스트리아 출신의 병리학자이자 면역학자인 카를 란트슈타이너는 ABO식 혈액형 발견으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수혈 의학 발전과 폴리오 바이러스 분리, M, N, P 혈액형 및 Rh 인자 발견 등 면역학 및 바이러스학 분야에 크게 기여하여 '수혈 의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
컬럼비아 대학교 동문 -
염홍철
-
컬럼비아 대학교 동문 -
버락 오바마
버락 후세인 오바마는 미국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통령으로, 시민 운동가 및 법률가,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미국 상원의원을 거쳐 2008년과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2임기를 역임하며 의료보험 개혁법 추진, 이라크 전쟁 종식,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등의 업적을 남겼다.
2. 초기 생애 및 교육
에드워드 캘빈 켄들은 1886년 코네티컷주 사우스노워크에서 태어났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1908년에 이학사 학위, 1909년에 화학 석사 학위, 1910년에 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3. 연구 경력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켄들은 파크 데이비스 앤 컴퍼니(Parke, Davis and Company)의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그의 첫 번째 과제는 갑상선과 관련된 호르몬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그는 1914년까지 뉴욕의 세인트 루크스 병원에서 이 연구를 계속했다. 그는 메이오 재단 대학원의 생화학부 부장으로 임명되었고, 이듬해 생화학부의 이사로 임명되었다.
켄들은 생화학과 의학에 여러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티록신의 분리였지만, 이것이 그가 가장 많은 찬사를 받은 업적은 아니었다. 켄들은 동료들과 함께 글루타티온을 분리하고 그 구조를 결정하는 데 참여했다. 그는 또한 부신 피질에서 여러 스테로이드를 분리했는데, 그중 하나가 처음에는 화합물 E라고 불렸다. 메이오 클리닉 의사 필립 쇼월터 헨치(Philip Showalter Hench)와 협력하여 화합물 E는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에 사용되었다. 이 화합물은 결국 코르티손으로 명명되었다. 1950년, 켄들과 헨치는 스위스 화학자 타데우스 라이히슈타인(Tadeus Reichstein)과 함께 "부신 피질 호르몬, 그 구조 및 생물학적 효과에 대한 발견"으로 1950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노벨 강연은 그의 수상으로 이어진 기본적인 연구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치료제로서의 코르티손 개발"이라는 제목이었다. 2010년까지 켄들과 헨치는 메이오 클리닉과 관련된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였다.
켄들은 1950년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에 선출되었고, 1951년에는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와 미국 철학회에 선출되었다.
켄들의 메이오에서의 경력은 1951년, 의무 은퇴 연령에 도달하면서 끝났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교로 옮겨 생화학과 객원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1972년 사망할 때까지 프린스턴과 관련을 유지했다. 노벨상 외에도 켄들은 래스커상, 파사노 재단 상, 그리고 에든버러 대학교의 캐머론 치료상을 포함한 다른 주요 상을 받았다. 켄들은 1966년 미국 업적 아카데미의 골든 플레이트 상을 받았다. 그는 신시내티 대학교,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 윌리엄스 칼리지, 예일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아일랜드 국립대학교, 구스타브 아돌푸스 칼리지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3.1. 주요 연구 업적
켄들은 생화학과 의학에 여러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티록신의 분리였지만, 이것이 그가 가장 많은 찬사를 받은 업적은 아니었다. 켄들은 동료들과 함께 글루타티온을 분리하고 그 구조를 결정하는 데 참여했다. 그는 또한 부신 피질에서 여러 스테로이드를 분리했는데, 그중 하나가 처음에는 화합물 E라고 불렸다. 메이오 클리닉 의사 필립 쇼월터 헨치와 협력하여 화합물 E는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에 사용되었다. 이 화합물은 결국 코르티손으로 명명되었다. 1950년, 켄들과 헨치는 스위스 화학자 타데우스 라이히슈타인과 함께 "부신 피질 호르몬, 그 구조 및 생물학적 효과에 대한 발견"으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노벨 강연은 그의 수상으로 이어진 기본적인 연구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치료제로서의 코르티손 개발"이라는 제목이었다. 2010년까지 켄들과 헨치는 메이오 클리닉과 관련된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였다.
3.1.1. 코르티손 발견과 노벨상 수상
켄들은 생화학과 의학에 여러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티록신의 분리였지만, 이것이 그가 가장 많은 찬사를 받은 업적은 아니었다. 켄들은 동료들과 함께 글루타티온을 분리하고 그 구조를 결정하는 데 참여했다. 그는 또한 부신 피질에서 여러 스테로이드를 분리했는데, 그중 하나가 처음에는 화합물 E라고 불렸다. 메이오 클리닉 의사 필립 쇼월터 헨치(Philip Showalter Hench)와 협력하여 화합물 E는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에 사용되었다. 이 화합물은 결국 코르티손으로 명명되었다. 1950년, 켄들과 헨치는 스위스 화학자 타데우스 라이히슈타인(Tadeus Reichstein)과 함께 "부신 피질 호르몬, 그 구조 및 생물학적 효과에 대한 발견"으로 1950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노벨 강연은 그의 수상으로 이어진 기본적인 연구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치료제로서의 코르티손 개발"이라는 제목이었다. 2010년까지 켄들과 헨치는 메이오 클리닉과 관련된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였다. 켄들은 1949년에 래스커상을 수상했다.
3.2. 학술 활동
에드워드 캘빈 켄들은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파크 데이비스 앤 컴퍼니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갑상선 관련 호르몬 분리 연구를 시작했다. 1914년까지 뉴욕 세인트 루크스 병원에서 연구를 계속했으며, 이후 메이오 재단 대학원의 생화학부 부장, 이듬해에는 생화학부 이사로 임명되었다.
켄들은 생화학과 의학 분야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티록신을 분리하였고, 동료들과 함께 글루타티온을 분리하고 그 구조를 결정했다. 부신 피질에서 여러 스테로이드를 분리했는데, 그중 하나는 처음에 화합물 E로 불렸으며, 메이오 클리닉 의사 필립 쇼월터 헨치와 협력하여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에 사용되었다. 이 화합물은 결국 코르티손으로 명명되었다. 1950년, 켄들과 헨치는 스위스 화학자 타데우스 라이히슈타인과 함께 "부신 피질 호르몬, 그 구조 및 생물학적 효과에 대한 발견"으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노벨 강연은 "치료제로서의 코르티손 개발"에 초점을 맞추었다. 2010년까지 켄들과 헨치는 메이오 클리닉과 관련된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였다.
켄들은 1950년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에 선출되었고, 1951년에는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와 미국 철학회에 선출되었다.
1951년 메이오에서 은퇴한 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생화학과 객원 교수로 재직했다. 1972년 사망할 때까지 프린스턴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갔다. 노벨상 외에도 래스커상, 파사노 재단 상, 에든버러 대학교의 캐머론 치료상 등을 수상했다. 1966년 미국 업적 아카데미의 골든 플레이트 상을 받았다. 신시내티 대학교,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 윌리엄스 칼리지, 예일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아일랜드 국립대학교, 구스타브 아돌푸스 칼리지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4. 후기 생애
6. 수상 경력
1949년 래스커-드베이키 임상 의학 연구상과 래스커상을 수상했다. 1950년에는 파사노 상, 렘센 상,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7. 명예 박사 학위
wikitable
| 연도 | 수여 기관 | 명예 학위 종류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