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빈 비케르트
1. 개요
에르빈 비케르트는 독일의 외교관이자 작가이다. 그는 나치당에 입당하여 상하이 주재 독일 영사관에서 근무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다가 독일 외무부에 다시 들어가 파리, 런던, 본에서 근무했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는 루마니아 주재 독일 대사, 1976년부터 1980년까지는 중화인민공화국 주재 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에는 12권이 넘는 소설과 논픽션 책을 저술했으며, 존 라베의 일기를 편집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이름 | 에르빈 오토 후민 비케르트 |
|---|---|
| 원어 이름 | Erwin Otto Humin Wickert독일어 |
| 출생일 | 1915년 1월 7일 |
| 출생지 | 독일 제국 브란덴부르크 주 바트 프라이엔발데 브랄리츠 |
| 사망일 | 2008년 3월 26일 |
| 사망지 | 독일 라인란트팔츠 주 레마겐 |
| 국적 | 독일 |
| 배우자 | 잉게보르크 바이데스 |
| 자녀 | 울리히 비케르트 (아들) |
| 친인척 | 에밀리 우드 (외손녀) |
| 거주지 | 독일 베를린 |
| 학사 | 경제학 및 정치학 (1936년) – 디킨슨 대학교 |
|---|---|
| 박사 | 철학 (1939년) –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
| 직업 | 외교관 |
|---|---|
| 정당 | 나치 당 (1939년–1945년) |
| 기타 | 독일 베를린 대학교 철학과 겸임교수 독일 뮌헨 대학교 철학과 겸임교수 독일 괴팅겐 대학교 철학과 겸임교수 |
| 제1대 직책 | 중화인민공화국 주재 독일 대사 |
|---|---|
| 임기 시작 | 1976년 |
| 임기 종료 | 1980년 |
| 이전 | 롤프 프리데만 파울스 |
| 이후 | 페어 피셔 |
| 제2대 직책 | 루마니아 주재 독일 대사 |
| 임기 시작 | 1971년 |
| 임기 종료 | 1976년 |
| 이전 | 베른하르트 폰 뷜로 |
-
서독의 외교관 -
빌리 브란트
빌리 브란트는 서독의 사회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 총리 재임 시절 동방정책을 통해 독일의 분단 극복에 기여하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나, 기욤 사건으로 사퇴한 후에도 독일 재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고 사회복지 정책을 통해 서독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서독의 외교관 -
헬무트 콜
헬무트 콜은 1982년부터 1998년까지 서독과 통일 독일의 연방총리를 역임하며 냉전 종식과 독일 통일을 이끌고 유럽 연합 통합에 기여했으나, 정치자금 스캔들, 건강 악화, 가족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던 독일의 정치인이다. -
뮌헨 대학교 교수 -
막스 베버
막스 베버는 독일 출신의 사회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법학자로서, 종교사회학, 정치 체제 등을 연구하고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 발전에 미친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을 분석했으며, 권위의 유형을 구분하고 사회과학 연구의 객관성과 가치 중립성을 강조했다. -
뮌헨 대학교 교수 -
교황 베네딕토 16세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제265대 교황으로 재임하며, 가톨릭 교리를 수호하고 교회 일치와 종교 간 대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보수적인 신념과 스캔들 대처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
괴팅겐 대학교 교수 -
야코프 그림
야코프 그림은 그림 동화 편찬, 독일어 사전 편찬 참여, 그림의 법칙 정립 등 언어학과 문헌학에 큰 업적을 남긴 독일의 학자이자, 법학자, 민속학자, 자유주의 운동가였다. -
괴팅겐 대학교 교수 -
빌헬름 그림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문헌학자, 동화 작가인 빌헬름 그림은 형 야곱 그림과 함께 그림 동화를 편집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카셀 도서관 사서, 괴팅겐 대학교 명예교수를 역임하고 독일어 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며 독일 문화와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초기 생애와 교육
에르빈 비케르트는 브랄리츠에서 태어나 비텐베르크에서 자랐다. 18세에 돌격대에 입대하려 했으나, 1934년 베를린 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을 공부했다. 1935년에는 펜실베이니아주 칼라일에 있는 디킨슨 칼리지에서 장학금을 받아 편입했고, 1936년 경제학과 정치학으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에는 미국과 아시아를 여행하며 1년을 보냈는데, 이 기간 동안 샌프란시스코의 웨이터, 뉴욕시의 여행사 직원 등 여러 임시직으로 일했다. 1939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3. 경력
1939년 9월까지 비케르트는 나치당에 입당하여 독일 외무부에 고용되었다. 그 해 그는 상하이 주재 독일 영사관에서 "무선 통신 담당관"으로 임명되어 독일 선전 방송국 XGRS를 관리했다. 전쟁 말에는 일본 도쿄로 전근되었다.
1947년부터 비케르트는 하이델베르크에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했다. 1955년 독일 연방 공화국의 주권 회복 이후 비케르트는 외무부에서 다시 일하기 시작하여 파리, 런던에서 근무했으며, 본에서 국내 임무를 맡았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는 루마니아 주재 독일 대사로, 1976년부터 1980년까지는 중화인민공화국 주재 대사로 근무했다.
비케르트는 1980년에 은퇴했다. 은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44년 전 졸업 이후 처음으로 디킨슨 대학교를 방문하여 대학교 기념관에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비케르트는 생전에 12권이 넘는 소설과 논픽션 책을 저술했다. 1998년에는 존 라베의 일기를 편집했다.
3.1. 나치 독일 시절
1939년 9월까지 비케르트는 나치당에 입당하여 독일 외무부에 고용되었다. 그 해 그는 상하이 주재 독일 영사관에서 "무선 통신 담당관"으로 임명되어 독일 선전 방송국 XGRS를 관리했다. 전쟁 말에는 일본 도쿄로 전근되었다.
3.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7년부터 비케르트는 하이델베르크에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했다. 1955년 독일 연방 공화국의 주권 회복 이후 비케르트는 외무부에서 다시 일하기 시작하여 파리, 런던에서 근무했으며, 본에서 국내 임무를 맡았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는 루마니아 주재 독일 대사로, 1976년부터 1980년까지는 중화인민공화국 주재 대사로 근무했다.
비케르트는 1980년에 은퇴했다. 은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44년 전 졸업 이후 처음으로 디킨슨 대학교를 방문하여 대학교 기념관에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비케르트는 생전에 12권이 넘는 소설과 논픽션 책을 저술했다. 1998년에는 존 라베의 일기를 편집했다.
3.3. 은퇴 이후
비케르트는 1980년에 은퇴했다. 은퇴 직후, 그는 44년 전 졸업 이후 처음으로 디킨슨 대학교를 방문하여 대학교 기념관에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비케르트는 생전에 12권이 넘는 소설과 논픽션 책을 저술했다. 1998년에는 존 라베의 일기를 편집했다.
4. 사생활
에르빈 비케르트는 1939년 잉게보르크 바이데스와 결혼하여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다. 비케르트는 독일 언론인 울리히 비케르트의 아버지이자 배우 에밀리 우드의 할아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