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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비아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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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우리비아데스는 에우리클레이데스의 아들로, 기원전 480년 스파르타가 이끄는 펠로폰네소스 도시 국가들에 의해 그리스 연합 함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아테네의 강력한 해군력에도 불구하고 아테네의 지휘를 받기 꺼려하는 펠로폰네소스 국가들의 의사에 따라 선출되었으며, 아테네 해군 사령관 테미스토클레스의 도움을 받았다. 에우리비아데스는 아르테미시온 해전과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와 맞섰으며, 살라미스 해전 승리 후 헬레스폰트 항해에는 반대했다. 그는 살라미스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올리브 화환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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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비아데스
기본 정보
에우리비아데스
에우리비아데스
생몰년기원전 5세기
활동 시기기원전 480년 ~ 기원전 479년
출신스파르타
지위스파르타 해군 사령관
군사 경력
소속 국가그리스
복무스파르타 해군
계급나바르코스 (해군 제독)
주요 전투아르테미시움 해전
살라미스 해전

2. 생애

에우리비아데스는 스파르타의 장군으로,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전쟁 당시 그리스 연합 함대의 지휘관이었다. 그는 에우뤼클레이데스의 아들이었다. 아테네가 강력한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파르타를 비롯한 펠로폰네소스 도시 국가들은 아테네의 세력 확장을 경계하여 에우리비아데스를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지휘관이 된 에우리비아데스는 함대를 이끌고 에우보이아 북쪽의 아르테미시온으로 향했으나, 이미 페르시아 함대가 도착해 있었기 때문에 퇴각을 명령했다. 이후 테미스토클레스의 설득과 뇌물로 인해 함대를 유지하게 되었고, 아르테미시온 해전을 치렀지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리스 함대는 살라미스 섬으로 이동했고, 에우리비아데스는 코린토스 지협으로 함대를 옮기려 했다. 하지만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라미스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에우리비아데스를 설득했다. 결국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연합 함대는 페르시아 함대에 큰 승리를 거두었다.

전투 후, 에우리비아데스는 페르시아 함대를 추격하거나 헬레스폰트 부교를 파괴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에 남아 육상전을 계속하는 것보다 탈출하기를 바랐다. 스파르타로 돌아온 에우리비아데스는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에 대한 공로로 올리브 화환을 받았다.[7]

2. 1. 초기 생애와 배경

에우리비아데스는 에우뤼클레이데스의 아들로, 기원전 480년에 사령관으로 선출되었다. 스파르타가 이끄는 펠로폰네소스 도시 국가들이 아테네의 성장하는 힘을 우려하여, 그리스 전체가 아테네 사람 휘하에서 복무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1] 아테네인들이 뛰어난 해상 능력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이러한 선택이 이루어졌다. 두 도시 사이의 모든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에우리비아데스는 결국 아테네 해군 사령관 테미스토클레스의 도움을 받았다.

2. 2. 페르시아 전쟁 참전

기원전 480년, 에우리비아데스는 스파르타가 이끄는 펠로폰네소스 도시 국가들이 아테네의 성장하는 힘을 경계하여 아테네 휘하에서 복무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테네 해군 지휘를 맡게 되었다. 비록 아테네의 해군력이 우월했음에도 불구하고, 에우리비아데스는 아테네 해군 사령관 테미스토클레스의 도움을 받게 된다.[1]

에우리비아데스의 첫 번째 임무는 함대를 이끌고 에우보이아 북쪽의 아르테미시온으로 가서 페르시아 함대와 맞서는 것이었다.[2] 그러나 그리스 함대가 도착했을 때 이미 페르시아 함대가 그곳에 있었고, 에우리비아데스는 퇴각을 명령했다. 에우보이아인들이 그에게 머물 것을 간청했지만, 테미스토클레스에게 뇌물을 주어 함대를 유지시켰고, 테미스토클레스는 그 뇌물의 일부를 에우리비아데스에게 주었다고 헤로도투스는 기록하고 있다.[3] 이어진 아르테미시온 해전은 결정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고, 그리스 함대는 살라미스 섬으로 이동했다.

살라미스에서 에우리비아데스는 처음에는 함대를 코린토스 지협으로 옮기려 했다. 그곳에는 그리스 연합군이 요새를 건설하고 있었다.[4] 그러나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라미스에서 싸우는 것의 이점을 알고 있었고, 에우리비아데스가 계속 고집을 부리자 그리스 함대 중 가장 큰 전력이었던 아테네 함대를 철수시키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테미스토클레스가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를 속여 살라미스 해협에서 그리스 함대를 봉쇄하도록 유도하자, 에우리비아데스는 살라미스를 전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전투 후, 에우리비아데스는 페르시아 함대를 추격하거나 크세르크세스가 건설한 선박 다리를 파괴하기 위해 헬레스폰트로 항해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는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에 남아 육상전을 계속하는 것보다 탈출하기를 바랐다.[5]

스파르타로 돌아온 에우리비아데스는 살라미스에서의 승리를 인정받아 올리브 화환을 받았고, 테미스토클레스도 비슷한 상을 받았다.[7][6]

2. 3. 살라미스 해전

기원전 480년, 스파르타가 주도하는 펠로폰네소스 도시 국가들은 아테네의 해군력이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테네의 세력 확장을 우려하여 에우리비아데스를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에우리비아데스는 아테네 해군 사령관 테미스토클레스의 도움을 받았다.

에우리비아데스는 함대를 이끌고 에우보이아 북쪽 아르테미시온으로 가서 페르시아 함대와 맞섰다. 그러나 페르시아 함대가 이미 도착해 있자 퇴각을 명령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뇌물을 받아 함대를 지켰고, 그 일부를 에우리비아데스에게 주었다. 이어진 아르테미시온 해전은 결정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고, 그리스 함대는 살라미스 섬으로 이동했다.

살라미스에서 에우리비아데스는 코린토스 지협으로 함대를 이동시키려 했다. 그러나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라미스에서 싸우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에우리비아데스가 고집을 부리자,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함대를 철수시키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테미스토클레스가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를 속여 그리스 함대를 봉쇄하게 만들자, 에우리비아데스는 살라미스에서 전투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전투 후, 에우리비아데스는 페르시아 함대 추격과 헬레스폰트 부교 파괴를 반대했다. 그는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에 남아 육상전을 계속하는 것보다 탈출하기를 바랐다.[5]

스파르타로 돌아온 에우리비아데스는 살라미스에서의 승리를 인정받아 올리브 화관을 받았다. 테미스토클레스도 비슷한 상을 받았다.[7]

2. 4. 귀환과 평가

스파르타로 돌아온 에우리비아데스는 살라미스 해전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올리브 화관을 받았다. 테미스토클레스도 비슷한 상을 받았다.[7]

참조

[1] 서적 Lords of the Sea: The Triumph and Tragedy of Ancient Athens https://archive.org/[...] Gibson Square Books
[2] 문서 Herodotus, 8.4
[3] 논문 "The Herodotean Picture of Themistocles: A Mirror of Fifth-century Athens," in N. Luraghi (ed.), ''The Historian's Craft in the Age of Herodotus'' (Oxford 2001)
[4] 문서 Herodotus, 8.49
[5] 문서 Herodotus, 8.108
[6] 문서 Herodotus, 8.124
[7] 문서 Herodotus, 8.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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