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엔도 긴스케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엔도 긴스케는 1863년 이노우에 가오루, 야마오 요조,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마사루와 함께 영국 유학을 떠나 1866년 귀국한 일본의 인물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조폐국에서 근무하며, 1881년 조폐국장이 되었다. 1883년에는 오사카 조폐국의 벚꽃길을 일반에 공개하는 '벚꽃 통과' 행사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오사카시의 봄 명물로 이어지고 있다. 1884년 정5위, 1890년 종4위에 서임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일본 제국의 대장관료 - 이케다 하야토
    이케다 하야토는 일본의 대장성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총리대신 재임 시절 '소득 배증 계획'을 추진하여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며, 미일 관계 강화와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 등 외교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 일본 제국의 대장관료 - 시부사와 에이이치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도쿠가와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일본 근대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 실업가이자 사상가로, 500개가 넘는 기업 설립 및 경영에 참여하며 "도덕경제합일설"을 주창했고 사회 및 교육 사업에도 헌신했다.
  • 막말 조슈번 사람 - 데라우치 마사타케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까지 활동한 일본의 군인이자 정치가로서 육군대신, 한국통감, 조선총독,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한국 병합을 주도하고 무단통치를 실시했으며, 시베리아 출병 등 외교 정책을 펼친 일본 제국주의 핵심 인물이다.
  • 막말 조슈번 사람 - 소네 아라스케
    소네 아라스케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대한제국 통감으로서 한국 병합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한국의 국권 침탈이라는 비판적 평가를 받는다.
  • 영국에 거주한 일본인 - 아소 다로
    아소 다로는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아소 시멘트 사장을 역임하고 1979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어 여러 요직을 거쳐 제92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으며 현재 자유민주당 부총재 및 최고 고문이다.
  • 영국에 거주한 일본인 - 이노우에 가오루
    이노우에 가오루는 조슈번 출신으로,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활약하며 일본의 근대화와 불평등 조약 개정에 힘썼고, 겐로로서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다 사망했다.
엔도 긴스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엔도 긴스케
원어 이름遠藤 謹助
로마자 표기Endō Kinsuke
출생일1836년 3월 31일
출생지고치시
사망일1893년 9월 13일
국적일본
직업
직업조폐국장
경력
경력조슈 번 사무라이
학력
학력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2. 경력

1863년 이노우에 가오루, 야마오 요조,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마사루와 함께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1866년 귀국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70년부터 1893년 사망할 때까지 일본 조폐국에서 근무했다. 1874년 영국인 토마스 윌리엄 킨더와의 갈등으로 조폐국을 떠났으나, 1875년 킨더를 포함한 외국인 직원들이 해고되면서 복귀했다. 1881년 조폐국장이 되었다.[1]

2. 1. 영국 유학 (1863-1866)

1863년 (분큐 3년), 이노우에 가오루, 야마오 요조,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마사루와 함께 조슈 번의 지원을 받아 비밀리에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다.[1] 당시 조선과 일본은 서양과의 교류를 엄격히 금지하는 쇄국 정책을 펼치고 있었지만, 이들은 서구 문물을 배우고 일본의 근대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1866년 (게이오 2년)에 귀국했다.[1] 같은 해 영국 공사 해리 파크스는 조지 킹 제독에게 조슈 번 방문을 요청했고, 이노우에 가오루 등이 미타지리에서 이들을 맞이하여 환대했다. 다음 날, 정박한 영국 군함 제독실에서 모리 다카치카 번주 부자와의 회견이 이루어졌으며, 이때 엔도와 이노우에가 통역을 담당했다.[1] 이 회견은 조슈 번이 서구 열강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근대화를 추진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 2. 메이지 유신 이후 (1870-1893)

메이지 유신 이후인 1870년부터 1893년 사망할 때까지 일본 조폐국에서 근무했다. 1874년에는 지도 책임자인 영국인 고용 외국인 토머스 윌리엄 킨더와 충돌하여 조폐국을 떠났지만, 1875년 1월 오리엔탈 은행과의 계약 해소 및 킨더를 포함한 9명의 고용 외국인이 해고되면서 조폐국으로 복귀했다. 1881년 조폐국장이 되었다.[1]

매년 4월 중순 일주일 동안 벚꽃길을 공개하는 오사카 조폐국의 ‘벚꽃 통과’ 행사는 1883년 당시 총장이었던 엔도의 지시에 의해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오사카시의 봄 명물로서 이어지고 있다.[1]

3. 업적 및 평가

엔도 긴스케는 조슈번 출신의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화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오사카 조폐국장으로 재직하면서 벚꽃 통과 행사를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오사카시의 봄철 명물로 자리잡게 하였다.

3. 1. 오사카 조폐국 '벚꽃 통과'

1883년 당시 조폐국장이었던 엔도 긴스케의 지시로 오사카 조폐국의 벚꽃길을 일반에 공개하는 벚꽃 통과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 행사는 현재까지도 오사카시의 봄철 명물로 이어져 오고 있다.[3]

3. 2. 서훈

1884년 6월 30일 정5위에 서임되었다.[4] 1890년 8월 6일 종4위에 서임되었다.[5]

참조

[1] 웹사이트 http://heisei-shokas[...]
[2] 웹사이트 https://10mtv.jp/pc/[...]
[3] 간행물 官報 1893-02-21
[4] 간행물 官報 1884-07-01
[5] 간행물 官報 1890-08-12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