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다로
1. 개요
아소 다로는 1940년 후쿠오카현 이즈카시에서 태어난 일본의 정치인이다. 그는 규슈 지역 명문가 출신으로 가쿠슈인 대학을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교,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유학했다. 아소는 아소 시멘트 사장을 거쳐 1979년 중의원에 당선된 후 여러 차례 총무대신, 외무대신을 역임했으며, 2008년에는 제92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다. 그는 역사 인식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으며, 여러 차례의 말실수,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는 점 등으로 비판을 받았다. 또한 클레이 사격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한 경력이 있으며, 만화광으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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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 이름 | 麻生 太郎 |
|---|---|
| 로마자 표기 | Asō Tarō |
| 출생일 | 1940년 9월 20일 |
| 출생지 | 후쿠오카현 이이즈카시 |
| 정당 | 자유민주당 (시코카이) |
| 배우자 | 麻生ちか子 |
| 자녀 | 2명 |
| 친척 | 요시다 시게루 (할아버지) 미카사노미야 도모히토 친왕비 노부코 (여동생) 미카사노미야 아키코 여왕 (조카) 미카사노미야 요코 여왕 (조카) 요시다 겐이치 (삼촌) 스즈키 젠코 (장인) 스즈키 슌이치 (처남) |
| 학력 | 가쿠슈인 대학 스탠퍼드 대학교 (중퇴)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 직책 | 내각총리대신 |
|---|---|
| 재임 기간 | 2008년 9월 24일 ~ 2009년 9월 16일 |
| 국왕 | 아키히토 |
| 전임자 | 후쿠다 야스오 |
| 후임자 | 하토야마 유키오 |
| 직책1 | 자유민주당 총재 |
| 재임 기간1 | 2008년 9월 22일 ~ 2009년 9월 28일 |
| 전임자1 | 후쿠다 야스오 |
| 후임자1 | 다니가키 사다카즈 |
| 직책2 | 자유민주당 부총재 |
| 총재2 | 기시다 후미오 |
| 재임 기간2 | 2021년 10월 8일 ~ 2024년 9월 27일 |
| 전임자2 | 고무라 마사히코 |
| 후임자2 | 스가 요시히데 |
| 직책3 | 부총리 |
| 총리3 | 아베 신조 스가 요시히데 |
| 재임 기간3 | 2012년 12월 26일 ~ 2021년 10월 4일 |
| 전임자3 | 오카다 가쓰야 |
| 후임자3 | 공석 |
| 직책4 | 재무대신 |
| 총리4 | 아베 신조 스가 요시히데 |
| 재임 기간4 | 2012년 12월 26일 ~ 2021년 10월 4일 |
| 전임자4 | 조지마 고리키 |
| 후임자4 | 스즈키 슌이치 |
| 직책5 | 외무대신 |
| 총리5 |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
| 재임 기간5 | 2005년 10월 31일 ~ 2007년 8월 27일 |
| 전임자5 | 마치무라 노부타카 |
| 후임자5 | 마치무라 노부타카 |
| 직책6 | 총무대신 |
| 총리6 | 고이즈미 준이치로 |
| 재임 기간6 | 2003년 9월 22일 ~ 2005년 10월 31일 |
| 전임자6 | 가타야마 도라노스케 |
| 후임자6 | 다케나카 헤이조 |
| 직책7 | 중의원 의원, 후쿠오카현 출신 |
| 재임 기간7 | 1986년 7월 8일 ~ 현재 |
| 전임자7 | 타가야 신넨 |
| 선거구7 | 후쿠오카 2구 (1986–1996) 후쿠오카 8구 (1996–현재) |
| 재임 기간8 | 1979년 10월 7일 ~ 1983년 11월 28일 |
| 선거구8 | 후쿠오카 2구 |
| 전임자8 | 아사오 미하라 |
| 후임자8 | 도시 오하시 |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세례명: 프란치스코) |
|---|---|
| 소속 정당 파벌 | 미야자와파 → 고노 그룹 → 아소파 |
| 학위 | 정치학 학사 (가쿠슈인 대학, 1963년) |
| 서명 | Tarō Asō signature.svg |
| 총선 당선 횟수 | 15회 |
| 국회의원 정보 | 국회의원 정보 |
| 내각 총리 대신 관저 프로필 | 내각 총리 대신 관저 프로필 |
| 기타 직책1 | 경제기획청 장관 (제2차 하시모토 내각) |
|---|---|
| 재임 기간9 | 1996년 11월 7일 ~ 1997년 9월 11일 |
| 기타 직책2 | 경제재정정책 담당대신 신천년기념 행사 담당대신 정보통신 기술(IT) 담당대신 |
| 내각5 | 제2차 모리 개조 내각 |
| 재임 기간10 | 2001년 1월 23일 ~ 2001년 4월 26일 |
| 기타 직책3 | 자유민주당 총재 |
| 재임 기간11 | 2008년 9월 22일 ~ 2009년 9월 16일 |
| 기타 직책4 | 자유민주당 최고 고문 |
| 총재 | 이시바 시게루 |
| 재임 기간12 | 2024년 9월 30일 ~ 현재 |
| 기타 직책5 | 자유민주당 부총재 |
| 총재1 | 기시다 후미오 |
| 재임 기간13 | 2021년 10월 1일 ~ 2024년 9월 30일 |
| 기타 직책6 | 자유민주당 간사장 |
| 총재2 | 아베 신조 |
| 재임 기간14 | 2007년 8월 27일 ~ 2007년 9월 24일 2008년 8월 1일 ~ 2008년 9월 |
| 기타 직책7 | 자유민주당 정무 조사 회장 |
| 총재3 | 고이즈미 준이치로 |
| 재임 기간15 | 2001년 4월 24일 ~ 2003년 9월 21일 |
-
일본의 남자 사격 선수 -
가마치 다케오
가마치 다케오는 일본의 사격 선수이자 자위대 장교로, 1964년 도쿄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하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일본 역대 최고령 금메달리스트가 되었으며, 자위대 퇴관 후 뇌경색으로 사망했다. -
광산 기업인 -
이성교 (1921년)
이성교는 1921년 12월 4일에 출생하여 제1, 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영진광업 대표이사, 태백호텔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
일본의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 -
가마치 다케오
가마치 다케오는 일본의 사격 선수이자 자위대 장교로, 1964년 도쿄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하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일본 역대 최고령 금메달리스트가 되었으며, 자위대 퇴관 후 뇌경색으로 사망했다.
2. 가계 및 성장 배경
아소 다로는 1940년 9월 20일 후쿠오카현 이즈카시에서 아소 다카키치와 가즈코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규슈 지역 명문가 출신으로, 직계는 아소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증조부 아소 다키치는 일제강점기에 아소 탄광을 운영하며 부를 축적했다. 외조부 요시다 시게루는 전후 일본 총리를 역임한 유력 정치인이다. 장인 스즈키 젠코 또한 총리를 역임했으며, 여동생 노부코는 미카사노미야 도모히토 친왕과 결혼하여 황족이 되었다.
가쿠슈인 대학 졸업 후 스탠퍼드 대학교,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유학했다.
아소 가문의 가몬은 '다름 못 박기'이다.
; 가계도
아소 가문은 후지와라 가마타리의 혈통을 잇는 후지와라씨 일족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마쿠라 시대부터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 오nga군 아소고에 저택을 지은 것을 계기로 아소 성을 사용하였다. 아소가는 사족의 후예였으나, 이후 촌장이 되었다.
아소 다키치 시대에 이르러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땅에서 석탄을 발견하면서 규슈 3대 석탄 재벌 중 하나로 성장했다. 아소 다키치는 카이지마 타스케로부터 사업 지도를 받았고, 이노우에 가오루 후작에게 접근하여 채굴권 등 법적 절차를 유리하게 만들었다. 그는 석탄뿐만 아니라 철도, 전기, 금융까지 사업을 확장하여 일본국유철도, 규슈전력, 후쿠오카은행의 기반을 다졌다.
아소 다로는 아소 타가키치의 손자이며,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외손자이다. 어머니 아소 와코는 요시다 시게루의 셋째 딸이며, 자유민권운동가 다케우치 쓰나와 마키노 노부아키 백작의 손녀이자, 오쿠보 도시미치와 미시마 미치쓰네의 증손녀이다.
아소 다로의 가계는 시부사와 에이이치,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아베 신조, 호리우치 미쓰오, 미야자와 기이치, 기시다 후미오 등 일본 정·재계의 주요 인물들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미야자와 기이치 가문을 통해 브리지스톤의 이시바시 쇼지로 가문과 연결되며, 이를 통해 하토야마 이치로, 하토야마 유키오의 하토야마 가문과도 연결된다.
아소 다로의 여동생 노부코는 미카사노미야 도모히토 친왕과 결혼하여 미카사노미야 아키코 여왕, 미카사노미야 요코 여왕을 낳았다. 아소 다로는 스즈키 젠코 전 총리의 딸 지카코와 결혼하여 장남 아소 마사토요와 장녀 아야코를 두었다.
2.1. 가계도
아소 가문은 후지와라 가마타리의 혈통을 잇는 후지와라씨 일족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마쿠라 시대부터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 오nga군 아소고에 저택을 지은 것을 계기로 아소 성을 사용하였다. 아소가는 사족의 후예였으나, 이후 촌장이 되었다.
아소 다키치 시대에 이르러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땅에서 석탄을 발견하면서 규슈 3대 석탄 재벌 중 하나로 성장했다. 아소 다키치는 카이지마 타스케로부터 사업 지도를 받았고, 이노우에 가오루 후작에게 접근하여 채굴권 등 법적 절차를 유리하게 만들었다. 그는 석탄뿐만 아니라 철도, 전기, 금융까지 사업을 확장하여 일본국유철도, 규슈전력, 후쿠오카은행의 기반을 다졌다.
아소 다로는 아소 타가키치의 손자이며,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외손자이다. 어머니 아소 와코는 요시다 시게루의 셋째 딸이며, 자유민권운동가 다케우치 쓰나와 마키노 노부아키 백작의 손녀이자, 오쿠보 도시미치와 미시마 미치쓰네의 증손녀이다.
아소 다로의 가계는 시부사와 에이이치,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아베 신조, 호리우치 미쓰오, 미야자와 기이치, 기시다 후미오 등 일본 정·재계의 주요 인물들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미야자와 기이치 가문을 통해 브리지스톤의 이시바시 쇼지로 가문과 연결되며, 이를 통해 하토야마 이치로, 하토야마 유키오의 하토야마 가문과도 연결된다.
아소 다로의 여동생 노부코는 미카사노미야 도모히토 친왕과 결혼하여 미카사노미야 아키코 여왕, 미카사노미야 요코 여왕을 낳았다. 아소 다로는 스즈키 젠코 전 총리의 딸 지카코와 결혼하여 장남 아소 마사토요와 장녀 아야코를 두었다.
3. 정치 경력
가쿠슈인 대학을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교와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대학원에서 유학했다. 졸업 후 아소 시멘트 사장을 역임했다. 1979년 정계에 입문하여 중의원에 처음 당선된 후 13선(1983년 낙선 제외)을 기록했다. 고이즈미 내각에서 총무상, 외무상을 역임했다.
2001년, 2006년, 2007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으나, 각각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에게 패배했다.
2008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여 제92대 총리에 취임했다. 총리 재임 중 세계 금융 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2009년 총선 패배로 총리직에서 물러났으나, 아베 내각에서 부총리 겸 재무상을 역임했다. 2021년 기시다 내각 출범과 함께 자유민주당 부총재로 임명되었다.
* 하위 레벨 제목(sub-sectionTitle): 주요 직책
아소 다로는 가쿠슈인 대학 졸업 후, 스탠퍼드 대학교와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대학원에서 유학했다. 이후 아소 시멘트 사장을 역임했다. 1979년 정계에 입문하여 중의원에 처음 당선된 후 13선을 기록했다. 1996년에는 제2차 하시모토 내각의 경제기획청 장관으로 처음 입각했다. 2001년 1월에는 경제재정정책담당대신, 정보통신기술(IT)담당대신, 신천년기념행사 담당대신에 취임했다. 이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을 역임했고, 2003년 9월 총무대신에 취임했다. 2005년 10월 31일에는 외무대신이 되었다.
2007년 8월의 내각 개조 및 당 임원 인사에서 자유민주당 간사장에 취임했으나, 곧 아베 신조 총리가 사퇴를 표명했다. 2008년 9월 24일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하여 아소 내각을 조각했다. 2012년 12월 26일 제2차 아베 내각에서는 부총리, 재무대신, 내각부 특명 담당대신(금융)으로 재입각했다. 2021년 10월 4일, 제1차 기시다 내각 발족에 따라 부총리 겸 재무대신 겸 금융담당대신을 퇴임했다. 같은 달 8일에 자유민주당 부총재에 취임했다. 2024년 9월 30일에는 당 최고 고문에 취임했다.
이 외에도 자유민주당 담배 의원연맹 고문, 보이스카우트 진흥 국회의원 연맹 고문, 일본 청년회의소(JC) 전 회장, 사단법인 일본 클레이사격협회 회장, 일·브라질 국회의원 연맹 회장, 일한의원연맹 부회장, 일한협력위원회 회장 대행, 일한터널연구회 규슈지부 고문, 베이징올림픽을 지원하는 의원들의 모임, 일본 올림피언즈 협회 고문, 일본 농구 협회 회장,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 명예고문,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특별고문, 자유민주당 네트 서포터즈 클럽(J-NSC) 최고고문, 일화의원간담회, 럭비 월드컵 2019 일본 대회 성공 의원 연맹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 하위 레벨 제목(sub-sectionTitle): 선거 이력
아소 다로는 1979년 제3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 후보로 구 후쿠오카 2구(현 후쿠오카현 제8구)에 출마하여 71,041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이후 1980년 제36회 총선에서도 당선되었으나, 1983년 제37회 총선에서는 낙선하였다. 1986년 제38회 총선에서 134,179표를 얻으며 당선된 이후,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까지 13회 연속 당선되었다.
| 선거 | 나이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선거 결과 |
|---|---|---|---|---|---|
| 1979년 일본 총선 | 39 | 후쿠오카 제2구 | 자민당 | 71,041 | 당선 |
| 1980년 일본 총선 | 39 | 후쿠오카 제2구 | 자민당 | 85,826 | 당선 |
| 1983년 일본 총선 | 43 | 후쿠오카 제2구 | 자민당 | 75,412 | 낙선 |
| 1986년 일본 총선 | 45 | 후쿠오카 제2구 | 자민당 | 134,179 | 당선 |
| 1990년 일본 총선 | 49 | 후쿠오카 제2구 | 자민당 | 99,876 | 당선 |
| 1993년 일본 총선 | 52 | 후쿠오카 제2구 | 자민당 | 101,080 | 당선 |
| 1996년 일본 총선 | 56 | 후쿠오카현 제8구 | 자민당 | 114,408 | 당선 |
| 2000년 일본 총선 | 59 | 후쿠오카 제8구 | 자민당 | 120,178 | 당선 |
| 2003년 일본 총선 | 63 | 후쿠오카 제8구 | 자민당 | 132,646 | 당선 |
| 2005년 일본 총선 | 64 | 후쿠오카 제8구 | 자민당 | 145,229 | 당선 |
| 2009년 일본 총선 | 68 | 후쿠오카 제8구 | 자민당 | 165,327 | 당선 |
| 2012년 일본 총선 | 72 | 후쿠오카 제8구 | 자민당 | 146,712 | 당선 |
| 2014년 일본 총선 | 74 | 후쿠오카 제8구 | 자민당 | 126,684 | 당선 |
| 2017년 일본 총선 | 77 | 후쿠오카 제8구 | 자민당 | 135,334 | 당선 |
| 2021년 일본 총선 | 81 | 후쿠오카 제8구 | 자민당 | 104,924 | 당선 |
3.1. 주요 직책
아소 다로는 가쿠슈인 대학 졸업 후, 스탠퍼드 대학교와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대학원에서 유학했다. 이후 아소 시멘트 사장을 역임했다. 1979년 정계에 입문하여 중의원에 처음 당선된 후 13선을 기록했다. 1996년에는 제2차 하시모토 내각의 경제기획청 장관으로 처음 입각했다. 2001년 1월에는 경제재정정책담당대신, 정보통신기술(IT)담당대신, 신천년기념행사 담당대신에 취임했다. 이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을 역임했고, 2003년 9월 총무대신에 취임했다. 2005년 10월 31일에는 외무대신이 되었다.
2007년 8월의 내각 개조 및 당 임원 인사에서 자유민주당 간사장에 취임했으나, 곧 아베 신조 총리가 사퇴를 표명했다. 2008년 9월 24일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하여 아소 내각을 조각했다. 2012년 12월 26일 제2차 아베 내각에서는 부총리, 재무대신, 내각부 특명 담당대신(금융)으로 재입각했다. 2021년 10월 4일, 제1차 기시다 내각 발족에 따라 부총리 겸 재무대신 겸 금융담당대신을 퇴임했다. 같은 달 8일에 자유민주당 부총재에 취임했다. 2024년 9월 30일에는 당 최고 고문에 취임했다.
이 외에도 자유민주당 담배 의원연맹 고문, 보이스카우트 진흥 국회의원 연맹 고문, 일본 청년회의소(JC) 전 회장, 사단법인 일본 클레이사격협회 회장, 일·브라질 국회의원 연맹 회장, 일한의원연맹 부회장, 일한협력위원회 회장 대행, 일한터널연구회 규슈지부 고문, 베이징올림픽을 지원하는 의원들의 모임, 일본 올림피언즈 협회 고문, 일본 농구 협회 회장,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 명예고문,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특별고문, 자유민주당 네트 서포터즈 클럽(J-NSC) 최고고문, 일화의원간담회, 럭비 월드컵 2019 일본 대회 성공 의원 연맹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3.2. 선거 이력
아소 다로는 1979년 제3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 후보로 구 후쿠오카 2구(현 후쿠오카현 제8구)에 출마하여 71,041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이후 1980년 제36회 총선에서도 당선되었으나, 1983년 제37회 총선에서는 낙선하였다. 1986년 제38회 총선에서 134,179표를 얻으며 당선된 이후,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까지 13회 연속 당선되었다.
| 선거 | 나이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선거 결과 |
|---|---|---|---|---|---|
| 1979년 일본 총선 | 39 | 후쿠오카 제2구 | 자민당 | 71,041 | 당선 |
| 1980년 일본 총선 | 39 | 후쿠오카 제2구 | 자민당 | 85,826 | 당선 |
| 1983년 일본 총선 | 43 | 후쿠오카 제2구 | 자민당 | 75,412 | 낙선 |
| 1986년 일본 총선 | 45 | 후쿠오카 제2구 | 자민당 | 134,179 | 당선 |
| 1990년 일본 총선 | 49 | 후쿠오카 제2구 | 자민당 | 99,876 | 당선 |
| 1993년 일본 총선 | 52 | 후쿠오카 제2구 | 자민당 | 101,080 | 당선 |
| 1996년 일본 총선 | 56 | 후쿠오카현 제8구 | 자민당 | 114,408 | 당선 |
| 2000년 일본 총선 | 59 | 후쿠오카 제8구 | 자민당 | 120,178 | 당선 |
| 2003년 일본 총선 | 63 | 후쿠오카 제8구 | 자민당 | 132,646 | 당선 |
| 2005년 일본 총선 | 64 | 후쿠오카 제8구 | 자민당 | 145,229 | 당선 |
| 2009년 일본 총선 | 68 | 후쿠오카 제8구 | 자민당 | 165,327 | 당선 |
| 2012년 일본 총선 | 72 | 후쿠오카 제8구 | 자민당 | 146,712 | 당선 |
| 2014년 일본 총선 | 74 | 후쿠오카 제8구 | 자민당 | 126,684 | 당선 |
| 2017년 일본 총선 | 77 | 후쿠오카 제8구 | 자민당 | 135,334 | 당선 |
| 2021년 일본 총선 | 81 | 후쿠오카 제8구 | 자민당 | 104,924 | 당선 |
| 2024년 일본 총선 | 84 | 후쿠오카 제8구 | 자민당 | 92,534 | 당선 |
4. 논란 및 비판
아소 다로는 여러 차례의 망언과 역사 왜곡 발언으로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은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 역사 인식 관련 발언 ====
아소 다로는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와 전쟁 범죄를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발언으로 여러 차례 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발언들은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 2003년 5월 31일, 도쿄 대학 강연에서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 당시 창씨개명에 대해 "조선인들이 (일본)성씨를 달라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망언을 했다.
* 2005년 5월, 영국 옥스포드 대학 강연에서 "한국 전쟁 덕분에 일본 경제가 빠르게 재건될수 있었다."는 망언을 하여 한국인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 2005년 11월 26일, 가나자와 강연회에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지적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과 중국뿐이다."라며 오히려 두 나라를 비난하였다.
* 2006년 1월 28일에는 일본 천황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야 한다는 발언도 했다.
* 2008년 9월 30일, 총리실 기자간담회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을 대동아 전쟁으로 언급해 논란을 샀다.
* 2006년 2월 4일, 일본의 타이완 식민지배 기간 동안 시행된 의무교육에 대해 "우리 조상들이 좋은 일을 했다"고 말했다.
* 2006년 3월 9일에는 타이완을 "법치 국가"라고 언급하여 중국으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 내각총리대신으로서는 고노 담화를 계승할 것을 표명했지만, 미국 하원에 제출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대일 비난 결의안에 있는 “일본군에 의한 강제적인 성 노예화”라는 기술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에 전혀 근거하지 않는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 2006년 8월 8일자 아사히 신문 조간에 ‘야스쿠니에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논문을 기고했다.
*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대해서는, 정교분리 원칙이 문제가 되는 등 가장 큰 문제는 야스쿠니 신사가 종교법인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하며, 2006년 총재선거에서는 총리에 취임할 경우 야스쿠니 신사를 비종교법인화(국가가 관여할 수 있는 특수법인으로 이전)하여 국립 추도시설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 2021년 4월 13일에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옹호하며 "정화를 마친 물은 마셔도 별 일 없다"는 망언을 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 2008년 중반, 아소 다로는 자신의 가족이 소유한 아소 광산에서 1945년 연합군 전쟁포로들이 무보수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는 주장을 인정했다.
==== 기타 논란 ====
아소 다로는 노인, 여성, 특정 직업군(의사) 등에 대한 차별적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 2005년에는 규슈 국립 박물관 개관식에서 일본을 "하나의 문화, 하나의 문명, 하나의 언어, 그리고 하나의 민족"을 가진 유일한 나라라고 칭찬하여 제국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 2001년에는 일본을 "부유한 유대인"들이 살고 싶어하는 나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해 논란이 되었다.
* 2013년 사회보장개혁국민회의에서는 중병 환자를 "튜브 인간"이라 지칭하며 "빨리 죽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발언해 큰 논란이 되었다.
* 2014년에는 사회복지비 증가가 출산율 저하 때문이라는 발언으로 비판받았으며,
* 2024년에는 가미카와 요코 외무대신을 "오바상"(늙은 여자)이라 부르며 외모를 평가해 논란이 일자 발언을 철회했다.
* 그는 잦은 말실수와 한자 오독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그의 말실수는 조지 W. 부시와 비교되기도 했다.
*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서민 생활과 동떨어진 언행을 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는 거의 매일 밤 고급 호텔에서 식사를 즐기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자 "내 스타일을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다.
* 2013년 "나치 정권의 수법을 배워보면 어떨까"라는 발언으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자, 발언을 철회했다.
4.1. 역사 인식 관련 발언
아소 다로는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와 전쟁 범죄를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발언으로 여러 차례 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발언들은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 2003년 5월 31일, 도쿄 대학 강연에서 창씨개명에 대해 "조선인들이 (일본)성씨를 달라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발언했다.
* 2005년 5월, 영국 옥스포드 대학 강연에서 "전쟁 후 일본은 경제 재건이 최우선 목표였는데 운 좋게도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 일본 경제 재건을 급속도로 진전시켰다."라고 발언하여 한국인들의 반발을 샀다.
* 2005년 11월 26일, 가나자와 강연회에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지적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과 중국뿐이다."라며 오히려 두 나라를 비난하였다.
* 2006년 1월 28일에는 일본 천황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 2008년 9월 30일, 총리실 기자간담회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을 "대동아 전쟁"으로 언급해 논란을 샀다.
* 2021년 4월 13일에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옹호하며 "정화를 마친 물은 마셔도 별 일 없다"는 발언을 해 파문이 일었다.
2006년 2월 4일, 일본의 타이완 식민지배 기간 동안 시행된 의무교육에 대해 "우리 조상들이 좋은 일을 했다"고 말했다.
2006년 3월 9일에는 타이완을 "법치 국가"라고 언급하여 중국으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내각총리대신으로서는 고노 담화를 계승할 것을 표명했지만, 미국 하원에 제출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대일 비난 결의안에 있는 “일본군에 의한 강제적인 성 노예화”라는 기술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에 전혀 근거하지 않는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2006년 8월 8일자 아사히 신문 조간에 ‘야스쿠니에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논문을 기고했다.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대해서는, 정교분리 원칙이 문제가 되는 등 가장 큰 문제는 야스쿠니 신사가 종교법인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하며, 2006년 총재선거에서는 총리에 취임할 경우 야스쿠니 신사를 비종교법인화(국가가 관여할 수 있는 특수법인으로 이전)하여 국립 추도시설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2008년 중반, 아소 다로는 자신의 가족이 소유한 아소 광산에서 1945년 연합군 전쟁포로들이 무보수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는 주장을 인정했다.
4.2. 기타 논란
아소 다로는 노인, 여성, 특정 직업군(의사) 등에 대한 차별적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2013년 사회보장개혁국민회의에서는 중병 환자를 "튜브 인간"이라 지칭하며 "빨리 죽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발언해 논란이 되었다. 2014년에는 사회복지비 증가가 출산율 저하 때문이라는 발언으로 비판받았으며, 2024년에는 가미카와 요코 외무대신을 "오바상"(노파)이라 부르며 외모를 평가해 논란이 일자 발언을 철회했다.
2005년에는 규슈 국립 박물관 개관식에서 일본을 "하나의 문화, 하나의 문명, 하나의 언어, 그리고 하나의 민족"을 가진 유일한 나라라고 칭찬하여 제국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06년에는 일본의 타이완 식민지배 당시 의무교육에 대해 "우리 조상들이 좋은 일을 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잦은 말실수와 한자 오독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2008년에는 연설문에 쓰인 한자어를 잘못 읽는 경우가 잦아 도쿄대학교의 한 교수는 그가 난독증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의 말실수는 조지 W. 부시와 비교되기도 했다.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서민 생활과 동떨어진 언행을 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는 거의 매일 밤 고급 호텔에서 식사를 즐기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자 "내 스타일을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다.
2003년 도쿄 대학 강연에서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에 대해 "조선인들이 (일본)성씨를 달라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발언했다.
2005년 영국 옥스포드 대학 강연에서는 "한국 전쟁이 일본 경제 재건을 급속도로 진전시켰다"는 발언으로 한국인들의 반발을 샀다.
2001년에는 일본을 "부유한 유대인"들이 살고 싶어하는 나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해 논란이 되었다.
2008년 9월 30일, 제2차 세계 대전을 "대동아 전쟁"으로 언급해 논란을 일으켰다.
2021년에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옹호하며 "정화를 마친 물은 마셔도 별 일 없다"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나치 옹호 발언으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2013년 "나치 정권의 수법을 배워보면 어떨까"라는 발언으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자, 발언을 철회했다.
5. 기타
5.1. 만화광
아소 다로는 어릴적부터 만화를 좋아했으며, 스탠퍼드 대학교 유학 시절에도 가족에게 부탁해 일본 만화 잡지를 받아볼 정도였다. 2003년에는 매주 10~20권의 만화 잡지를 읽는다고 밝혔으며, 여러 만화에 대한 감상을 즉석에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2007년 외무상 재직 시절 국제만화상을 제정했는데, 이는 일본인이 아닌 다른 국적의 만화가에게 수여하는 상이었다.
아소 다로는 일본 대중문화를 다른 국가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중요한 단계로 보았으며, 만화가 세계와 소통하는 다리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는 오타쿠로 불리기도 한다.
아소 다로는 하네다 공항(도쿄 국제공항)에서 "로젠 메이든"을 읽는 모습이 목격되어 "로젠 각하"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인터뷰에서 해당 만화를 읽은 것은 인정했지만 공항에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암살자를 소재로 한 장기 연재 만화 골고 13의 팬이다.
아소가 총리직에 입후보하자 일부 만화 출판사와 관련 업체의 주가가 상승하기도 했다. 만화를 좋아하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만화에 대해 정책이나 정치 논쟁과 관련지어 자주 이야기한다.
처음 읽은 만화는 『노라쿠로 상등병』, 『모험 댄吉』 등이며, 1950년대 잡지 『모험왕』과 『소년』, 데즈카 오사무의 『정글대제』, 『철완 아톰』 등을 접했다. 대학 시절부터 사회인, 경영자를 거치는 동안에도 만화를 계속 읽었으며, "계속 읽으면 어렴풋이 시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에 대학생 사이에서 만화 읽는 것이 일반화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만화의 주류 변화를 분석하며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언급했다. 2003년에는 여러 만화 잡지를 구독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화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며, 자녀들과의 공통 화제라고 소개했다. 좋아하는 작품으로 『골고 13』, 『오늘도 여기는 잘나가는 파출소』, 『이십수 이야기』, 『바람의 대지』 등을 언급했다. 선거 기간 중에도 관용차 안에서 만화 잡지를 읽었다고 한다.
2005년 외무대신 취임 후 문화외교를 중시하여 2007년 국제만화상을 창설하였다. 2006년에는 만화 『용오』를 언급하며 외교관이라면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다즈모 없는 개혁』에는 아소를 모델로 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자위대 이라크 파병 당시 『캡틴 츠바사』 삽화를 급수차에 붙이는 것을 지원했다.
2007년 "일본 컴퓨터 게임의 영향으로 동남아시아의 젊은 세대에서 일본어 학습자가 두 배로 증가"했다며, 만화가 전쟁을 막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국제만화상을 신설하며 "만화의 노벨상"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핵확산금지조약 회의에서 『맨발의 겐』 영어판을 배포했다. 멕시코 방문 시 『바람의 검심』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2008년 아카츠카 후지오 사망에 대해 언급했다. 같은 해 아키하바라에서 거리 연설 후 만화가들과 함께 행사에 출연했다. 『남자 한 마리 꼬마 대장』을 자신의 청춘의 만화로 꼽았으며, 『골고 13』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러시아 대통령에게 도라에몽의 도구 「타케콥터」를 선물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소의 만화광 공언을 비판했다.
2016년 포켓몬 고 유행에 대해 언급하며, 만화가 정신과 의사보다 효과가 크다고 평했다. 2021년 『골고 13』 단행본 201권 출판에 대해 극찬했다. 같은 해 사이토 타카오 사망에 대해 애도를 표하며 『분쟁이라면 하치다에게』를 소개했다.
5.2. 트리비아
아소 다로는 클레이 사격 일본 대표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출전한 경력이 있다. 대학 시절부터 클레이 사격을 시작하여 22세 때 전일본 선수권 대회에서 당시 일본 신기록으로 우승하였고, 1974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를 획득하였다. 2000년 5월에는 일본 클레이 사격 협회 회장에 취임하였다.
기독교(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은 프란치스코이다. 하라 다카시, 다카하시 고레키요, 가타야마 데쓰, 하토야마 이치로, 오히라 마사요시, 조부 요시다 시게루에 이어 7번째 기독교 신자 총리였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기도 했으며, 야스쿠니 신사의 비종교법인화를 주장하고 있다. 종전 기념일인 8월 15일이 아닌 춘추의 례대제에 맞춰 참배했다. 내각총리대신 재임 중이던 2009년 1월 4일에는 이세 신궁을 참배했고,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의 명예고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