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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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구는 911년 건주 자사 노연창을 암살하고 건주를 점령한 인물이다. 그는 백승군지휘사였으며, 노연창의 통치 방식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후량 태조 주전충은 여구를 건주 방어사로 임명했지만, 여구는 그 직후 사망했다. 그의 부장 이언도가 방어사 자리를 계승했다.

여구 - [인물]에 관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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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여구의 출신 배경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911년, 당시 그는 건주자사 노연창의 휘하에서 백승군지휘사(百勝軍指揮使)로 있었다. 노연창의 아버지 노광조는 백승군방어사를 맡았었는데, 아마도 이것이 여구가 노광조 휘하에서 계속 맡아왔던 직책이었을 것이다.

그 해, 노연창이 사냥과 놀이에 시간을 보내면서 군대를 소외시키자, 여구는 노연창을 암살하고 건주를 접수하였다. 그는 또한 노광조의 군사였던 담전파를 살해하려고 하였으나, 담전파는 병을 핑계대고 자신은 노령을 이유로 이미 은퇴해 있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목숨을 건졌다. 그 후, 후량 태조 주전충12월 29일에 여구를 건주방어사로 임명하였다. 여구는 그 직후 사망하였고, 그의 부장인 아장(牙將) 이언도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2.1. 초기 생애와 배경

이규의 배경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911년 당시 그는 전주 지사 노연창 휘하의 백승군 사령관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 노연창의 아버지인 노광주는 백승 circuit의 수비대장 칭호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아마 이규는 노광주 휘하에서 복무하면서 이 칭호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해, 노연창이 게임과 사냥에 시간을 쏟아 군대를 소외시키자, 이규는 그를 암살하고 전주를 장악했다. 그는 또한 노광주의 수석 전략가인 담권보를 죽이려고 했지만, 담권보는 노쇠로 인해 은퇴하겠다고 주장하여 목숨을 건졌다.

2.2. 건주(또는 전주) 통치

911년, 당시 여구는 건주자사 노연창의 휘하에서 백승군지휘사(百勝軍指揮使)로 있었다. (노연창의 아버지 노광조는 백승군방어사를 맡았었는데, 아마도 이것이 여구가 노광조 휘하에서 계속 맡아왔던 직책이었을 것이다.)

그 해, 노연창이 사냥과 놀이에 시간을 보내면서 군대를 소외시키자, 여구는 노연창을 암살하고 건주를 접수하였다. 그는 또한 노광조의 군사였던 담전파를 살해하려고 하였으나, 담전파는 병을 핑계대고 자신은 노령을 이유로 이미 은퇴해 있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를 벗어났다. 그 후, 후량 태조 주전충은 그 해 12월 29일에 여구를 건주방어사로 임명하였다. 여구는 그 직후 사망하였고, 그의 부장인 아장(牙將) 이언도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2.3. 죽음

911년, 당시 여구는 건주자사 노연창의 휘하에서 백승군지휘사(百勝軍指揮使)로 있었다.

그 해, 노연창이 사냥과 놀이에 시간을 보내면서 군대를 소외시키자, 여구는 노연창을 암살하고 건주를 접수하였다. 그는 또한 노광조의 군사였던 담전파를 살해하려고 하였으나, 담전파는 병을 핑계대고 자신은 노령을 이유로 이미 은퇴해 있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목숨을 건졌다. 그 후, 후량 태조 주전충은 그 해 12월 29일에 여구를 건주방어사로 임명하였다. 여구는 그 직후 사망하였고, 그의 부장인 아장(牙將) 이언도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