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도 (건주방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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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언도는 912년 건주방어사 여구 사망 후 건주를 장악하고 지주사를 대행하며 건주방어사 직책을 차지했다. 후량 조정에 의해 임명된 것으로 추정되며, 권력 장악 후 노연창의 모사 담전파는 은퇴했다. 이언도 통치 기간 중 청해군 절도사 유암의 공격으로 소주가 건주 통제에서 이탈했고, 913년 사망 후 담전파가 지주사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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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도 (건주방어사)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이언도 |
원어명 | 李彦圖 |
국가 | 후량 |
직책 | 건주방어사 |
출생일 | 미상 |
출생지 | 미상 |
사망일 | 912년 말 또는 913년 초 |
사망지 | 건주 |
국적 | 후량 (?) |
경력 | 아장(牙將) → 건주방어사(虔州防禦使) |
소속 | 노광조 (?) → 노연창 (?) → 여구 → (명목상) 주전충 (?) |
직업 | 오대십국 시대 초기 군관, 건주방어사 |
2. 생애
이언도의 출신지와 출생 연도를 포함한 개인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2] 912년 초, 전임자 여구가 사망한 후 건주를 장악하고 방어사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2] 그는 913년 초(음력으로는 912년 말)에 사망하였으며, 건주 사람들은 담전파를 그의 후임으로 추대하였다.[2]
2. 1. 권력 장악
912년 초, 이전 방어사 노연창을 살해하고 건주를 장악했던 여구가 사망하였다.[2] 당시 여구 휘하의 아장(牙將)이었던 이언도는 건주를 접수하고 지주사(知州事, 주의 업무를 임시로 총괄하는 직책)를 대행하며 사실상 건주방어사 자리를 차지하였다.[2] 그가 후량 조정이나 경쟁국이었던 오나라로부터 정식으로 임명을 받았는지는 기록상 명확하지 않다. 다만, 오나라는 이전에 노연창을 건주자사로 임명한 바 있었으나, 당시 정황상 이언도는 후량 조정에 의해 방어사로 임명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2]이언도가 권력을 장악하자, 과거 노연창의 아버지 노광조의 오랜 참모였던 노장 담전파는 병이 위독하다는 이유로 군사 업무에서 물러났다. 앞서 여구는 담전파를 살해하려 한 적이 있었다.[2] 담전파가 병으로 물러났다는 소식을 들은 청해군(淸海軍, 본부는 현재의 광동성 광주시) 절도사 유암은 건주 관할 아래에 있던 소주를 공격하였다. 소주는 명목상 후량의 영토였으나, 노연창이 임명했던 소주자사 요상(廖爽)은 성을 버리고 초나라로 달아났다. 이로 인해 소주는 건주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후 초나라의 왕 마은은 후량 조정에 표문을 올려 요상을 영주자사로 임명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2]
2. 2. 통치 기간 및 사망
이언도가 권력을 잡은 이후, 노연창의 아버지 노광조를 위해 오랫동안 모사로 활약했던 노장 담전파는 병이 위독하다는 핑계를 대고 군사 업무에서 은퇴하였다.[2] 담전파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청해군(淸海軍, 본부는 현재 광동성 광저우시 소재) 절도사 유암은 명목상 후량의 영토에 속해 있던 건주 관하의 소주를 공격하였다. 노연창이 임명했던 소주자사 요상(廖爽)은 소주를 버리고 초나라로 달아났고, 이에 따라 소주는 건주의 통제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그 후, 초나라 왕 마은은 후량 조정에 표문을 올려 요상을 영주자사로 임명하였다.[2]이언도는 913년 초(음력으로는 912년 말)에 사망하였다. 건주 사람들은 담전파를 지주사로 추대하여 그의 뒤를 잇게 하였다.[2]
참조
[1]
서적
Zizhi Tongjian
https://zh.wikisourc[...]
[2]
서적
자치통감
https://zh.wikisou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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