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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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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남루는 경상남도 밀양시에 있는 누각으로, 고려 예종 때 처음 건립되었다. 1366년 공민왕 때 밀양부사 김주가 중수하고 영남루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건과 재건을 거쳐 현재의 건물은 1844년에 재건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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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루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개요
밀양 영남루
밀양 영남루
명칭밀양 영남루 (密陽 嶺南樓)
영문 명칭Yeongnamnu Pavilion, Miryang
종류국보
지정 번호지정되지 않음 (2023년 12월 28일 국보 지정)
주소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24 (내일동)
시대조선시대
소유자국유
문화재 보호 구역 면적15필지 12,931.7m2
상세 정보
수량1동

2. 역사

영남루는 신라 법흥왕 때 지어진 영남사에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고려 공민왕 14년(1365년)에 밀양부사 김주가 영남사를 개창하고 절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4]

2. 1. 고려 시대

영남루는 신라 법흥왕 때 지은 절이 있던 자리였다. 고려 현종 때 절을 없애고 종각이 없던 금벼루만 두었던 것을 고려 예종 때 영남루를 지었다.[4] 1365년 공민왕 14년에 밀양부사 김주가 중수하면서 절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4]

2. 2. 조선 시대

1460년 세조 6년에 부사 강숙경이 누각의 규모를 키워 중건하였고 신숙주가 누기를 지었다.[4] 1542년 중종 37년에 부사 박세후가 다시 중건하였다.[4]

1582년 선조 15년 병화(兵火)로 대루와 부속건물이 불타버렸는데,[4] 1637년 인조 15년에 부사 심흥이 재건하고 이지온이 단청을 하였다.[4] 1842년 헌종 8년에 실화로 소실된 것을 2년 뒤인 1844년에 부사 이인재가 재건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4]

조선시대 후반기 건물로 건축미와 규모면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로 손꼽힌다.[4] 부사 이인재가 중건할 때 추남 이장한이 상량문을 지었으며, 준공 후 김홍근이 지은 상량문이 현판으로 걸려있다.[4]

3. 건축

영남루는 동서 5칸, 남북 4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2층 누각으로, 동서 좌우에는 각각 3칸의 익루인 능파각과 침류각이 달려 있다.[4] 문헌에 따르면 영남루는 옛 영남사의 절터에 지어졌으며, 고려 공민왕 14년(1365년)에 밀양부사 김주가 개창하여 절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고 하였다고 전한다.[4]

신라 법흥왕 때 절을 지었다가 고려 현종 때 절을 없애고 종각이 없던 금벼루만 두었던 것을 고려 예종 때 영남루를 지었으며, 1366년 공민왕 14년에 김주가 중수하였다고 전해진다.[4]

그 뒤 1460년 조선 세조 6년에 부사 강숙경이 누각의 규모를 키워 중건하였고 신숙주가 누기를 지었다. 1542년 중종 37년에 부사 박세후가 다시 중건하였다.[4]

1582년 선조 15년 병화(兵火)로 대루와 부속당우가 불타버렸는데, 1637년 인조 15년에 부사 심흥이 재건한 것을 부사 이지온이 단청을 하였다. 1842년 헌종 8년에 실화로 소실한 것을 2년 뒤인 1844년에 부사 이인재가 재건한 것이 현재의 건물이다.[4]

조선시대 후반기에 속하는 건물로서는 건축미와 규모면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부사 이인재가 중건할 때의 상량문은 추남 이장한이 지었으며, 준공한 뒤에 김홍근이 지은 상량문이 현판으로 걸려있다.[4]

4. 갤러리

참조

[1] 간행물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 보물 지정 예고 문화재청장 2016-11-11
[2] 웹인용 밀양 영남루 - 대한민국구석구석 http://korean.visitk[...] 한국관광공사 2013-04-02
[3] 웹인용 강원·영남 대표 누각 "삼척 죽서루·밀양 영남루" 국보로 승격 https://www.sportswo[...] 스포츠월드 2023-12-28
[4] 서적 미리벌의 얼 밀양시 198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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