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제어단
1. 개요
연제어단은 군신선우의 태자였다. 원삭 3년(기원전 127년)에 아버지가 죽고 숙부 이지사선우가 스스로 선우가 되자 전한으로 도망쳤다. 전한에서 섭안후에 봉해졌으나 이듬해 5월에 사망했으며, 아들이 없어 섭안후국은 폐지되었다. 사와다 이사오는 저서 《흉노》에서 연제어단이 병약했기에 전한으로 망명했고, 당시 흉노가 전한 무제와 대립했기에 이지사선우를 세웠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연제어단에 대한 기록은 반고의 《한서》 〈흉노전〉에 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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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6년 사망 -
효경황후
효경황후 왕지는 경제의 총애를 받아 황후가 되었고 무제의 생모로서 황태후가 되어 권력을 누린, 궁중 암투와 권력 쟁취, 아들 무제 통치에 영향을 미친 전한 경제의 황후이다. -
기원전 126년 사망 -
유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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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 사람 -
이릉
이릉은 전한의 무장으로 이광의 손자이며 기마궁술에 능하여 무제의 총애를 받았으나 흉노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항복 후 흉노의 우교왕이 되어 20여 년간 망명 생활을 하다 병사했고 그의 항복은 조국을 배신했다는 비판과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옹호론이 있다. -
흉노 사람 -
한왕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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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군신선우의 태자로, 원삭 3년 겨울(기원전 127년) 아버지가 죽고 숙부 이지사선우가 스스로 선우로 서서 공격해 격파되자 전한으로 도망쳤다. 전한에서는 이해 여름(기원전 126년) 4월 병자일(초7일)에 섭안후(涉安侯)에 봉했으나, 5월에 죽었다. 아들이 없어 섭안후국은 폐지됐다.
사와다 이사오(沢田 勲)는 저서 《흉노》에서, 연제어단이 병약했기 때문에 전한에 망명하고 얼마 못 가 죽은 것이고, 당시 흉노가 무제와 맞서고 있었기에 병약한 연제어단 대신 이지사선우를 세워 흉노와 맞서려 한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2.1. 전한으로의 망명과 죽음
군신선우의 태자로, 원삭 3년 겨울(기원전 127년) 아버지가 죽고 숙부 이지사선우가 스스로 선우로 서서 공격해 격파되자 전한으로 도망쳤다. 전한에서는 이해 여름(기원전 126년) 4월 병자일(초7일)에 섭안후(涉安侯)에 봉했으나, 5월에 죽었다. 아들이 없어 섭안후국은 폐지됐다.
사와다 이사오(沢田 勲)는 저서 《흉노》에서, 연제어단이 병약했기 때문에 전한에 망명하고 얼마 못 가 죽은 것이고, 당시 흉노가 무제와 맞서고 있었기에 병약한 연제어단 대신 이지사선우를 세워 흉노와 맞서려 한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3. 평가
4. 출전
반고의 [[한서]] 〈흉노전〉에 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