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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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태조는 막리지 연자유의 아들로, 고구려의 막리지와 대대로를 역임했다. 그는 연개소문, 연정토, 그리고 연수영의 아버지였다. 고구려가 수나라를 상대로 승리한 후, 연태조는 수나라에 강경한 입장을 가진 북방파의 일원으로서, 영류왕과 문관들로 구성된 남방파와 대립했다. 결국 연태조는 자신의 지위를 아들 연개소문에게 넘기려 했으나 실패하고 사망했다. 그의 사후, 막리지 직위는 을지문덕에게, 동부 대대로 직위는 연개소문에게 이어졌고, 연개소문은 쿠데타를 일으켜 고구려 영류왕을 몰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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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태조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이름 | 연태조 |
원어 이름 | 淵太祚 |
별명 | 천태조 |
국적 | 고구려 |
가문 | 연씨 |
성별 | 남성 |
생애 | |
출생일 | 568년 |
출생지 | 고구려 동부 |
사망일 | 631년 |
사망지 | 미상 |
부친 | 연자유 |
배우자 | 소씨(蘇氏) |
자녀 | 연개소문, 연정토, 연수영 |
관직 | |
작위 | 고구려의 막리지 |
전임 | 연자유 |
후임 | 연개소문 |
기타 정보 |
2. 생애
연태조는 막리지 연자유의 아들이다. 1923년 중국 뤄양에서 발견된 연남생 묘지명에 의하면 연태조는 막리지(莫離支)를 역임한 것으로 되어 있다.[1][2][3] 대대로, 동부 욕살 등을 지냈다. 그가 사망할 당시 장남 연개소문은 15세였다고 한다.
고구려가 수나라를 상대로 승리한 후, 고구려 조정 내에서 수나라에 대한 강경책과 평화 유지를 두고 북방파와 남방파 간의 내분이 발생했다.
연태조는 전임 막리지 연자유의 아들이자, 연개소문, 연정토와 그들의 유일하게 알려진 여동생의 아버지였다. 생전에 그는 고구려 서부 지역의 대대로였으며 아버지 사망 이후 고구려의 막리지를 역임하였다.
3. 고구려-수 전쟁 이후
3. 1. 북방파와 남방파의 대립
고구려가 수나라를 상대로 승리한 후, 고구려 조정 내에서 내분이 발생했다. 수나라에 강경한 입장을 가진 연태조, 을지문덕 및 무관들로 구성된 북방파와 수나라와의 평화를 선호하는 고건무와 문관들로 구성된 남방파는 양현감의 반란으로 혼란에 빠진 수나라를 공격할지 여부를 놓고 다툼을 벌였다. 이 대립에서 남방파가 승리했고, 연태조는 자신의 지위를 장남인 연개소문에게 넘기려 했지만, 다른 대대로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결국 연태조는 자신의 지위를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3. 2. 갈등의 결과
고구려가 수나라를 상대로 승리한 후, 고구려 조정 내에서 내분이 발생했다. 수나라에 강경한 입장을 가진 북방파와 수나라와의 평화를 선호하는 남방파는 양현감의 반란으로 수나라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 고구려가 공격할지 여부를 놓고 다툼을 벌였다. 북방파는 연태조, 을지문덕 및 무관들로 구성되었으며, 남방파는 고건무와 문관들로 구성되었다. 남방파가 승리했고, 연태조는 자신의 지위를 장남인 연개소문에게 넘기려 했지만, 다른 대대로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결국 연태조는 자신의 지위를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4. 유산
연태조의 '만리지' 직위는 을지문덕에게 주어졌고, 결국 연개소문에게 넘어갔다. 동부 대대로 직위 또한 그의 장남에게 주어졌다. 연개소문은 이후 쿠데타를 일으켜 고건무를 몰아냈는데, 그는 고구려의 27대 태왕이었다. 연개소문은 668년 당나라-신라 연합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하기 전 마지막 영광의 시기를 이끌었다.
5. 가계
연자유의 아들이다. 막리지를 역임하였고, 대대로, 동부 욕살 등을 지냈다. 1923년 중국 뤄양에서 발견된 연남생 묘지명에 의하면 연태조는 막리지(莫離支)를 역임한 것으로 되어 있다.[1][2][3] 그가 사망할 당시 장남 연개소문은 15세였다고 한다.
연태조는 전임 ''막리지'' 연자유의 아들이자, 연개소문, 연정토, 그리고 그들의 유일하게 알려진 여동생의 아버지였다. 생전에 그는 고구려 서부 지역의 대대로였으며 아버지 사망 이후 고구려의 ''막리지''이기도 했다.
6. 연태조가 등장하는 작품
참조
[1]
백과사전
연개소문 - Daum 백과사전
http://enc.daum.net/[...]
[2]
서적
조선위인전 (범우문고 157)
범우사
2007
[3]
서적
고조선 사라진 역사-논쟁으로 밝혀낸 우리 고대사의 진실
동아일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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