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용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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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천 용계서원은 이맹전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이맹전은 단종을 위해 절개를 지킨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려 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정진했다. 정조 6년(1782)에 토곡동에 건립되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노항동으로 이전되어 서당으로 사용되다가 1976년 영천댐 건설로 인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영천 용계서원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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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 정면
이름용계서원
한자 표기龍溪書院
유형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지정 번호55
지정일1974년 12월 10일
주소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303번지
관리벽진이씨경은파종중
상세 정보
시대알 수 없음
면적알 수 없음
수량1동
전승지알 수 없음
전승자알 수 없음
참고알 수 없음
웹사이트알 수 없음
문화재청 ID21,005500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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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맹전과 생육신

이맹전은 조선 단종(재위 1452∼1455) 때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을 닦으며 일생을 보낸 생육신 중 한 사람이다.

3. 용계서원

이맹전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서원이다. 이맹전은 조선 단종(재위 1452∼1455) 때 수절한 생육신 중 한 명으로,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탐내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을 닦으며 일생을 보냈다.

3.1. 건립과 이전

이맹전조선 단종(재위 1452∼1455)을 위하여 수절한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탐내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을 닦으며 일생을 보냈다. 정조의 명으로 이맹전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용계서원이 건립되었다.

정조 6년(1782)에 왕명으로 토곡동에 건립된 용계서원은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노항동으로 옮겨 서당으로 사용되다가, 1976년 영천댐 건설로 인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올린 누각건물이다.

3.2. 건축 양식

영천 용계서원은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올린 누각건물이다.

4. 경

'경'은 이맹전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공간으로,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4.1. 이맹전 추모 공간

경은 이맹전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서원이다.

이맹전조선 단종(재위 1452∼1455)을 위하여 수절한 생육신 가운데 한 명으로,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탐내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을 닦으며 일생을 보냈다.

정조 6년(1782)에 왕명으로 토곡동에 건립된 용계서원은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노항동으로 옮겨 서당으로 사용되다가, 1976년 영천댐 건설로 인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