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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코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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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예리코 전투는 기원전 13세기, 히브리인들이 야훼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는 야훼의 예언에 따라 요르단 강을 건너 예리코 성을 공격했다. 야훼는 히브리인들에게 6일 동안 성을 돌고, 7일째 되는 날 나팔을 불고 함성을 지르면 성벽이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고, 그 예언대로 예리코 성이 함락되었다. 이 전투는 가나안 정복의 중요한 시작점이 되었으며, 히브리 민족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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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코 전투 - [전쟁]에 관한 문서
전투 개요
명칭예리코 전투
부분전해당 사항 없음
예리코 점령
시기청동기 시대
장소예리코
좌표해당 사항 없음
원인해당 사항 없음
지도 종류해당 사항 없음
위도해당 사항 없음
경도해당 사항 없음
지도 크기해당 사항 없음
지도 설명해당 사항 없음
지도 레이블해당 사항 없음
결과이스라엘의 승리
현재 상황해당 사항 없음
교전 세력
교전 1이스라엘
교전 2가나안
교전 3해당 사항 없음
지휘관 및 지도자
지휘관 1여호수아
지휘관 2예리코의 왕
지휘관 3해당 사항 없음
병력 규모
병력 18000명
병력 2500명
병력 3해당 사항 없음
사상자 및 피해
사상자 1불명
사상자 22500명
사상자 3해당 사항 없음
기타 정보
추가 정보해당 사항 없음

2. 전투 발생 전

기원전 13세기 히브리인들은 야훼의 명령에 따라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으로 향했다.[1] 이들은 가나안에 바로 진입하는 대신, 정탐꾼을 보내 가나안 족속들의 동태를 살피기로 했다.

2. 1. 가나안 정찰

기원전 13세기 히브리인들은 야훼의 명령에 따라 이집트를 탈출해 모세의 지도 하에 가나안으로 가게 된다.[1]

히브리인들은 가나안으로 바로 진입하는 대신, 가나안 토착 족속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12명의 정찰대를 보냈다.[1] 그러나 정찰대 12명 중 여호수아갈렙만이 당장 가나안으로 쳐들어가자고 주장했고, 나머지 10인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죽는다며 민중을 선동했다.[1]

2. 2. 야훼의 분노와 방랑

야훼는 12인의 정찰대 중 여호수아갈렙을 제외한 10인이 가나안 정복에 대해 부정적인 보고를 하자 이에 분노하였다.[1] 야훼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히브리인들에게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랑 생활을 해야 하는 벌을 내렸다.[1]

3. 전투의 전개

모세 사후, 여호수아가 히브리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 가나안 정복을 준비했다. 히브리군은 야훼의 명에 따라 요르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을 시작했다. 야훼는 여호수아에게 예리코 성을 함락시킬 방법을 예언했고, 히브리군이 예언대로 행하자 예리코 성이 무너졌다.[3]

3. 1. 요르단 강 도하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가 그의 뒤를 이었다.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 즉 가나안 정복을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마침내 히브리군은 "야훼께서 약속하신 땅이다"라는 명분 아래 요르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을 시작하였다.[3]

3. 2. 야훼의 예언과 예리코 함락

야훼는 여호수아에게 "모든 군사가 6일 동안 매일 한 번씩 예리코 성 주위를 돌고 제사장들은 언약궤 앞에서 나아가며, 7일째 되는 날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어 그 소리가 들릴 때 백성들이 야훼의 영광을 외쳐부르면 성벽이 무너질 것이다"라는 예언을 하였다.[3]

히브리군이 예언에 따라 행하자 예리코 성은 무너졌고, 이는 가나안 정복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4. 전투의 결과 및 영향

예리코 전투의 승리는 히브리인들의 가나안 정복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참조

[1] 문서 문어역성서
[2] 문서 신개역성서
[3] 문서 여호수아기 6장 2절~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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