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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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성소는 히브리어에서 유래된 용어로, 가장 거룩한 장소를 의미한다.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는 성막과 솔로몬 성전, 제2성전에 존재했으며,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성소 안에는 언약궤가 있었고, 휘장으로 성소와 구분되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회복된 것을 상징한다. 동방 정교회 등에서는 지성소의 전통을 이어가며, 교회 내 가장 신성한 장소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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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은좌는 기독교 예배에서 신성한 임재와 은혜를 구하는 특별한 의자 또는 공간으로, 구약성경의 언약궤 덮개에서 유래되었으며, 부흥 운동을 통해 널리 퍼져 신앙적인 결심을 촉구하고 기도를 이끄는 역할을 하며 설교 묵상과 공동체 의식 강화에 기여한다. - 법궤 - 아론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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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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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 | |
명칭 | |
한국어 | 지성소 (至聖所) |
히브리어 | קֹדֶשׁ הַקֳּדָשִׁים (Qōḏeš haqQŏḏāšīm) הַדְּבִיר (HaDəḇīr) |
로마자 표기 | Qodesh HaKodashim Hadevir |
영어 | Holy of Holies |
위치 | |
성전 | 예루살렘 성전 |
구역 | 가장 안쪽 구역 |
설명 | |
기능 | 계약의 궤 안치 장소 속죄일에 대사제만 출입 가능 |
성경 | 구약성경에 묘사 지성소는 성막과 예루살렘 성전 내에 있었음 |
특징 | 가장 신성한 장소 일반인은 출입 불가 |
관련 항목 | |
관련 문서 | 성막 예루살렘 성전 계약의 궤 대사제 속죄일 |
2. 히브리어 용어 및 번역
"지성소"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를 번역한 것으로, 최상급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유사한 표현의 예로는 "종의 종"(창 9:25), "안식일 중의 안식일"(출 31:15), "신들의 신"(신 10:17), "헛됨 중의 헛됨"(전 1:2), "아가"(아가 1:1), "왕 중의 왕"(에 7:12) 등이 있다.
지성소는 휘장에 의해 성소와 구분되었으며,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29]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고, 들어갈 때는 속죄의 피를 가지고 가야 했다. 백성을 위해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속죄소 위와 앞에 뿌렸다. 히브리서에는 성소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행해진 구원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는데, 이는 예수의 보혈에 힘입어 일반 성도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로 변화되었다.[29]
인가된 킹 제임스 성경에서 "지성소"는 항상 "지극히 거룩한 곳"으로 번역된다. 이는 히브리어 관용구의 의도인 최고의 거룩함을 표현하는 데 부합한다. 따라서, "지극히 거룩한 곳"이라는 이름은 많은 영어 문서에서 "지성소"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관련 용어로는 ''데비르''가 있는데, 이는 칠십인역에서 으로 음역되었으며, 성소의 뒤쪽(즉, 서쪽) 부분을 의미하거나,[5] ד־ב־ר 동사 어간 "말하다"에서 파생되어, 불가타에서 이를 ''oraculum''으로 번역하는 것을 정당화하며, 전통적인 영어 번역 "신탁" (KJV, 1611)은 이에서 파생되었다.[6]
고대 외경에 속하는 『예언자들의 생애』에 따르면,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죽은 후, 성전의 제사장들은 더 이상 이전처럼 주님의 천사들의 환영을 볼 수 없었고, 에봇으로 점을 칠 수도 없었으며, ''데비르''에서 응답을 받을 수도 없었다.[20]
3. 고대 이스라엘
열왕기상 6장에 따르면, 지성소는 한 변이 20 큐빗인 정육면체이며, 내벽은 조각된 삼나무 판으로 덮여 있고, 천장에서 바닥까지 금으로 덮여 있었다. 그 안에는 높이 10 큐빗, 날개 길이 5 큐빗인 케루빔 목상 2개가 설치되었으며, 이 목상에도 금이 씌워졌다.
3. 1. 성막
קֹדֶשׁ הַקֳּדָשִׁים|코데쉬 하코다쉼he 또는 Sanctum sanctorum|산툼 산토룸la이라고도 불리는 지성소는 여호와가 거하는 곳으로,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였다. 1년에 한 차례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29] 지성소 안에는 언약궤가 있었으며, 언약궤 위에는 속죄소가 있었다. 이 방에서 대제사장은 백성들을 대신하여 해마다 속죄하였다. 아론과 그 자손들이 지성소의 모든 일을 담당하였다.[29]
히브리 성경에 따르면,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도록 하기 위해 하느님은 모세에게 성소를 세울 지침을 주셨다. 그 지침은 다음과 같다.
성경에 따르면, 지성소는 휘장으로 덮여 있었고,[7] 대제사장을 제외한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으며, 대제사장조차도 1년에 한 번 욤 키푸르에만 들어가[8] 희생 제물의 피와 향을 바쳤다. 성경은 광야에서 성막이 처음 세워진 날에 주의 구름이 성막을 덮었다고 기록한다(). 이 기록은 다른 때에도 있었으며, 주님께서 자비의 보좌(''카포렛'') 위에 구름 가운데 나타나실 것이고, 그 때 제사장들은 성막에 들어가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레위기 16:2). 히브리 성경에 따르면 지성소에는 그룹의 형상이 있는 언약궤가 있었다.
성막 봉헌이 완료되자, 하느님의 음성이 "그룹들 사이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솔로몬 성전과 제2성전이 존재했을 때 지성소는 성막과 예루살렘 성전 내의 내성소로 사용되었다. 파로케트는 베틀에서 직접 짠 천사 모티프가 있는 브로케이드 커튼으로, 지성소를 덜 신성한 성소와 구분했다.[9]
지성소는 성전 건물의 가장 서쪽 끝에 위치했으며, 20 큐빗 길이, 20 큐빗 폭, 20 큐빗 높이의 정육면체였다. 내부는 어두웠으며 안팎에 금박을 입힌 언약궤가 있었고, 그 안에는 돌판이 놓여 있었다.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아론의 지팡이와 만나가 담긴 항아리도 궤 안에 있었다.[10] 언약궤는 "자비의 덮개(mercy seat)"()라고 알려진 순금으로 만들어진 덮개로 덮여 있었고, 이 덮개는 금으로 두드려 만든 천사들의 날개로 덮여 쉐키나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
바빌론 유수 이후 성전이 재건되었을 때, 언약궤는 더 이상 지성소에 없었다. 대신, 언약궤가 놓였던 곳을 표시하기 위해 바닥의 일부를 약간 높였다.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제2 성전 시대에는 두 개의 휘장이 지성소와 더 작은 성소를 구분했다. 이 휘장은 수 놓은 것이 아니라 베틀에서 직접 짠 무늬로 만들어졌으며, 각 휘장은 손 너비(약 9cm, 3½인치)의 두께를 가지고 있었다.[11] 요세푸스는 폼페이우스가 기원전 63년에 지성소에 들어가려고 고집함으로써 성전을 모독했다고 기록한다.[12] 티투스가 제1차 유대-로마 전쟁 중에 도시를 점령했을 때, 로마 군인들은 휘장을 뜯어내어 성전에서 가져온 금제 그릇들을 싸는 데 사용했다.
욤 키푸르에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들어가 희생된 동물의 피(대제사장과 그의 가문을 속죄하기 위해 바쳐진 수소와 백성을 속죄하기 위해 바쳐진 염소(여기에서 속죄양이라는 용어가 유래됨))를 뿌리고, 언약궤와 속죄소 위에 향을 피웠다. 이는 제1성전에서 이루어졌다. 제2성전에는 언약궤가 없었으며, 언약궤가 있었을 곳에 피를 뿌리고 향은 분향 제단에 놓았다. 제물이 희생되고 피는 지성소로 옮겨졌다. 금 또한 지성소에서 발견되었다.
일 년에 한 번, 유대력의 7월 10일 속죄일에 대제사장만이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은 공간이다. 아카시아 나무로 틀을 짜고 천으로 가려 외부와 격리된, 한 변이 10큐빗인 정육면체 공간으로, 언약궤가 안치되어 있었다. 또한, 분향단도 지성소 안에 있었으며, 언약궤를 직접 보지 못하도록 지성소 안을 연기로 채웠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광야에서는 지성소 상공에 낮에는 구름이, 밤에는 불이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3. 2. 솔로몬 성전
지성소는 성막과 예루살렘 성전 내의 내성소로, 솔로몬 성전과 제2성전이 존재했을 때 사용되었다. 파로케트는 베틀에서 직접 짠 천사 모티프가 있는 브로케이드 커튼으로, 지성소를 덜 신성한 성소와 구분했다.[9]
지성소는 성전 건물의 가장 서쪽 끝에 위치했으며, 20 큐빗 길이, 20 큐빗 폭, 20 큐빗 높이의 정육면체였다. 내부는 어두웠으며 안팎에 금박을 입힌 언약궤가 있었고, 그 안에는 돌판이 놓여 있었다.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아론의 지팡이와 만나가 담긴 항아리도 궤 안에 있었다.[10] 언약궤는 "자비의 덮개"(mercy seat영어)라고 알려진 순금으로 만들어진 덮개로 덮여 있었고, 이 덮개는 금으로 두드려 만든 천사들의 날개로 덮여 쉐키나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열왕기상 6장의 묘사에 따르면, 지성소는 한 변이 20 큐빗인 정육면체이며, 내벽은 조각된 삼나무 판으로 덮여 있고, 천장에서 바닥까지 금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높이 10 큐빗, 날개 길이가 5 큐빗인 케루빔(복수형은 케루빔)의 목상 2개가 설치되었으며, 이 목상에도 금이 씌워졌다. 이 외에 언약궤가 안치된 점이나, 유월절 전날의 속죄일에 대제사장 1명만이 들어가는 것이 허용된 점 등은 성막과 동일하다.
3. 3. 제2성전
히브리 성경에 따르면,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하느님은 모세에게 성소를 세울 지침을 주셨다. 바빌론 유수 이후 성전이 재건되었을 때, 언약궤는 더 이상 지성소에 없었다. 대신, 언약궤가 놓였던 곳을 표시하기 위해 바닥의 일부를 약간 높였다.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제2성전 시대에는 두 개의 휘장이 지성소와 더 작은 성소를 구분했다. 이 휘장은 베틀에서 직접 짠 무늬로 만들어졌으며, 각 휘장은 손 너비(약 9cm)의 두께를 가지고 있었다.[11] 요세푸스는 폼페이우스가 기원전 63년에 지성소에 들어가려고 고집함으로써 성전을 모독했다고 기록한다.[12] 티투스가 제1차 유대-로마 전쟁 중에 도시를 점령했을 때, 로마 군인들은 휘장을 뜯어내어 성전에서 가져온 금제 그릇들을 싸는 데 사용했다.
4. 욤 키푸르 (대속죄일)
히브리 성경에 따르면, 욤 키푸르(대속죄일)는 1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이다.[8] 이날 대제사장은 희생 제물의 피와 향을 바쳤다. 성경은 광야에서 성막이 처음 세워진 날에 주의 구름이 성막을 덮었다고 기록한다. 주님께서 자비의 보좌(''카포렛'') 위에 구름 가운데 나타나실 것이고, 그 때 제사장들은 성막에 들어가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레위기 16:2).
욤 키푸르에 대제사장은 희생된 동물의 피(대제사장과 그의 가문을 속죄하기 위해 바쳐진 수소와 백성을 속죄하기 위해 바쳐진 염소)를 언약궤와 속죄소 위에 뿌리고, 향을 피웠다. 이는 제1성전에서 이루어졌다. 제2성전에는 언약궤가 없었으며, 언약궤가 있었을 곳에 피를 뿌리고 향은 분향 제단에 놓았다. 제물이 희생되고 피는 지성소로 옮겨졌다.
유대력의 7월 10일 속죄일에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지성소는 아카시아 나무로 틀을 짜고 천으로 가려 외부와 격리된, 한 변이 10큐빗인 정육면체 공간으로, 언약궤가 안치되어 있었다. 또한, 분향단도 지성소 안에 있었으며, 언약궤를 직접 보지 못하도록 지성소 안을 연기로 채웠다고 전해진다. 광야에서는 지성소 상공에 낮에는 구름이, 밤에는 불이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열왕기상 6장의 묘사에 따르면, 지성소는 한 변이 20 큐빗인 정육면체이며, 내벽은 조각된 삼나무 판으로 덮여 있고, 천장에서 바닥까지 금으로 덮여 있었다. 그 안에는 높이 10 큐빗, 날개 길이가 5 큐빗인 케루빔의 목상 2개가 설치되었으며, 이 목상에도 금이 씌워졌다. 이 외에 언약궤가 안치된 점이나, 유월절 전날의 속죄일에 대제사장 1명만이 들어가는 것이 허용된 점 등은 성막과 동일하다.
5. 고대 유대교
히브리 성경에 따르면,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하시도록 모세에게 성소를 세울 지침을 주셨다. 그 지침은 다음과 같다.[7]
구성 요소 | 설명 |
---|---|
나무 궤 | 안팎을 금으로 입힌 궤, 언약의 돌판 보관, 순금 덮개(자비의 보좌)는 신성한 임재를 위함. |
진설병 상 | 금으로 입힌 상, 빵 덩어리를 올려놓음. |
메노라 | 금으로 만든 7개의 등잔, 꺼지지 않는 빛을 위함. |
거처 | 지성소를 가리는 덮개, 은 받침대 위에 세워지고 나무 볼트로 연결된 널빤지로 만든 벽, 파란색, 자주색, 진홍색, 흰색, 금색의 여러 색으로 된 커튼, 테이블과 촛대, 바깥쪽 커튼 포함. |
제물 제단 | 코르반/희생을 위한 청동 널빤지로 만든 제단. |
바깥뜰 | 기둥 위에 청동 받침대가 있고 은색 고리와 가로대로 연결된, 자수 커튼이 있음. |
거룩한 기름 | 등잔용 기름의 조제법 및 준비. |
성경에 따르면, 지성소는 휘장으로 덮여 있었고, 대제사장을 제외한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8] 대제사장조차도 1년에 한 번 욤 키푸르에만 들어가[8] 희생 제물의 피와 향을 바쳤다. 성경은 광야에서 성막이 처음 세워진 날에 주의 구름이 성막을 덮었다고 기록한다. 주님께서 자비의 보좌(''카포렛'') 위에 구름 가운데 나타나실 것이고, 그 때 제사장들은 성막에 들어가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 히브리 성경에 따르면 지성소에는 그룹의 형상이 있는 언약궤가 있었다. 성막 봉헌이 완료되자, 하느님의 음성이 "그룹들 사이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지성소는 성막과 예루살렘 성전 내의 내성소로, 솔로몬 성전과 제2성전이 존재했을 때 사용되었다. 파로케트는 베틀에서 직접 짠 천사 모티프가 있는 브로케이드 커튼으로, 지성소를 덜 신성한 성소와 구분했다.[9]
지성소는 성전 건물의 가장 서쪽 끝에 위치했으며, 20 큐빗 길이, 20 큐빗 폭, 20 큐빗 높이의 정육면체였다. 내부는 어두웠으며 안팎에 금박을 입힌 언약궤가 있었고, 그 안에는 돌판이 놓여 있었다.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아론의 지팡이와 만나가 담긴 항아리도 궤 안에 있었다.[10] 언약궤는 "자비의 덮개(mercy seat)"라고 알려진 순금으로 만들어진 덮개로 덮여 있었고, 이 덮개는 금으로 두드려 만든 천사들의 날개로 덮여 쉐키나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바빌론 유수 이후 성전이 재건되었을 때, 언약궤는 더 이상 지성소에 없었다. 대신, 언약궤가 놓였던 곳을 표시하기 위해 바닥의 일부를 약간 높였다.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제2 성전 시대에는 두 개의 휘장이 지성소와 더 작은 성소를 구분했다. 이 휘장은 수 놓은 것이 아니라 베틀에서 직접 짠 무늬로 만들어졌으며, 각 휘장은 손 너비(약 9cm)의 두께를 가지고 있었다.[11] 요세푸스는 폼페이우스가 기원전 63년에 지성소에 들어가려고 고집함으로써 성전을 모독했다고 기록한다.[12] 티투스가 제1차 유대-로마 전쟁 중에 도시를 점령했을 때, 로마 군인들은 휘장을 뜯어내어 성전에서 가져온 금제 그릇들을 싸는 데 사용했다.
지성소는 욤 키푸르에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들어가 희생된 동물의 피(대제사장과 그의 가문을 속죄하기 위해 바쳐진 수소와 백성을 속죄하기 위해 바쳐진 염소, 속죄양이라는 용어가 여기서 유래됨)를 뿌리고, 언약궤와 속죄소 위에 향을 피웠다. 이는 제1성전에서 이루어졌다. 제2성전에는 언약궤가 없었으며, 언약궤가 있었을 곳에 피를 뿌리고 향은 분향 제단에 놓았다. 제물이 희생되고 피는 지성소로 옮겨졌다. 금 또한 지성소에서 발견되었다.
마그달라 석은 서기 70년 성전 파괴 전에 조각된 지성소의 표현으로 여겨진다.[13]
전통적인 유대교는 내성소가 원래 위치했던 성전 산(모리아 산)을 미래의 제3성전에서 사용하기 위해 원래의 신성함의 일부 또는 전부를 유지하고 있다고 여긴다. 지성소의 정확한 위치는 논쟁의 대상이다.
전통적인 유대교는 지성소를 하느님의 현존이 깃든 장소로 여긴다. 탈무드는 성전 건축과 배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의 요마(Yoma)에서, '코데쉬 하코다쉼'(지성소)은 남북 방향에서는 에스플러네이드의 중앙에 위치해 있지만, 동서 방향에서는 서쪽에 상당히 치우쳐 있으며, 모든 주요 뜰과 기능 구역이 그 동쪽에 위치해 있다.
탈무드는 추가적인 세부 사항을 제공하며, 대제사장이 수행한 의식을 묘사한다. 연례 의식 동안, 대제사장은 테트라그라마톤을 발음했는데, 이는 유일하게 큰 소리로 발음되는 시점이었다.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그 말이 나오면 사람들은 땅에 완전히 엎드렸다. 탈무드에 따르면, 지성소에서 나온 대제사장의 얼굴은 빛났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지성소의 접근이 대제사장과 욤 키푸르에만 제한되었지만, 탈무드는 수리반이 필요에 따라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들이 작업해야 할 영역만 볼 수 있도록 울타리를 통해 방의 윗부분에서 내려졌다고 암시한다.[14][15]
유대교는 토라 궤, 즉 회당 내 토라 두루마리를 보관하는 곳을 소규모 지성소로 여긴다.
지성소의 정확한 위치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로, 성전의 정확한 위치에 대한 의문은 종종 성전 부정과 관련이 있다. 성전이 산 위에 정확히 어디에 서 있었는지에 대한 세 가지 주요 이론이 있다: 현재 돔 오브 더 록이 있는 곳; 돔 오브 더 록의 북쪽(아셔 카우프만 교수); 또는 돔 오브 더 록의 동쪽(히브리 대학교의 조셉 패트리치 교수).[16]
지성소의 위치는 유대교 성전의 위치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성전의 위치는 이미 탈무드에 자세히 설명된 바와 같이 제2성전 파괴 후 150년도 채 되지 않아 불확실해졌다. 브라코트 논문 54장에서는 지성소가 황금문과 직접 정렬되어 카우프만이 가정한 것처럼 지성소가 돔 오브 더 록의 북쪽에 약간 위치했을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17] 반면에 요마 54장과 산헤드린 논문 26장에서는 지성소가 기초석 위에 직접 서 있었다고 주장한다.[1][2]
십자군은 지성소를 돔 오브 더 록의 기초석 아래에 위치한 영혼의 우물과 연관시켰다.[3] 오늘날 대부분의 정통파 유대교는 실수로 거룩한 지역을 밟지 않도록 성전산에 올라가는 것을 완전히 피한다.[18] 몇몇 정통파 유대교 당국은 중세 학자 마이모니데스의 견해를 따라 유대인이 성전산의 성화된 지역 근처가 아닌 지역을 방문하는 것을 허용한다. 특히 성전 연구소 및 성전 재건 노력과 관련된 그룹에서 온 성전산의 정통파 유대교 방문객들은 미크바("물의 집합"; 정화 의식)에 담그고, 월경 중 또는 직후 또는 정액 배출 직후에 오지 않으며, 추정되는 위치를 향해 등을 보이지 않는 등 성전에 가까이 가는 최소 요구 사항을 준수하려고 한다.
종교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 기도하거나 의례적인 물건을 가져온 유대인 방문객은 일반적으로 경찰에 의해 그 지역에서 추방된다.[19]
일 년에 한 번, 유대력의 7월 10일 속죄일에 대제사장만이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은 공간이다. 아카시아 나무로 틀을 짜고 천으로 가려 외부와 격리된, 한 변이 10큐빗인 정육면체 공간으로, 언약궤가 안치되어 있었다. 또한, 분향단도 지성소 안에 있었으며, 언약궤를 직접 보지 못하도록 지성소 안을 연기로 채웠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광야에서는 지성소 상공에 낮에는 구름이, 밤에는 불이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열왕기상 6장의 묘사에 따르면, 한 변이 20 큐빗인 정육면체이며, 내벽은 조각된 삼나무 판으로 덮여 있고, 천장에서 바닥까지 금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높이 10 큐빗, 날개 길이가 5 큐빗인 케루빔(복수형은 케루빔)의 목상 2개가 설치되었으며, 이 목상에도 금이 씌워졌다. 이 외에 언약궤가 안치된 점이나, 유월절 전날의 속죄일에 대제사장 1명만이 들어가는 것이 허용된 점 등은 성막과 동일하다.
6. 랍비 유대교
히브리 성경에 따르면, 랍비 문학에서 지성소는 휘장으로 덮여 있었고,[7]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 대제사장조차도 1년에 한 번 욤 키푸르에만 들어가[8] 희생 제물의 피와 향을 바쳤다. 성막이 처음 세워진 날에 주의 구름이 성막을 덮었다고 기록한다.
지성소는 성막과 예루살렘 성전 내의 내성소로, 솔로몬 성전과 제2성전이 존재했을 때 사용되었다. 파로케트는 베틀에서 직접 짠 천사 모티프가 있는 브로케이드 커튼으로, 지성소를 덜 신성한 성소와 구분했다.[9] 지성소는 성전 건물의 가장 서쪽 끝에 위치했으며, 20 큐빗 길이, 20 큐빗 폭, 20 큐빗 높이의 정육면체였다. 내부에는 언약궤가 있었고, 그 안에는 돌판이 놓여 있었다.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아론의 지팡이와 만나가 담긴 항아리도 궤 안에 있었다.[10] 언약궤는 "자비의 덮개(mercy seat)"라고 알려진 순금 덮개로 덮여 있었고, 이 덮개는 금으로 두드려 만든 천사들의 날개로 덮여 쉐키나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바빌론 유수 이후 성전이 재건되었을 때, 언약궤는 더 이상 지성소에 없었다. 대신, 언약궤가 놓였던 곳을 표시하기 위해 바닥의 일부를 약간 높였다.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제2 성전 시대에는 두 개의 휘장이 지성소와 더 작은 성소를 구분했다. 이 휘장은 수 놓은 것이 아니라 베틀에서 직접 짠 무늬로 만들어졌으며, 각 휘장은 손 너비(약 9cm)의 두께를 가지고 있었다.[11] 요세푸스는 폼페이우스가 기원전 63년에 지성소에 들어가려고 고집함으로써 성전을 모독했다고 기록한다.[12] 티투스가 제1차 유대-로마 전쟁 중에 도시를 점령했을 때, 로마 군인들은 휘장을 뜯어내어 성전에서 가져온 금제 그릇들을 싸는 데 사용했다.
욤 키푸르에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들어가 희생된 동물의 피와 향을 언약궤와 속죄소 위에 뿌렸다. 이는 제1성전에서 이루어졌다. 제2성전에는 언약궤가 없었으며, 언약궤가 있었을 곳에 피를 뿌리고 향은 분향 제단에 놓았다.
마그달라 석은 서기 70년 성전 파괴 전에 조각된 지성소의 표현으로 여겨진다.[13]
전통적인 유대교는 내성소가 원래 위치했던 성전 산(모리아 산)을 미래의 제3성전에서 사용하기 위해 원래의 신성함의 일부 또는 전부를 유지하고 있다고 여긴다.
탈무드는 성전 건축과 배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의 요마(Yoma)에서, '코데쉬 하코다쉼'(지성소)은 남북 방향에서는 에스플러네이드의 중앙에 위치해 있지만, 동서 방향에서는 서쪽에 상당히 치우쳐 있으며, 모든 주요 뜰과 기능 구역이 그 동쪽에 위치해 있다.
탈무드는 대제사장이 수행한 의식을 묘사한다. 연례 의식 동안, 대제사장은 테트라그라마톤을 발음했는데, 이는 유일하게 큰 소리로 발음되는 시점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지성소의 접근이 대제사장과 욤 키푸르에만 제한되었지만, 탈무드는 수리반이 필요에 따라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들이 작업해야 할 영역만 볼 수 있도록 울타리를 통해 방의 윗부분에서 내려졌다고 암시한다.[14][15]
유대교는 토라 궤, 즉 회당 내 토라 두루마리를 보관하는 곳을 소규모 지성소로 여긴다.
십자군은 지성소를 돔 오브 더 록의 기초석 아래에 위치한 영혼의 우물과 연관시켰다.[3] 오늘날 대부분의 정통파 유대교는 실수로 거룩한 지역을 밟지 않도록 성전산에 올라가는 것을 완전히 피한다.[18]
7. 현대적 위치
유대교와 탈무드에 따르면, 성전산(모리아 산)은 미래의 제3성전에서 사용될 지성소의 원래 신성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지성소의 정확한 위치는 논쟁의 대상이지만, 성전 위치에 대한 의문은 성전 부정과 관련이 있다. 성전이 산 위에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세 가지 주요 이론이 존재한다.
이론 | 설명 |
---|---|
돔 오브 더 록 위치 | 현재 돔 오브 더 록이 있는 곳에 성전이 있었다는 이론. |
돔 오브 더 록 북쪽 | 아셔 카우프만 교수의 주장으로, 돔 오브 더 록 북쪽에 성전이 있었다는 이론. 브라코트 논문 54장에서는 지성소가 황금문과 직접 정렬되어 있었다고 언급한다.[17] |
돔 오브 더 록 동쪽 | 히브리 대학교의 조셉 패트리치 교수의 주장으로, 돔 오브 더 록 동쪽에 성전이 있었다는 이론. |
요마 54장과 산헤드린 논문 26장에서는 지성소가 기초석 위에 직접 서 있었다고 주장한다.[1][2] 십자군은 지성소를 돔 오브 더 록의 기초석 아래에 위치한 영혼의 우물과 연관시켰다.[3]
오늘날 대부분의 정통파 유대교는 실수로 거룩한 지역을 밟지 않도록 성전산에 올라가는 것을 피한다.[18] 그러나 일부 정통파 유대교 당국은 마이모니데스의 견해에 따라 유대인이 성전산의 성화된 지역 근처가 아닌 곳을 방문하는 것을 허용하기도 한다.
성전 재건 노력과 관련된 그룹의 정통파 유대교 방문객들은 미크바에 몸을 담그고, 월경 중이거나 직후 또는 정액 배출 직후에 오지 않으며, 추정되는 위치를 향해 등을 보이지 않는 등 성전에 가까이 가는 최소한의 요구 사항을 준수하려고 노력한다. 종교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 기도하거나 의례적인 물건을 가져온 유대인 방문객은 경찰에 의해 추방되기도 한다.[19]
8. 기독교
기독교에서 지성소는 여호와가 거하는 곳으로,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대제사장은 1년에 한 차례 대속죄일에만 지성소에 들어가(출애굽기 26:34) 백성을 위해 속죄하였다. 아론과 그 자손들이 지성소의 모든 일을 담당하였다.[29]
성경에 따르면, 지성소는 휘장으로 덮여 있었고,[7] 대제사장을 제외한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다. 대제사장조차도 1년에 한 번 욤 키푸르에만 들어가[8] 희생 제물의 피와 향을 바쳤다. 히브리 성경은 성막이 처음 세워진 날에 주의 구름이 성막을 덮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출애굽기 40:33-40:34).
히브리서에는 지성소가 때때로 성소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행해진 구원의 상징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힘입어 일반 성도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29]
기독교의 특정 분파들은 지성소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교회에서 제단 위에 영구적으로 설치된 캐노피인 성찬 덮개는 지성소를 상징한다.
8. 1. 신약성경
히브리 성경에 따르면,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도록 하느님은 모세에게 성소를 세울 지침을 주셨다. 그 지침은 다음과 같다.[7][8]- 나무 궤: 안팎을 금으로 입힌 궤로서, 언약의 돌판을 보관하며, 순금 덮개는 자비의 보좌로 신성한 임재를 위한 것이다.
- 금으로 입힌 진설병 상: 빵 덩어리를 올려놓는 상이다.
- 금으로 만든 메노라, 꺼지지 않는 빛을 위한 7개의 등잔.
- 거처: 지성소를 가리는 덮개, 은 받침대 위에 세워지고 나무 볼트로 연결된 널빤지로 만든 벽, 파란색, 자주색, 진홍색, 흰색, 금색의 여러 색으로 된 커튼, 테이블과 촛대, 바깥쪽 커튼 포함.
- 제물 제단: ''코르반''/희생을 위한 청동 널빤지로 만든 제단.
- 기둥 위에 청동 받침대가 있고 은색 고리와 가로대로 연결된, 자수 커튼이 있는 바깥뜰.
- 등잔용 거룩한 기름의 조제법 및 준비.
성경에 따르면, 지성소는 휘장으로 덮여 있었고, 대제사장을 제외한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으며, 대제사장조차도 1년에 한 번 욤 키푸르에만 들어가 희생 제물의 피와 향을 바쳤다. 성경은 광야에서 성막이 처음 세워진 날에 주의 구름이 성막을 덮었다고 기록한다. 이 기록은 다른 때에도 있었으며, 주님께서 자비의 보좌(''카포렛'') 위에 구름 가운데 나타나실 것이고, 그 때 제사장들은 성막에 들어가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레위기 16:2). 히브리 성경에 따르면 지성소에는 그룹의 형상이 있는 언약궤가 있었다.
히브리서에는 때때로 성소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 성역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행해진 구원의 상징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는데, 이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힘입어 일반 성도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의미로 변화되었다.[29]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가로막고 있는데 이것은 거룩한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의 구별과 이를 수 없는 간격을 나타내었다(히 9:3). 신약에서는 말씀이 육신되셨다. 율법의 완성이요 영원한 속죄의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가로놓였던 휘장이 찢어지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 깨어졌던 관계가 회복되었다. 제사를 지내는 구약의 율법을 바로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이 되셔서 인간을 구원하시고 구원을 주시는 은혜의 복음을 주신 것이다. 이런 장막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 하나님이 찢으셨다. 이 성경적인 의미는 하나님께 죄인이 다가갈 수 없었지만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이 화목이 되었고 관계가 회복된 것을 말한다.(마 27:51; 히 9:1-28; 10:19-20).[30]

성막 봉헌이 완료되자, 하느님의 음성이 "그룹들 사이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8. 2. 기독교 전통
기독교에서 지성소는 여호와가 거하는 곳으로,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대제사장은 1년에 한 차례 대속죄일에만 지성소에 들어가(출애굽기 26:34) 언약궤 위에 있는 속죄소에서 백성을 위해 속죄하였다. 아론과 그 자손들이 지성소의 모든 일을 담당하였다.[29]
성경에 따르면, 지성소는 휘장으로 덮여 있었고,[7] 대제사장을 제외한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다. 대제사장조차도 1년에 한 번 욤 키푸르에만 들어가[8] 희생 제물의 피와 향을 바쳤다. 히브리 성경은 성막이 처음 세워진 날에 주의 구름이 성막을 덮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출애굽기 40:33-40:34).
히브리서에는 지성소가 때때로 성소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행해진 구원의 상징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힘입어 일반 성도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29]
기독교의 특정 분파들은 지성소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교회에서 제단 위에 영구적으로 설치된 캐노피인 성찬 덮개는 지성소를 상징한다.
8. 2. 1. 가톨릭 교회
가톨릭 교회는 축성된 성체를 보관하는 성체 보관소 또는 그 위치(주로 성소 뒤편)를 지성소와 상징적으로 동일하게 여긴다. 이는 성체를 그리스도의 현존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라틴어 불가타 성경은 ''Qṓḏeš HaqQŏḏāšîm''을 Sanctum sanctorum (출애굽기 26:34)으로 번역하는데, 이는 "가장 거룩한 것"을 의미한다. 로마 가톨릭 신자들은 성체를 감실 안에 모셔둔 것을 지칭하는 데 이 표현을 사용한다.
불가타는 또한 복수형 ''Sancta sanctorum'' (역대기 5:7)으로 지성소를 지칭하는데, 아마도 그곳에 보관된 거룩한 물건들을 가리키는 제유법일 것이다. 이 형태는 예루살렘 성전 외의 다른 성소와 관련하여 가톨릭 전통에서 더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예를 들어 로마 라테란 대성당 단지 내의 예배당인 산타 산토룸 교회(Chiesa di San Lorenzo in Palatio ad Sancta Sanctorum)가 있다.
8. 2. 2. 동방 정교회
정교회에서는 성경과 전통에 따라, 성당 내부에 신품과 그 보조자(모두 남성만)만 들어갈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두고 있으며, 이곳을 지성소라고 부른다. 지성소는 이코노스타시스로 성소와 구분된다.지성소 중심에는 성체 기밀(성체 예식)이 집행되는 보좌가 있는데[28], 이는 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정면 왼쪽 뒤에는 헌상대가 있다. 이곳에는 성작과 같은 성기물이 안치되어 있으며, 성체 예식에 필요한 물품(빵과 포도주)을 준비하는 헌상 예식이 행해진다.
지성소에는 이 외에도 복음경이 보좌에 안치되어 있으며, 촛대, 디키리와 트리키리, 리피다와 같은 제구 등 다양한 제구가 놓여 있다.
다른 성당의 장소와 마찬가지로 이콘이 있다.
8. 2. 3. 에티오피아 정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동방 정교회와 비슷하게 가장 신성한 장소로 여기는 지성소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게에즈어 동족어는 ''키두세 키두산''(또는 ''베테 메크데스'')이며, 정교회 교회의 가장 안쪽 성소를 가리킨다. 이곳에는 ''타보트''가 보관되고 성직자만 들어갈 수 있다.[23]모든 에티오피아 정교회 교회에는 지성소가 있으며, 커튼으로 덮여 있다. 종종 세 개의 입구가 있는데, 이는 삼위일체를 상징한다. 가운데에는 교회의 ''타보트''가 보관되는 제단이 항상 있다. ''타보트'' 수만큼 제단이 있을 수 있다.[23]
8. 2. 4. 말라바르 나스라니 전통
ܡܫܟܢܐ ܕܩܘܕܫܐ ܩܘܕ̈ܫܐ|마쉬카나 드쿠드샤 쿠드셰syc (히브리어: קֹדֶשׁ הַקֳּדָשִׁים) 또는 성소는 성막과 예루살렘 성전 내의 내성소로, 솔로몬 성전과 제2성전이 존재했을 때 사용되었다. 파로케트는 베틀에서 직접 짠 천사 모티프가 있는 브로케이드 커튼으로, 지성소를 덜 신성한 성소와 구분했다.[9]성 토마스 기독교인(나스라니 또는 시리아 기독교인이라고도 함)은 남인도 케랄라 출신으로 여전히 많은 유대 기독교 전통을 따른다.[24] 나스라니 전통에서 지성소는 대부분 가려져 있다. 붉은 휘장은 내부 제단 또는 주 제단을 덮는다. 이 휘장은 나스라니 주요 의례의 중심 부분 동안에만 걷어낸다. 성 토마스 기독교인의 주요 의례는 쿠르바나이다.
8. 2. 5.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LDS Church)의 솔트레이크 성전에는 교회의 지성소가 있다.[25] 이곳에서 교회의 회장은 수석 대제사장으로서 활동하며, LDS 교회는 출애굽기 및 후기 성도 종교 텍스트에 따라 이스라엘의 대제사장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이행하기 위해 이곳에 들어간다.[25]8. 2. 6.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는 성막과 예루살렘 성전의 내성소인 지성소 개념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 성경에 따르면, 지성소는 휘장으로 덮여 있었고,[7]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 번 욤 키푸르에 들어가[8] 희생 제물의 피와 향을 바쳤다.솔로몬 성전과 제2성전이 존재했을 때 지성소는 성전 건물의 가장 서쪽 끝에 위치했으며, 20 큐빗 길이, 20 큐빗 폭, 20 큐빗 높이의 정육면체였다. 내부에는 언약궤가 있었고, 그 안에는 돌판이 놓여 있었다.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아론의 지팡이와 만나가 담긴 항아리도 궤 안에 있었다.[10] 언약궤는 "자비의 덮개"(mercy seat영어)라고 알려진 순금으로 만들어진 덮개로 덮여 있었고, 이 덮개는 금으로 두드려 만든 천사들의 날개로 덮여 쉐키나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바빌론 유수 이후 성전이 재건되었을 때, 언약궤는 더 이상 지성소에 없었다. 대신, 언약궤가 놓였던 곳을 표시하기 위해 바닥의 일부를 약간 높였다. 요세푸스는 폼페이우스가 기원전 63년에 지성소에 들어가려고 고집함으로써 성전을 모독했다고 기록한다.[12] 티투스가 제1차 유대-로마 전쟁 중에 도시를 점령했을 때, 로마 군인들은 휘장을 뜯어내어 성전에서 가져온 금제 그릇들을 싸는 데 사용했다.
욤 키푸르에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희생된 동물의 피를 뿌리고, 언약궤와 속죄소 위에 향을 피웠다. 제2성전에는 언약궤가 없었으며, 언약궤가 있었을 곳에 피를 뿌리고 향은 분향 제단에 놓았다.
마그달라 석은 서기 70년 성전 파괴 전에 조각된 지성소의 표현으로 여겨진다.[13]
9. 정교회
정교회에서는 성경과 전통에 따라, 성당 내부에 신품과 그 보조자(모두 남성만)만 들어갈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두었으며, 이곳을 지성소라고 부른다. 지성소는 이코노스타시스로 성소와 구분된다.
지성소 중심에는 성체 기밀(성체 예식)이 집행되는 보좌가 있다.[28] 보좌는 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정면 왼쪽 뒤에는 헌상대가 있다. 헌상대에는 성작과 같은 성기물이 안치되어 있으며, 성체 예식에 필요한 물품(빵과 포도주)을 준비하는 헌상 예식이 이곳에서 행해진다.
지성소에는 이 외에도 복음경이 보좌에 안치되어 있으며, 촛대, 디키리와 트리키리, 리피다와 같은 제구도 놓여 있다.
이콘이 있는 것은 다른 성당의 장소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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