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작통법
1. 개요
오가작통법은 1485년 한명회에 의해 《경국대전》에 등재된 조선의 통치 제도이다. 수도인 한성에서는 5개의 호를 1개의 통으로, 5개의 통을 1개의 리로, 3~4개의 리를 1개의 면으로 구성하고 각 통에 통주를 두었으며, 지방에서도 유사하게 운영되었다. 호구 파악, 범죄자 색출, 조세 징수, 부역 동원을 목적으로 시행되었으나, 숙종 때 오가작통법 21조를 제정하여 제도를 강화했다. 조선 후기에는 호패와 함께 호적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순조와 헌종 때에는 천주교도 색출에 악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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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법 -
홍범 14조
홍범 14조는 1894년 갑오개혁 시기에 고종이 발표한 개혁 강령으로, 청나라에 대한 의존을 청산하고 자주 독립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며 왕실 권한 축소와 국가 재정 확립 등의 내용을 담아 조선의 근대화 방향을 제시했다. -
조선의 법 -
과전법
과전법은 고려 말에 시행되어 조선 건국 이후에도 계승된 토지 제도로, 신진사대부가 몰수한 토지를 관료에게 수조권으로 재분배하여 경제적 자립을 보장하고 관료 국가 체제 확립에 기여했으나, 세습화 및 토지 부족으로 직전법으로 대체되었다. -
조선의 행정 구역 -
십삼도
십삼도는 1896년 조선이 23부제를 개편하며 전국을 13개 도로 재편하고 관찰사를 둔 행정구역 체계로, 일제강점기까지 행정구역 개편을 거치며 유지되다가 해방 이후 남북한의 상이한 행정구역 체계로 나뉘었다. -
조선의 행정 구역 -
이십삼부
이십삼부는 1895년 갑오개혁으로 조선 정부가 8도 체제를 대체하여 시행한 지방 행정 구역 개편으로, 중앙집권화 강화 및 행정 효율성 증대를 목표로 전국을 23개의 관찰부로 재편하고 행정 구역 명칭을 ‘군’으로 통일했으나, 행정 불균형, 통상 업무 혼란, 군 등급제로 인한 불평등 심화 등의 문제로 중앙집권화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
조선의 정치 -
대한제국 중추원
대한제국 중추원은 갑오개혁으로 설립되어 의회적 성격을 갖추었으나, 공화정 수립 루머로 황제의 견제를 받았으며, 독립협회 폐지 이후 자문기관으로 역할이 축소되다가 1907년 기능이 종식되었다. -
조선의 정치 -
아관파천
아관파천은 1895년 을미사변 이후 고종이 1896년부터 약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한 사건으로,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러시아의 이권 침탈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으며, 조선 정치의 급격한 변화와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가져왔다.
2. 내용
1485년 한명회가 《경국대전》에 등재하였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수도 한성에서는 5개의 호(戶)를 1개의 통(統)으로, 5개의 통을 1개의 리(里)로, 3~4개의 리를 1개의 면(面)으로 구성하고 통에는 통주(統主) 또는 통수(統首)를 두었다.
지방에서도 한성과 동일하게 5호 1통, 5통 1리, 3~4리 1면으로 구성하고 면에는 권농관(勸農官)을 두었으나, 초기에는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조선 중기부터 활성화되었다.
오가작통법은 호구 파악, 범죄자 색출, 조세 징수, 부역 동원 등을 목적으로 만들었으나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아 숙종 때인 1675년 ‘오가작통법 21조’를 작성하여 강화하였다.
2.1. 후기
조선 후기에 이르러 오가작통법은 호패와 함께 호적의 보조 수단이 되었으며, 역(役)을 피하여 호구 등재 없이 이사와 유랑을 반복하는 유민(流民)들과 도적들의 행태를 방지하는 데 주로 이용되었다. 순조와 헌종 때에는 오가작통제의 연대 책임을 강화하여 '한 집에서 천주교도가 적발되면 다섯 집을 모조리 처벌하는 방식'으로 천주교도를 색출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