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타 트리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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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이타 트리니타는 1999년 J리그에 가입한 일본의 축구 클럽으로, 주식회사 오이타 풋볼 클럽이 운영한다. 클럽명은 연고지인 오이타와 삼위일체를 뜻하는 영어 단어 'Trinity'를 조합하여 만들었으며, 팀 컬러는 녹색과 검정색이다. 1994년 창단 이후 J2리그 우승(2002년), J리그컵 우승(2008년), J3리그 우승(2016년) 등의 기록을 세웠다. 홈구장은 레조낙 돔 오이타이며, 유소년팀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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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타 트리니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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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클럽 이름 | 오이타 트리니타 |
원어 이름 | 大分トリニータ |
영어 이름 | Oita Trinita |
별칭 | 트리니타 (Torinīta) 아추로 (Azūro) 카메나치오 (Kamenachio) |
창단 | 1994년 (오이타 트리니티) |
홈 경기장 | 레조나크 돔 오이타 |
위치 | 오이타시, 오이타현 |
수용 인원 | 40,000명 |
회장 | 오자와 마사카제 |
감독 | 카타노사카 토모히로 |
리그 | J2리그 |
시즌 | 2024 |
순위 | J2 16위 |
현재 시즌 | J2리그 |
공식 웹사이트 | 오이타 트리니타 |
구단 정보 | |
법인명 | 주식회사 오이타 풋볼 클럽 |
영문 법인명 | Oita Football Club Co.,Ltd. |
창립일 | 1999년 1월 7일 |
사업 내용 | 축구 클럽 운영 등 |
대표이사 | 오자와 마사카제 |
자본금 | 4000만 엔 (2018년 1월 기준) |
매출액 | 10억 2300만 엔 (2018년 1월 기준) |
영업이익 | 9100만 엔 (2018년 1월 기준) |
경상이익 | 9400만 엔 (2018년 1월 기준) |
순이익 | 9400만 엔 (2018년 1월 기준) |
순자산 | 1억 7500만 엔 (2018년 1월 기준) |
총자산 | 3억 6700만 엔 (2018년 1월 기준) |
결산기 | 1월 |
주요 주주 | 티케이피 오이타 상공회의소 오이타현 외 |
주요 관계자 | 미조하타 히로시 (전 대표이사) 아오노 히로시 (전 대표이사) 에노키 토오루 (전 대표이사) 코노 타카키 (이사) |
주소 | 오이타현 오이타시 오아자 요코오 1629 |
우편번호 | 870-0126 |
홈 유니폼 | |
상의 패턴 | _oita trinita 2024 HOME FP |
하의 패턴 | _oita trinita 2023 HOME FP |
양말 패턴 | _oita trinita 2023 HOME FP |
원정 유니폼 | |
상의 패턴 | _oita trinita 2024 AWAY FP |
하의 패턴 | _oita trinita 2023 AWAY FP |
양말 패턴 | _oita trinita 2022 AWAY FP |
색상 | |
메인 색상 | 파랑 노랑 |
2. 클럽 정보
주식회사 오이타 풋볼 클럽(大分フットボールクラブ)이 운영 법인이며[9], 1999년에 J리그에 가입했다.[9]
2006년, 클럽 약칭이 "오이타FC(大分FC)"에서 "FC오이타(FC大分)"로 변경되었으나, 운영 법인명과는 무관하다.
2019년 6월 21일, TKP가 운영 회사 주식의 20%를 취득하여 최대 주주가 되면서 자본 및 업무 제휴를 맺었다.[14]
2. 1. 클럽 명칭
클럽 이름 '트리니타(Trinita)'는 삼위일체(trinità)의 이탈리아어 번역과 연고지 오이타를 결합한 것이다.[2] 이는 지역 주민, 기업, 정부가 팀을 지원하려는 의지를 나타낸다.[9] 클럽 이름은 영어 "Trinity"(삼위일체)와 "오이타(Oita)"를 조합한 조어로, 이탈리아어 "Trinita"와 같은 철자를 사용한다.[13] 이는 현민, 기업, 행정이 일치단결하는 것을 의미한다.2. 2. 엠블럼 및 마스코트
2006년, 엠블럼, 로고 마크, 팀 플래그가 "T플레어(Tフレアー)"라는 디자인 컨셉트에 따라 새롭게 바뀌었다.[9] 클럽 마스코트는 거북이를 모티브로 한 '''니탄(ニータン)'''[9]과, 토끼를 모티브로 한 준 마스코트 "리지(リッジー)"가 있다.특정 경기에서 서포터들은 색깔이 있는 보드를 들어 콜레오그라피를 만들기도 한다.[137][138] 2008년 J리그컵 결승전에서도 보드를 들었다(사진 참조).
2. 3. 팀 컬러
팀 색상은 청색과 황색이다.[9]3. 역사
오이타 트리니타는 1994년 창단되어 오이타 현 리그와 규슈 리그를 거쳐 1996년 전국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일본풋볼리그(JFL)로 승격했다. 1999년 저작권 문제로 팀명을 '트리니타'로 변경하고 J2에 참가하여 2년 연속 3위를 기록했다. 2002년 J2 우승으로 J1으로 승격했다.
2008년 나비스코컵에서 우승하고 리그 4위를 기록했으나, 2009년 경영난으로 J리그 사무국에 자금 융자를 신청했고, 최종 순위 17위로 강등되었다. 경비 절감을 위해 주축 선수들을 모두 다른 팀으로 보내고 황보관 전 감독이 복귀했다.
2012년 J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융자받은 3억 엔을 모두 갚고 승격 플레이오프에 참가, 교토 상가 FC와 제프 유나이티드를 꺾고 4년 만에 J1으로 재승격했다. 그러나 2013년 J1에서 2승만을 거두며 최하위로 1년 만에 J2로 강등되었다.
2015년에는 J2 21위로 FC 마치다 젤비아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패배, J3로 강등되었다. 이는 J리그 역사상 최초로 1부 리그를 경험한 팀이 3부 리그로 강등된 사례였다. 하지만 2016년 J3리그에서 우승하며 바로 J2리그로 승격했다. 2018년 J2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J1리그로 승격했고, 2021년 18위로 J2리그로 강등되었다.
2021년 천황배 결승전에 진출, 가와사키 프론탈레를 준결승에서 승부차기로 꺾는 이변을 연출했지만, 결승에서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에 패했다. 2023 시즌에도 J2리그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다.
2003년 J리그컵 교토전에서 로드리고의 비신사적인 득점 사건이 있었다.[139] 경기 재개 후 오이타 감독 고바야시 신지는 선수들에게 수비를 포기하도록 지시했고, 교토의 나카바라이 다이스케가 추가 득점하며 경기는 2-2 동점이 되었다.[11]
2007년, J1리그 18라운드 종료 시점에서 17위였던 오이타는 리그 후반 16경기를 "리벤지 16"으로 명명했다.[140] "리벤지 삼전사"로 스즈키 신고·호베르투·에지미우손을 영입하고, 심볼 캐릭터 "'''리지'''"를 등장시키는 등 다양한 기획을 통해[11] 시즌 14위로 J1리그 잔류를 달성했다.
2014년 창단 20주년을 맞이한 오이타는 특설 사이트를 개설하고,[145] 역대 베스트 일레븐 발표 등의 기획을 실시했다.[146]
3. 1. 창단 초기 (1994년 ~ 1998년)
1994년 4월, 오이타 트리니티는 사단법인 "오이타 풋볼 클럽"으로 발족했다.[9] 경기 등록상 팀명은 "오이타" 또는 "오이타 FC"였으며, "오이타 트리니티"라는 애칭이 사용되었다.[9] 오이타 현 사회인 축구 리그와 규슈 리그를 연이어 제패하고, 1996년 전국 지역 축구 챔피언스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하며 발족 2년 만에 일본풋볼리그(JFL)로 승격했다.[9]초기에는 문정식, 박경화 등 한국인 감독의 지휘 아래, 황보관, 최대식 등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이 운영되었다.
1998년에는 브라질 출신 감독 쉬쿠 포르미가를 영입하고, 외국인 선수로 윌을 영입했다. 1998년 JFL 마지막 시즌에는 6위를 기록했다.
3. 2. J2리그 시대 (1999년 ~ 2002년)
1999년 저작권 문제로 팀명을 현재의 오이타 트리니타로 변경하고 J2에 참가했다.[9] 첫해부터 J1 승격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1999년과 2000년 모두 2년 연속 2위와 승점 1점 차로 3위에 그쳐 승격에 실패했다.[9] 2001년에는 시즌 초반 부진으로 5월에 이시자키 노부히로 감독이 해임되고 코바야시 신지 감독이 부임했으나,[9] 최종전까지 승격 경쟁을 벌였음에도 6위에 머물렀다.2002년에는 코바야시 감독 체제 하에 니시야마 테츠헤이, 우키 테츠로, 산드로, 안드라지냐 등을 영입,[9] 견고한 수비와 빠른 역습을 바탕으로 초반부터 선두를 질주하여 J2 우승과 함께 J1 승격을 달성했다. 또한 최종전에서 J2 통산 100승을 달성하는 기록도 세웠다.
3. 3. J1리그 시대 (2003년 ~ 2009년)
오이타 트리니타는 1999년 J2리그에 참가하여 2년 연속 3위를 기록한 뒤, 2002년 J2리그에서 우승하며 J1리그로 승격했다.; 2003년
팀 슬로건은 '''움직임과 균형'''이었다.
고바야시 신지 감독 체제 3년 차이자 J1 승격 첫해였다. 알비렉스 니가타에서 테라카와 요시토를, 전년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 로드리고 등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다. 수비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지만, 로드리고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보이다 시즌 중반에 팀을 떠났다. 전년도 팀 득점왕 안드라지냐 역시 득점을 올리지 못하고 시즌 중반에 홋카이도 콘사도레 삿포로로 이적했다. 공격수 부재로 인한 심각한 득점력 부족으로 팀은 부진에 빠졌다. 시즌 중반에 윌 등 많은 외국인 공격수를 영입했지만, 득점력 부족은 개선되지 않았다. 2nd 스테이지에서는 15경기에서 실점은 리그 최소인 16개였지만, 득점은 7개에 불과했다.
최종전에서 15위 베갈타 센다이와 맞붙었는데, 오이타가 승리하거나 무승부를 기록하면 잔류, 패배하면 센다이가 잔류하는 상황이었다. 경기에서 전반 15분 우메다 타카시의 골로 선제골을 넣었지만, 후반에 센다이에게 동점을 허용했다. 결국 1-1 무승부로 경기가 종료되었고, 연간 순위 14위(1st 스테이지 14위, 2nd 스테이지 16위)로 J1에 잔류했다. 시즌 종료 후 고바야시 감독은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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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팀 슬로건은 '''Perform & Enjoy'''였다.[15]
한 베르거 감독을 새롭게 맞이했다.[9] 테라카와 요시토가 알비렉스 니가타로 복귀했지만, 전 브라질 대표 마그노 아우베스, 전 네덜란드 대표 리차드 비투헤, 베갈타 센다이에서 네모토 유이치 등을 영입했다. 마그노 등 영입 선수들의 활약으로 1st 스테이지는 10위로 마쳤다.
하지만 2nd 스테이지 개막 전 비투헤가 팀을 떠나고, 1st 스테이지에서 활약한 키지마 료스케가 부상으로 이탈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긴급 영입으로 패트릭을 영입했지만, 2nd 스테이지는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마그노가 11득점, 타카마쓰 다이키가 8득점을 기록했지만, 전반적인 득점력은 저조했고, 연간 순위는 13위에 그쳤다. 베르거 감독은 시즌 종료 후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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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팀 슬로건은 '''Together & Enjoy'''였다.
황보관이 헤드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했다.[9] 주장 산드로 차베스 데 아시스 로사가 팀을 떠났고, 세토 하루키, 야마자키 테츠야 등이 이적했다. 전 브라질 대표 도도, 우에모토 히로미 등을 영입하고, 신인 후카야 유키 등이 입단했다. 오이타 U-18에서 니시카와 슈사쿠, 우메자키 쓰카사가 승격했다.
하지만 도도는 15경기에서 3득점에 그치며 부진했고, 결국 시즌 중반에 에지미우손 아우베스, 투리오와 교체되어 팀을 떠났다. 오이타는 시즌 초반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요시다 타카유키의 부상 복귀 이후 한때 8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비셀 고베와의 최하위 경쟁에서 밀리는 등 부진이 계속되자, 8월 28일 황보 감독을 경질하고 페리클레스 샤무스카 감독을 선임했다.[9]
샤무스카 감독은 첫 경기인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이후 6경기 무패(5승 1무)를 기록하며 빠르게 팀을 재정비했다. “남은 12경기에서 승점 18점”이라는 목표를 8경기(6승 1패 1무, 승점 19점) 만에 달성하며, 목표를 7위로 수정할 정도로 급격한 회복세를 보였다. 이 사건은 “샴스카 매직”으로 불렸다.[16] 11월 23일 세레소 오사카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J1 잔류를 확정 지었다. 최종 순위는 지난 3년간 최고 성적인 11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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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팀 슬로건은 '''도전과 도전'''이었다.[17]
샴스카 체제 2년 차였다. 오카나카 유토가 은퇴하고, 팀 득점왕 마그노 아우베스, 주장 요시다 타카유키 등 절반 가까운 선수가 이적하거나 전력 외로 분류되었다. 포르탈레자 EC에서 오즈마르, 가시와 레이솔에서 전 일본 대표 마스다 타다토시 등을 영입했다. 신인 다카하시 다이스케, 모리시게 마사토가 입단했고, 오이타 U-18에서 후쿠모토 요헤이, 카지와라 코가 승격했다.
초반에는 3연패를 당하는 등 부진했지만, 이후 컨디션을 회복하며 11차전 가시마 앤틀러스전부터 14차전 알비렉스 니가타전까지 4연승을 기록했다. 16차전 가와사키 프론탈레전부터 22차전 아비스파 후쿠오카전까지 7경기 무패를 기록했고, 21차전에는 리그 챔피언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에게서 승점을 따내는 등 6위까지 올라섰다. 시즌 전 목표를 “8위 이내”에서 “4위 이내”로 수정했고, 10월에 J1 잔류를 확정 지었다. 하지만 이후 3승 2무 7패로 부진하며 상금권인 7위 이내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당시 J1 최고 순위인 8위로 시즌을 마쳤다.
니시카와 슈사쿠, 우메자키 쓰카사, 타카마쓰 다이키가 일본 대표팀에 발탁되었고, 우메자키와 타카마쓰는 국제 A매치에도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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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팀 슬로건은 '''「도전과 투쟁」 도전과 투쟁'''이었다.[18]
샴스카 체제 3년 차였다. 에지미우손 아우베스, 투리오 루스토자 세이샤스 피네이로스가 팀을 떠났고, 우메자키 쓰카사가 그르노블로 임대 이적하는 등 7명의 선수가 팀을 떠났다. 주니오르 마라니옹, 미야자와 마사후미, 아우구스토, 키나자키 유메 등 8명의 선수가 새롭게 합류했다.
하지만 신인 마라니옹과 미야자와가 모두 선발 출전한 개막 2경기가 모두 패배로 끝나자, 미야자와는 3차전에서 선발에서 제외되었고, 마라니옹은 시즌 중반에 팀을 떠났다. 이후 후지타 요시아키 등 다양한 선수를 보란치로 기용했지만, 대량 실점으로 패하는 경기가 많았고, 13차전에는 최하위 요코하마 FC에게도 1-2로 패했다. 시즌 중반에 마에다 준스케(산프레체 히로시마에서 임대 이적), 우메자키(그르노블에서 복귀)가 합류했지만, 승점을 늘리지 못하고 전반기(18차전) 종료 시점에서 자동 강등권인 17위로 부진했다.
J1 잔류를 위해 후반기를 리벤지 16(リベンジ16)으로 명명하고, 알비렉스 니가타에서 스즈키 신고, 전 아비스파 후쿠오카 호베르토를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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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2008년, 오이타는 J리그컵에서 우승하며 야와타제철 SC가 1964년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공동 우승을 차지한 이후 규슈 지역 구단으로서는 처음으로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했다.[3] 리그에서도 4위를 기록하며 선전했다.
; 2009년
2009 시즌은 오이타의 J1리그 7년 역사상 최악의 시즌이었다. 리그 경기에서 14연패를 기록하는 등 골든골 제도가 폐지된 이후 J리그 최악의 기록을 경신했다. 7월 중순에는 J리그컵 우승 감독 페리클레스 샤무스카를 경질했다.[4] 10월 25일, 교토 상가 FC와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강등이 확정되었다. JFL 긴급 자금 대출금이 남아 있었고, 리그 규정상 이러한 대출금이 있는 구단은 1부 리그에 참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차피 강등될 상황이었다.[5] 경영난으로 인해 J리그 사무국에 자금 융자를 신청했고, 주축 선수들을 모두 다른 팀으로 보내는 등 경비 절감에 나섰다. 부사장이었던 황보관 전 감독이 복귀하였다. 최종 순위는 17위였다.
3. 4. J2리그와 J3리그 강등 (2010년 ~ 2016년)
2009년 경영난으로 J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자금 융자를 받아 주축 선수들을 대거 방출하고 황보관 전 부사장이 감독으로 복귀하였다.[9] 2010년, 팀은 김보경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J2 15위에 그쳤고, 황보관 감독이 사임했다.[22] 김보경은 2010년 FIFA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에 선발되어 오이타 소속 선수로는 최초로 월드컵에 출전했다.2011년 타사카 카즈아키 감독이 부임하였고,[9] 김보경은 세레소 오사카로 복귀했다. 팀은 최정한 등 젊은 선수들을 기용하며 12위를 기록했다.[23] 2012년, 타사카 감독 체제에서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J1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 교토 상가 FC와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를 꺾고 4년 만에 J1으로 승격했다.[11]
연도 | 대회 | 순위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비고 |
---|---|---|---|---|---|---|---|---|---|---|
2010 | J2리그 | 15위 | 36 | 10 | 11 | 15 | 41 | 49 | 41 | |
2011 | J2리그 | 12위 | 38 | 12 | 15 | 11 | 42 | 45 | 51 | |
2012 | J2리그 | 6위 | 42 | 21 | 8 | 13 | 59 | 40 | 71 | J1 승격 |
2013 | J1리그 | 18위 | 34 | 2 | 8 | 24 | 31 | 81 | 14 | J2 강등 |
2014 | J2리그 | 7위 | 42 | 17 | 12 | 13 | 52 | 55 | 63 | |
2015 | J2리그 | 21위 | 42 | 8 | 14 | 20 | 41 | 51 | 38 | J3 강등 |
2016 | J3리그 | 1위 | 30 | 19 | 4 | 7 | 50 | 24 | 61 | J2 승격 |
2013년 J1에서는 2승만을 거두며 최하위로 1년 만에 J2로 강등되었다.[6] 2015년에는 J2 21위로 FC 마치다 젤비아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하여 J3로 강등되었다.[7] 이는 J리그 역사상 최초로 1부 리그를 경험한 팀이 3부 리그로 강등된 사례였다. 하지만 2016년 J3리그에서 우승하며 바로 J2리그로 승격했다.
3. 5. J1리그 재승격 및 강등 (2017년 ~ 2021년)
오이타 트리니타는 2016년 J3리그에서 우승하며 J2리그로 승격했다. 2018년 J2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J1리그로 재승격했으나, 2021년 J1리그에서 18위를 기록하며 다시 J2리그로 강등되었다. 같은 해 천황배 결승전에 진출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썼다. 강등 확정 일주일 만에 천황배 우승팀 가와사키 프론탈레를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4-5로 꺾는 이변을 연출했으나, 결승에서는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에 패하며 우라와에게 8번째 천황배 우승을 안겼다.3. 6. 최근 (2022년~)
2021년 천황배에서 신데렐라 스토리를 쓰며 결승전에 진출, 비록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에 패했지만 강등의 아픔을 뒤로하고 준결승에서 가와사키 프론탈레를 승부차기 끝에 꺾는 저력을 보여주었다.[7] 2023 시즌에는 J2리그에서 2시즌 연속으로 경기를 치르고 있다.4. 홈구장 및 훈련 시설
오이타 스포츠 공원 종합 경기장(명명권 명칭: 클라사스 돔 오이타, 오이타시 요코오에 위치)이 홈구장이다.[9] 팀 창설 초기에는 오이타 시영 육상 경기장을 사용하다가 2001년부터는 클라사스 돔 오이타를 병행하여 사용했다.
주 훈련장은 오이타 스포츠 클럽과 레조낙 축구・럭비장이다.[9] 오이타 스포츠 공원 보조경기장에서도 훈련을 하는 경우가 있으며, 2002년경까지는 리버파크 이누카이 등 여러 지역의 그라운드를 전전하며 훈련했다.
4. 1. 홈구장
이 클럽의 홈구장은 레조낙 돔 오이타(Resonac Dome Oita)이며, "빅 아이"로도 알려져 있다. 2002년 FIFA 월드컵을 위해 건설된 경기장 중 하나이다.[9] 원래 수용 인원은 4만 3천 명이었으나, 2002년 FIFA 월드컵 이후 트랙에 있던 3천 개의 이동식 좌석이 제거되어 현재 수용 인원은 4만 명이다.오이타 스포츠 공원 종합 경기장(명명권 명칭: 레조낙 돔 오이타, 오이타시 요코오에 위치)이 홈구장이다.[9] 팀 창설부터 2002년까지는 오이타 시영 육상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으며, 2001년 레조낙 돔 오이타 완공 후에도 병용하여 홈 게임을 개최했다. 트리니타가 J1에 승격한 2003년 이후로는 J1 개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홈구장 등록에서 제외되었고, 이후 트리니타 주최의 공식전은 개최되지 않았다.[132] 그러나 2019년 레조낙 돔 오이타가 럭비 월드컵 경기장 중 하나로 사용됨에 따라 홈 게임 대체 경기장이 필요하게 되어 특례로 사용이 허가되었고, 2002년 이후 17년 만에 트리니타 주최 리그전 2경기를 개최했다.[133]
2007년까지는 쿠마모토현민 종합 운동공원 육상 경기장 (명명권 명칭: 에가오 건강 스타디움)에서 연 1~2회 홈 게임을 개최했다. 2007년 10월 20일에는 KK WING에서 13시부터 로소 쿠마모토(현: 로아쏘 구마모토) 경기, 19시 30분부터 트리니타 경기가 동일 날짜에 개최되었다. 2004년에는 낙뢰로 인해 경기가 중단되었는데, 이때 쿠마모토현민 종합 운동공원 실내 운동 광장 (파크 돔 쿠마모토) 남쪽 주차장이 침수되어 주차되어 있던 약 150대의 차량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주차장은 원래 홍수를 막기 위해 빗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저수지였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나중에 트리니타의 보상 문제로 발전했다.
그 외에도 가고시마현립 가모이케 육상 경기장 (명명권 명칭: 시라나미 스타디움), 나가사키현립 종합 운동공원 육상 경기장 (명명권 명칭: 트랜스코스모스 스타디움 나가사키), 쿠마모토시 수젠지 경기장 등에서 과거에 주최 경기를 개최했지만, 2010년을 마지막으로 현외에서는 주최 경기가 개최되지 않고 있다.
클럽은 인접한 축구장과 럭비 경기장, 그리고 오이타 시 공공 구장에서 훈련한다.
4. 2. 훈련장
주 훈련장은 오이타 스포츠 클럽과 레조낙 축구・럭비장이다.[9] 오이타 스포츠 공원 보조경기장에서도 훈련을 하는 경우가 있다. 2002년경까지는 리버파크 이누카이 등 여러 지역의 그라운드를 전전하며 훈련했다.5. 유니폼
페인트하우스(ペイントハウス)
사토베넥(さとうベネック)
트라이벌킥스(Tribalkicks)
마루한(MARUHAN)
포리프(FOURLEAF)
코유(KOYOU)
넷원(net one)
5. 1. 유니폼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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