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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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익제는 평안남도 성천군 출신의 천도교 인사이자, 대한민국 천도교 23, 24대 교령을 역임했다. 1997년 북한으로 망명하여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2012년 사망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새정치국민회의 고문, 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상임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그의 월북은 천도교 교세 약화와 1997년 대선 당시 안기부의 북풍 공작 논란에 영향을 미쳤다.

오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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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929년 평안남도 성천군(현 회창군 대곡리)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고향에서 천도교 종리원 교화부장을 지냈다. 고려대 경영대학원, 평양 국제관계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국방부 문관과 통일광복민족회의 의장 등을 지내다 천도교 선도사, 종무원장, 종학원장 등을 거쳤다.

2.1. 대한민국에서의 활동

1989년부터 1994년까지 대한민국 천도교의 23, 24대 교령을 맡았다. 1994년 6월 15일, 동학농민운동 백주년 기념관과 수운회관 지하주차장 건설공사 문제로 인한 내부 갈등으로 신병을 이유로 교령직 사임서를 제출했다. 후임 교령으로는 김재중이 선출되었다.

1995년에는 김대중이 이끌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97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의 고문을 맡았다. 또한 새정치국민회의 종교특위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1997년 7월에는 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상임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997년 8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1978년 천도교 춘천교구장의 분신자살 사건과 1994년 갑오농민전쟁 100주년 남북 천도교 공동행사가 무산된 사건 등을 언급하며, 김영삼 정권 하에서는 통일 운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북한으로 가서 통일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신동아는 2008년 10월호에서 오익제의 납치설을 제기했으나, 오익제는 <통일뉴스> 인터뷰를 통해 이를 날조된 음모라고 반박했다.

1997년 12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오익제가 김대중 후보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하며 이른바 '북풍공작'을 시도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안기부는 오익제 월북 사건을 계기로 김대중 후보 낙선을 위한 태스크 포스를 구성하고 '북풍 조작'을 총지휘했다는 사실이 흑금성 박채서의 폭로로 드러났다. 박채서는 김정일과 면담하며 북한 수뇌부가 한국 대선에 개입하려 한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안기부의 '김대중 죽이기 공작'을 정동영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에게 제보했다. 이러한 정보는 1997년 대선 때 북풍을 막는 데 기여했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측이 북한에 무력시위를 제안한 '총풍 사건'도 드러나게 했다.

천도교는 1920년대 최대 종교였으나, 최덕신과 오익제의 월북 등으로 교세가 크게 약화되었다. 1968년 100만 명이었던 교인 수는 2009년 10만 명 이하로 감소했다.

2.2. 1997년 월북과 논란

오익제는 1997년 8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8월 초 재미 전금여행사 대표 김충자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출국한 후 베이징 북한대사관을 찾아가 영주 의사를 밝히고 북한에 들어갔다. 당시 남한에는 아내 허명숙이 있었고, 미국에는 딸이 거주하고 있었다. 한편, 북한에는 노모와 본처 박선옥, 딸 오천녀가 살고 있었다.

오익제는 1978년 8월 4일 천도교 춘천교구장 이도천이 평양을 향해 통일행진을 하다 가로막히자 통일을 외치며 분신자살한 사건과, 1994년 갑오농민전쟁 100주년 남북 천도교 공동행사가 남측 정부에 의해 무산된 사건 등을 언급했다. 그는 김영삼 정권하에서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어떠한 통일행사도 남한에서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남한을 탈출해 북한에서 통일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2008년 인터뷰에서 방북 배경을 설명했다.

신동아는 2008년 10월호에서 오익제 납치설을 제기했다. 탈북자 장철현은 자신이 전 조선노동당 통일전선사업부 요원이었다고 주장하며, 자진 월북한 것으로 알려진 오익제가 사실은 통전부에 납치당했다는 기사를 기고했다. 오익제는 이러한 납치설에 대해 통일 전문 인터넷미디어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날조이고 완전히 조작된 음해, 중상모략"이라고 반박했다.

1997년 12월 6일,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2주 앞두고 국가안전기획부는 오익제가 김대중 후보에게 보냈다는 편지의 겉봉과 내용 사본을 공개했다. 이는 이른바 '총풍 사건'과 함께 안기부가 북풍을 조작했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안기부는 오익제 월북 사건을 계기로 김대중 후보 낙선을 위한 태스크 포스를 꾸리고 일련의 ‘북풍 조작'을 총지휘했다. 안기부의 1997년 대선 개입 사실은 공작원 흑금성 박채서의 폭로로 드러났다. 박채서는 김정일과 면담했으며, 북한 수뇌부가 1997년 한국 대선에 개입하려 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북한은 예상과 달리 김대중 후보를 가장 껄끄러워했다. 박채서는 8월 15일 입북한 오익제의 행적을 몇 개월 전에 국가안전기획부가 알고 있었다며, 안기부의 'DJ 죽이기 공작'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과 만나 제보했다. 흑금성이 수집한 안기부의 대선 공작 관련 정보는 1997년 대선 때 북풍을 막는 데 기여했다.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이 북한에 무력시위를 제안한 총풍(銃風) 사건도 드러났다.

1968년 100만 명의 교인을 자랑했던 천도교는 2009년에는 교세가 10만 명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천도교의 이러한 약세에는 전 교령 최덕신과 오익제의 월북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활동

오익제는 1997년 8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재미 전금여행사 대표 김충자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출국한 후 베이징 북한대사관을 찾아가 영주 의사를 밝히고 북한에 들어갔다. 당시 남한에는 아내 허명숙이 있었고, 미국에는 딸이 거주하고 있었다. 북한에는 노모와 본처 박선옥, 딸 오천녀가 살고 있었다.

오익제는 2008년 인터뷰에서 1978년 8월 4일 이도천 천도교 춘천교구장이 평양을 향해 통일행진을 하다 가로막히자 통일을 외치며 분신자살한 사건, 1994년 갑오농민전쟁 100돌 남북 천도교 공동행사가 남측 정부에 의해 무산된 사건 등을 언급하며 평양행 결심 배경을 밝혔다. 그는 “김영삼 정권하에서는 안 되겠다, 도저히 합법적인 방법으로 그 어떤 통일행사도 남조선에서는 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남조선을 탈출해서 북조선에 가서 통일운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신동아는 2008년 10월호에서 북한의 오익제 납치설을 제기했다. 전 조선노동당 통일전선사업부 요원이라고 주장하는 탈북자 장철현은 자진 월북한 것으로 알려진 오익제가 통전부에 납치당했다는 기사를 썼다. 오익제는 통일 전문 인터넷미디어 <통일뉴스> 인터뷰에서 “이것은 날조이고 완전히 조작된 음해, 중상모략”이라며 신동아의 납치설을 부인했다.

15대 대통령 선거를 2주 앞둔 1997년 12월 6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오익제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에게 보냈다는 편지 겉봉과 편지 내용 사본을 공개했다. 이는 총풍 사건과 함께 안기부에 의한 북풍공작이었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안기부는 오익제 월북 사건을 계기로 김대중 후보 낙선을 목적으로 하는 태스크 포스를 꾸리고 일련의 ‘북풍 조작'을 총지휘했다.

안기부가 1997년 대선에 개입한 사실은 공작원 박채서의 폭로로 드러났다. 박채서는 김정일과 면담했으며, 북한 수뇌부가 1997년 한국 대선에 개입하려 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북한은 예상과 달리 김대중 후보를 가장 껄끄러워했다. 박채서는 8월 15일 입북한 오익제의 행적을 몇 개월 전에 국가안전기획부가 알고 있었다며, 안기부의 'DJ 죽이기 공작'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과 만나 제보했다. 흑금성이 수집한 안기부의 대선 공작 관련 정보는 1997년 대선 때 북풍을 막는 데 기여했다.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쪽이 북한에 무력시위를 제안한 총풍 사건도 드러났다.

오익제는 입북 후 1997년 국가 제1급 훈장, 1999년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1999년 4월 당시 주석단 서열 36위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고문 등을 역임했으며, 최고인민회의 11기, 12기 대의원도 지냈다. 입북 10년을 맞아 자서전 ‘위인과 나의 운명’을 펴냈다.

2012년 병환으로 사망했다. 1999년 10월 5일부터 45일간 외국에서 신병치료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3. 평가 및 영향

오익제는 대한민국 천도교 교령과 새정치국민회의 고문 등을 역임하다가 1997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망명하여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의 망명은 개인적인 신념과 정치적 상황, 그리고 남북 관계의 복잡성이 얽힌 사건이었다.

오익제는 1978년 천도교 춘천교구장의 분신자살 사건과 1994년 남북 천도교 공동행사 무산 등을 겪으며 김영삼 정부 하에서는 합법적인 통일 운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북한행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2008년 신동아는 탈북자 장철현의 주장을 빌려 오익제가 북한에 납치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오익제는 통일뉴스 인터뷰에서 "날조이고 완전히 조작된 음해, 중상모략"이라고 반박했다.

오익제의 망명은 199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대선을 앞두고 오익제가 김대중 후보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하며 이른바 '북풍' 공작을 시도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안기부는 오익제 월북 사건을 계기로 김대중 후보 낙선을 위한 공작을 벌였으며, 이는 박채서의 폭로로 드러났다. 박채서는 북한 수뇌부가 김대중 후보를 가장 껄끄러워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안기부의 공작 정보를 새정치국민회의에 제보하여 북풍을 막는 데 기여했다.

한편, 오익제의 월북은 천도교 교세 약화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1968년 100만 명에 달했던 천도교인은 2009년 10만 명 이하로 감소했는데, 전 교령 최덕신과 오익제의 월북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오익제는 북한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고문 등을 역임하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1997년 국가 제1급 훈장, 1999년 조국통일상을 받았으며, 자서전 '위인과 나의 운명'을 펴내기도 했다. 2012년 병환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