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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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와신상담은 춘추 시대 오나라와 월나라의 대립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로, 복수를 위해 고난을 감내하며 노력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오나라 왕 부차는 월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장작 위에서 잠을 자고,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에 패배한 후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했다. 이후 구천은 와신상담의 노력 끝에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복수에 성공했다. 이 이야기는 '와신(臥薪)'과 '상담(嘗膽)'의 결합으로, 소식의 시와 주자어류 등에서 나타나며, 한국에서는 삼국 간섭과 일본의 러시아에 대한 반발심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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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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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원어 | 臥薪嘗膽 |
로마자 표기 | Wasinsangdam |
뜻 | 섶에 눕고 쓸개를 맛본다 |
유래 | 춘추 시대 월나라 구천 |
등장 인물 | |
관련 인물 | 구천 부차 오자서 범려 문종 |
역사적 배경 | |
시대적 배경 | 춘추 시대 말기 |
주요 사건 | 오나라와 월나라의 전쟁 회계산 전투 부차의 몰락과 월나라의 부흥 |
와신상담의 의미와 교훈 | |
의미 | 복수를 위한 고난과 인내 목적 달성을 위한 철저한 준비 |
교훈 | 실패를 극복하는 의지 장기적인 안목 겸손과 자만 경계 |
와신상담의 사용 | |
사용 | 어려움을 극복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의지를 나타낼 때 실패를 교훈 삼아 재기를 다짐할 때 복수를 다짐하거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인내할 때 |
비유 |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 실패 후 재기를 준비하는 상황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인내하는 상황 |
관련 작품 | |
드라마 | 와신상담 복수의 봄 |
기타 | |
사자성어 | 와신상담 |
영어 표현 | Gritting one's teeth to bear hardships for the sake of revenge. Sleeping on brushwood and tasting gall. |
2. 고사의 유래
춘추시대 장강 하류에는 서로 적대적인 오나라와 월나라가 있었다. 초나라의 사주를 받은 월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하면서 전쟁이 벌어졌다. 이 전쟁으로 오왕 합려가 죽고, 그의 아들 부차는 복수를 다짐하며 장작 위에서 잠을 잤다[臥薪].
부차는 오자서 등의 도움으로 수년간 부국강병을 이루었고, 결국 월나라를 공격하여 구천을 사로잡았다. 구천은 합려의 묘지기 일을 하는 등 치욕을 겪었지만, 부차의 신임을 얻어 간신히 살아남았다.
월나라로 돌아간 구천은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했다[嘗膽]. 그는 서시를 보내고 조공을 바치는 등 부차에게 충성하는 척하며 20년을 기다렸다. 마침내 부차가 제나라와 진(晋)을 굴복시키고 천자의 자리에 오르려는 틈을 타 오나라를 기습하여 승리하고, 부차를 죽였다.[1]
2. 1. '와신상담' 성어의 성립
춘추시대 오나라의 왕 부차는 아버지 합려의 복수를 위해 장작 위에서 잠을 자며 복수를 다짐했고[臥薪], 월나라의 왕 구천은 곰의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했다[嘗膽].[1] 이 고사에서 유래한 '와신상담'은 '장작에 누워 복수를 다짐하고 곰의 쓸개를 핥으며 노력해서 고난을 이겨낸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1]“상담(嘗膽)”은 “굴욕을 잊지 않으려 한다”는 의미로 기원전 1세기의 책 『사기(史記)』에 등장하며, 이후 많은 책에서 사용되었지만, 한동안은 “와신(臥薪)”과 결합된 형태는 아니었다.[1] “와신(臥薪)”은 『진서(晋書)』, 『양서(梁書)』 등에서 현재와 같은 의미로 단독으로 사용되었고, 특히 오월(吳越) 전쟁에서 유래한 성어라는 수식어도 없었다.[1] 한편, “와신포화(臥薪抱火)”(굳이 위험한 곳에 들어가는 것을 비유하는 말)와 같이 의미가 완전히 다른 성어로 사용된 예도 『삼국지』나 『양서(梁書)』와 같은 고서에 남아 있다.[1]
“와신상담(臥薪嘗胆)”이 결합된 형태로는, 현재 남아 있는 책에서는 12~13세기(송대) 소식(蘇軾) (1037년 - 1101년)의 시 「의손권답조조서(擬孫權答曹操書)」 중의 구절 “僕受遺以来 臥薪嘗胆(복수유이래 와신상담)” 이후, 『주자어류(朱子語類)』(1270년 성립)이나 『자치통감(資治通鑑)』의 호삼성(胡三省)(1230년 - 1287년)의 주석 등에서 볼 수 있게 된다.[1] 특히 『통감(通鑑)』 호주(胡注)에서는 와신상담(臥薪嘗胆)이라는 말 앞에 “越王勾踐(월왕 구천)의”가 수식하고 있어 오월(吳越) 전쟁과 관련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1] 그 후 14세기(원대)의 책이 되면 『요사(遼史)』, 『송사(宋史)』, 『금사(金史)』 등에 많이 사용되고, 『십팔사략(十八史略)』 등의 통속서에도 사용되게 되었다.[1]
3. 한국에서의 와신상담
한국에서는 '와신상담'이라는 고사성어가 직접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사례는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3. 1. 삼국간섭과 와신상담
청일전쟁의 강화 조약인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청나라로부터 일본에 요동반도 할양이 일시적으로 결정되었으나, 러시아, 독일, 프랑스 삼국은 일본이 청나라에 요동반도를 반환하도록 요구하였다. 이를 삼국간섭이라고 한다. 일본 정부는 이 삼국간섭에 따랐고, 일본은 청나라에 요동반도를 반환하였다. 많은 일본 국민들은 삼국간섭에 반발하였고, 국민들 사이에 "와신상담"이라는 말이 유행하여, 특히 러시아에 대한 반발심이 강해졌다.[1]4. 와신상담을 소재로 한 작품
중화인민공화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복수의 춘추 -와신상담-은 2007년에 방영되었으며, 부차와 구천 간의 22년간의 전쟁을 다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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