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바야시 다케오
1. 개요
와카바야시 다케오는 1907년 효고현 출신의 일본 축구 선수이다. 고베 잇추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1927년 천황배에서 우승했다. 1930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데뷔하여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그는 1930년 일본 대표팀에서 2경기에 출전하여 4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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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교토쿠 고지
교토쿠 고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2008년 부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남아시아 축구 연맹컵 준결승 진출, 2003년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으로 J리그컵 준결승과 천황배 준결승 진출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
1907년 출생 -
발두어 폰 시라흐
발두어 폰 시라흐는 나치 독일 시대 히틀러 유겐트의 국가 지도자였던 독일 정치인으로, 나치즘에 심취하여 히틀러 유겐트를 합법적인 청소년 단체로 성장시키고 빈의 가우라이터 겸 제국총독으로 활동했으며,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반인륜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
1907년 출생 -
미키 다케오
미키 다케오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제66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록히드 사건 조사와 정치 개혁을 시도했으나, 정치적 이상과 현실 간 괴리, 강직한 성격 등으로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 -
일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
일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고지마 노부유키
고지마 노부유키는 쇼난 벨마레, 아비스파 후쿠오카 등에서 활약한 일본의 은퇴한 축구 골키퍼 선수로, 쇼난 벨마레 시절 천황배와 아시안 컵 위너스 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동했고 은퇴 후에는 해설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 클럽 경력
와카바야시는 효고현에 있는 고베 잇추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 클럽은 그의 모교인 고등학교 선수들과 졸업생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이 클럽에서 다카야마 타다오 등과 함께 1927년 천황배에서 우승했다.
구제 효고현립 제1고베중학교(현재의 효고현립 고베고등학교) 축구부에서 활동하며 일본 풋볼 우승 대회에 출전했다. 1924년 고베 제1중을 졸업하고 구제 마쓰야마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10월에는 제4회 메이지 신궁 경기 대회 겸 제7회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에 고베 제1중 클럽의 멤버로 출전하여 우승에 기여했다.
도쿄 제국대학 경제학부에 입학 후에는 아식 축구부에 소속되었다. 다카야마 등과 함께 짧은 패스를 활용하는 축구 스타일을 만들어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또한, 도쿄 제국대학에서는 주장을 맡았다.
3. 국가대표팀 경력
1930년 5월, 와카바야시 다케오는 도쿄 제국 대학 학생 신분으로 1930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일본의 우승에 기여했다. 필리핀과의 데뷔전에서 4골을 기록하며 일본 국가대표 선수로는 최초로 데뷔전 해트트릭을 달성했고, 이 기록은 80년 후 히라야마 소타에 의해 경신되었다. 중화민국과의 경기에도 출전했다.
3.1. 국가대표팀 통산 기록
| 연도 | 출전 | 골 |
|---|---|---|
| 1930 | 2 | 4 |
| | 2 || 4 |
* 국제 A매치 2경기 4득점 (1930)
3.2. 국가대표팀 출전 경기
와카바야시는 도쿄 제국 대학 학생 신분이던 1930년 5월, 1930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일본의 우승에 기여했다. 이 대회에서 5월 25일 필리핀과의 데뷔전에서 4골을 기록하며 일본 국가대표 선수로는 최초로 데뷔전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80년 후 히라야마 소타에 의해 경신되었다. 5월 29일에는 중화민국과의 경기에도 출전했다. 와카바야시는 1930년에 일본 대표팀 소속으로 2경기에 출전하여 4골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