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문림
1. 개요
왕문림은 《해동역사》에 기록된 인물이다. 그의 17대 조상인 왕열은 중국 후한의 장군으로, 조조의 초빙을 거절하고 요동에서 살다가 일족이 동이로 흩어졌다. 왕문림의 후손들은 발해에서 활동했으며, 8대손인 왕락덕은 요나라에 의해 발해가 멸망한 후 동단국으로 이주했다. 왕락덕의 증손인 왕계원은 한림학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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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계
2.1. 조상
왕문림의 17대 조상인 왕열은 중국 후한의 장군이다. 조조의 초빙에 응하지 않고, 전란을 피해 요동에서 살았다. 그 후, 요동이 혼란해지자, 일족은 동이로 흩어졌다.
2.2. 발해 시기
왕문림의 8대손인 왕락덕은 발해국에서 살았다. 요 태조가 발해를 정복하자, 왕락덕은 아들과 함께 동단왕을 받들어 요양으로 이주했다. 왕락덕의 증손인 왕계원은 동단왕을 섬겨 한림학사가 되었다.
2.3. 동단국 시기
왕문림의 8대손 왕락덕은 발해에서 살았으나, 요 태조가 발해를 정복하자, 아들과 함께 동단왕을 받들어 요양으로 이주했다. 왕락덕의 증손 왕계원은 동단왕을 섬겨 한림학사가 되었다. 왕계원의 후예는 왕정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