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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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왕열은 영천에서 진식을 섬기며 그의 제자들과 교류했고, 고향에서 학교를 세워 사람들을 교화시켰다. 그는 도둑을 용서하고 격려하여 변화를 이끌어내는 등 덕망을 쌓았다. 조조의 초빙을 거절하고 요동으로 피난했으며, 그의 후손들은 고구려, 발해, 요나라 시대를 거치며 활동했다.

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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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적

왕열은 젊어서 영천으로 가 진식을 섬겼고, 진식의 두 아들과 벗하며 지냈다. 당시 순상, 가표, 이응, 한융 등이 모두 진식에게 가르침을 청하였으나, 그 중 왕열의 기량이 워낙 뛰어나 모두 감복하며 그를 따랐다.

어느 날 도둑이 소를 훔쳤다가 붙잡혔는데, 왕열은 그를 용서해주고 베 한 필을 내려주었다. 왕열은 "부끄러움을 아는 자는 착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 해에 어떤 노인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짐을 대신 들어주고 수십 리를 함께 갔다. 노인은 그의 이름을 물었으나 가르쳐주지 않고 갔다. 그런데 노인은 오던 길에 칼을 떨어뜨렸음을 알고 다시 되돌아갔다. 나중에 그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칼을 발견하고 주인이 올 때까지 칼을 지키고 서 있었다. 해가 저물어 노인이 오니 칼을 주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아까 노인의 짐을 들어준 사람이었다. 노인은 그 사람이 전에 소를 훔친 사람이었고, 왕열은 그를 남다르게 대우했다.

2.1. 진식의 제자

젊어서 영천으로 가 진식을 섬겼고, 진식의 두 아들과 벗하며 지냈다. 당시 순상, 가표, 이응, 한융 등이 모두 진식에게 가르침을 청하였으나, 그 중 왕열의 기량이 워낙 뛰어나 모두 감복하며 그를 따랐다.

2.2. 도둑의 뉘우침

어느 날 도둑이 소를 훔쳤다가 붙잡혔는데, 도둑은 죄를 빌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왕열은 이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용서해 주고 베 한 필을 내려주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왕열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해에 어떤 노인이 무거운 짐을 지고 길을 가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짐을 대신 들어주고 수십 리를 함께 가 주었다. 노인은 집에 다다라 그의 이름을 물었으나 가르쳐주지 않고 갔다. 그런데 노인은 오던 길에 칼을 떨어뜨렸음을 알고 다시 되돌아갔다.

한편 나중에 그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칼을 발견했는데, 그대로 두고 가려다가 다른 사람이 가져갈까 걱정되어 주인이 올 때까지 칼을 지키고 서 있었다. 해가 저물어 노인이 오니 칼을 주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아까 노인의 짐을 들어준 사람이었다. 노인은 그 사람의 옷자락을 붙잡고 말하였다.

그러고는 왕열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왕열 또한 기특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게 했는데 전에 소를 훔친 그 사람이었다. 왕열은 감탄하며 말하였다.

그러고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그를 남다르게 대우했다.

3. 인물

조조의 초빙에 응하지 않고, 전란을 피해 요동군에서 살았다. 그 후, 요동이 혼란해지자 그 일족은 동이로 흩어졌다.

4. 후손

왕문림고구려에서 서부장을 지낸 군인이었다. 왕락덕은 발해에서 살았지만, 태조 야율아보기가 발해를 정복하자 아들과 함께 동단국 왕을 받들어 요양부로 이주했다. 왕계원은 동단국 왕을 섬기며 한림원 한림학사가 되었다. 왕계원의 후손이 왕정균이다.

4.1. 고구려

왕문림고구려에서 서부장을 지낸 군인이었다.

4.2. 발해와 요나라

왕문림고구려에서 서부장을 지낸 군인이었다. 왕문림의 8대 손인 왕락덕은 발해에서 살았지만, 의 태조 야율아보기가 발해를 정복하자 아들과 함께 동단국의 왕을 받들어 요양부로 이주했다. 왕락덕의 증손인 왕계원은 동단국 왕을 섬기며 한림원 한림학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