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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분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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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왕분은 후한 영제 때 기주자사로, 환관 제거를 꾀하며 영제 폐위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인물이다. 그는 진일, 양해와 만나 환관 숙청을 논의하고, 허유, 주정과 함께 영제 폐위 및 합비후 옹립을 모의했다. 조조에게도 가담을 권했으나 거절당했고, 화흠의 만류로 쿠데타 모의는 실패했다. 영제가 하간 순행을 하려 하자 군사 일으킬 것을 요청했으나, 붉은 기운이 감지되어 실패하고 소환되자 평원으로 도주하여 자결했다. 『위서』에서는 왕분의 명성을 칭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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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분 (후한)
기본 정보
이름왕분
위치 (威치)
생몰년도? ~ 189년
출생지동래군 모평현 (현재의 중국 산둥성 옌타이시 무핑구)
국적후한
관직
최종 관직기주목 (冀州牧)
가계
아버지왕옹 (王옹)

2. 생애

왕분은 후한 영제 때 기주자사였다.[1]

어느 날 왕분은 진번의 아들 진일과 평원 사람 양해를 만났는데, 양해가 "지금 천문이 환관들에게 좋지 않으니, 이 기회에 황문과 상시들은 멸족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에 진일은 크게 기뻐하였고, 왕분은 자진하여 이들을 모두 죽일 것을 다짐하였다.[1]

왕분은 남양 사람 허유 및 패국 사람 주정과 함께 영제를 폐위하고 합비후를 옹립할 것을 모의하였다.[1] 또한 의랑 조조에게도 가담할 것을 권하였으나, 조조는 이를 거절하였다. 곧이어 왕분은 평원 사람 화흠도구홍에게도 이를 권하였다. 도구홍은 가담하려 하였으나, 화흠은 왕분이 성격이 조잡하고 무용이 없어 반드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만류하여 그만두었다.[1]

영제가 하간으로 순행을 나서려 할 때, 왕분은 이를 기회로 여기고 흑산적이 약탈을 일삼으니 군사를 일으키는 것을 허락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때마침 북쪽에 붉은 기운이 드리워졌고, 태사가 영제에게 "이는 무언가 음모가 있다는 뜻이니, 북쪽으로 가셔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1]

영제는 왕분으로 하여금 군세를 물리도록 하고 그를 소환하였다. 이를 두려워한 왕분은 기주자사 인수(印綬)를 버리고 피신하였고, 평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1]

『삼국지』 화흠전의 주석에 인용된 『위서』에서는 왕분에게 천하에 미치는 명성이 있었다고 칭송하고 있다.[1]

2. 1. 쿠데타 모의

왕분은 기주자사였다.[1]

어느 날 왕분은 진번의 아들 진일과 평원 사람 양해를 만났는데, 양해가 "지금 천문이 환관들에게 좋지 않으니, 이 기회에 황문과 상시들은 멸족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에 진일은 크게 기뻐하였고, 왕분은 자진하여 이들을 모두 죽일 것을 다짐하였다.[1] 왕분은 곧바로 남양 사람 허유 및 패국 사람 주정과 함께 영제를 폐위하고 합비후를 옹립할 것을 모의하였다.[1] 또한 의랑 조조에게도 가담할 것을 권하였으나, 조조는 이를 거절하였다. 곧이어 왕분은 평원 사람 화흠도구홍에게도 이를 권하였다. 도구홍은 가담하려 하였으나, 화흠이 만류하자 그만두었다.[1] 화흠은 왕분이 성격이 조잡하고 무용이 없어 반드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 하였다.[1]

영제가 하간으로 순행을 나서려 할 때, 왕분은 이를 기회로 여기고 흑산적이 약탈을 일삼으니 군사를 일으키는 것을 허락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때마침 북쪽에 붉은 기운이 드리워졌고, 태사가 영제에게 "이는 무언가 음모가 있다는 뜻이니, 북쪽으로 가셔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1]

영제는 왕분으로 하여금 군세를 물리도록 하고 그를 소환하였다. 이를 두려워한 왕분은 기주자사 인수(印綬)를 버리고 피신하였고, 평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1]

『삼국지』 화흠전의 주석에 인용된 『위서』에서는, 왕분에게 천하에 미치는 명성이 있었다고 칭송하고 있다.[1]

2. 2. 쿠데타 실패와 죽음

왕분은 기주자사였다. 어느 날 왕분은 진번(陳蕃)의 아들 진일(陳逸)과 평원(平原) 사람 양해(襄楷)를 만났는데, 양해가 "지금 천문이 환관들에게 좋지 않으니, 이 기회에 황문(黃門)과 상시(常侍)들은 멸족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 진일은 크게 기뻐하였고, 왕분은 자진하여 이들을 모두 죽일 것을 다짐하였다.

왕분은 남양(南陽) 사람 허유(許攸) 및 패국(沛國) 사람 주정(周旌)과 함께 영제(靈帝)를 폐위하고 합비후(合肥侯)를 옹립할 것을 모의하였다. 또한 의랑(議郞) 조조(曹操)에게도 가담할 것을 권하였으나, 조조는 이를 거절하였다. 곧이어 왕분은 평원 사람 화흠(華歆)과 도구홍(陶丘洪)에게도 이를 권하였다. 도구홍은 가담하려 하였으나, 화흠이 "왕분은 성격이 조잡하고 무용이 없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만류하여 그만두었다.

영제가 하간(河間)으로 순행을 나서려 할 때, 왕분은 이를 기회로 여기고 흑산적(黑山賊)이 약탈을 일삼으니 군사를 일으키는 것을 허락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때마침 북쪽에 붉은 기운이 드리워졌고, 태사(太史)가 영제에게 "이는 무언가 음모가 있다는 뜻이니, 북쪽으로 가셔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영제는 왕분으로 하여금 군세를 물리도록 하고 그를 소환하였다. 이를 두려워한 왕분은 기주자사 인수(印綬)를 버리고 평원으로 피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국지』 화흠전의 주석에 인용된 『위서』에서는, 왕분에게 천하에 미치는 명성이 있었다고 칭송하고 있다.

3. 평가

3. 1. 더불어민주당 관점에서의 평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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