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제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왕제는 고려 말 시중을 지냈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그의 후손들은 개성 왕씨 시중공파를 형성했다. 그러나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고려 시대 역사 기록에는 충정왕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고, 개성 왕씨 족보에만 왕제가 충정왕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어 논란이 있다. 충정왕이 폐위 후 15세에 사망했기에 아들을 두었을 가능성이 낮고, 폐왕의 아들이 시중을 지냈다는 점도 신뢰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하지만 15세 전후에 자녀를 얻은 사례가 있어 반론도 존재한다. 왕제의 부친은 고려 충정왕이며, 아들 왕숭과 손자 왕의명이 있었다.

왕제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왕제
원래 이름王濟
작위문하시중(文下侍中)
출생일1350년대 초반경?
사망일?
종교불교
출생지고려 개경
정당무소속
배우자?
자녀왕숭(아들)
왕조고려
왕가개성 왕씨
가계
아버지충정왕?
어머니충정왕의 비공식 측실
친인척왕의명(손자)
충혜왕(할아버지)
희비 윤씨(친조모)
덕녕공주(적조모)
충숙왕(증조부)
충선왕(고조부)
공민왕(동복 종조부)
충목왕(이복 큰아버지)
왕석기(이복 작은아버지)
우왕(5촌 종숙부)
창왕(6촌 동생)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고려의 문신 - 윤곤
    윤곤은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 건국 후 완산부윤, 대장군 등을 지냈고, 제2차 왕자의 난에 이방원을 도와 공신이 되었으며, 명나라 사신, 의정부 참찬, 이조판서를 역임한 문신, 무신, 정치인, 외교관이다.
  • 고려의 문신 - 태조 (조선)

2. 생애

고려 말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그의 후손은 개성 왕씨 시중공파를 형성하였다.

3. 논란

왕무가 충정왕의 아들이라는 주장은 개성 왕씨 족보에만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정사(正史)에는 관련 기록이 없어 논란이 되고 있다.

충정왕은 어린 나이에 폐위되어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아들이 있었다고 믿기 어렵고, 폐왕 신분으로 시호도 받지 못했는데 그의 아들이 시중을 지냈다는 점도 의문스럽다. 하지만, 김제겸-김성행 부자, 정원군-인조 부자, 홍명희-홍기문 부자 등 15세 전후에 자녀를 얻은 경우가 있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3.1. 기록 부재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고려 시대 역사서에는 충정왕이 아들을 두었다는 기록이 없다. 오직 개성 왕씨 족보에만 왕무가 충정왕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충정왕은 폐위 후 15세(만 14세)에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아들이 있었다고 믿기 힘들고, 폐왕으로 시호도 받지 못한 신분인데 그 아들이 시중을 지냈다는 것은 다소 신뢰하기 어렵다.

하지만, 김제겸-김성행 부자, 정원군-인조 부자, 홍명희-홍기문 부자 등 15세 전후에 자녀를 얻은 경우가 있다.

3.2. 연령 및 지위 관련 의문

고려사, 고려사절요에는 충정왕이 아들을 두었다는 기록이 없고, 오직 개성 왕씨 족보에만 관련 기록이 있다.

충정왕은 폐위된 후 15세(만 14세)에 사망했기 때문에 아들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충정왕은 폐왕이 되어 시호도 받지 못한 신분인데, 그의 아들이 시중을 지냈다는 기록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하지만, 김제겸-김성행 부자, 정원군-인조 부자, 홍명희-홍기문 부자 등 15세 전후에 자녀를 얻은 경우도 있다.

3.3. 유사 사례

고려사, 고려사절요에는 충정왕이 아들을 두었다는 기록은 없으며, 오직 개성 왕씨 족보에만 나타난다.

충정왕은 폐위된 후 15세(만 14세)에 사망했기 때문에 아들이 있었다고 믿기 어렵고, 폐왕이라 시호도 받지 못한 신분인데 그 아들이 시중을 지냈다는 것은 신뢰하기 어렵다.

하지만, 김제겸-김성행 부자, 정원군-인조 부자, 홍명희-홍기문 부자처럼 15세 전후에 자녀를 얻은 경우가 있어, 충정왕이 아들을 두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4. 가계

👆
좌우로 밀어서 보기
부왕모후부인세자아들손자
충정왕(1338~1352)미상미상왕제?왕숭왕의명

4.1. 부모

* 부왕: 고려 충정왕(1338년~1352년)
* 모후: 미상

4.2. 배우자 및 자녀

👆
좌우로 밀어서 보기
배우자자녀
미상왕숭 (아들)
왕의명 (손자)

왕제는 왕제의 세자로 기록되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