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평 (작가)
1. 개요
왕평은 1908년 경상북도 영천군 출생으로, 배우, 극작가, 작사가로 활동했다.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배우학교에서 연기를 공부했으며, 1930년대 초 조선연극사 전속 작가로 활동했다. 이애리수의 〈황성의 적〉, 선우일선의 〈조선팔경가〉 등 트로트와 신민요 작사가로 활동했으며, 극반 《항구의 일야》를 쓰고 출연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말 성봉영화원에 참여하여 영화 《나그네》와 《군용열차》에 출연하며 영화계에 데뷔했으나, 1940년 연극 공연 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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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극작가 -
송영 (극작가)
송영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극작가로, 카프 계열 연극인으로 등단하여 노동 운동 풍자 작품을 발표했으나 친일 행적을 보였고, 광복 후 월북하여 북조선연극동맹 위원장을 지냈으며, 김일성 항일 무장 투쟁을 형상화한 희곡으로 알려졌으나 한설야 숙청 시기에 숙청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애국렬사릉에 안장된 것으로 보아 복권된 것으로 추정된다. -
일제강점기의 극작가 -
주요한
주요한은 일제강점기 시인이자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며, 친일 행위로 인해 논란이 있으며, 국회의원과 상공부 장관을 역임했다. -
일제강점기의 연극 배우 -
현철 (1891년)
현철은 일제강점기에 연극, 영화, 야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연극 관련 저술과 번역 활동을 하고 조선배우학교를 설립하여 배우를 양성하는 등 한국 연극계 발전에 기여했으며, 광복 후 서울시 문화위원회 연극분과위원장을 지냈다. -
일제강점기의 연극 배우 -
문예봉
문예봉은 일제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배우로,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로 데뷔하여 《춘향전》에서 춘향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으며, 월북 후 북한에서 공훈배우로 활동하다 사망했다. -
일제강점기의 영화 배우 -
문예봉
문예봉은 일제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배우로,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로 데뷔하여 《춘향전》에서 춘향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으며, 월북 후 북한에서 공훈배우로 활동하다 사망했다. -
일제강점기의 영화 배우 -
나운규
나운규는 일제강점기 영화감독이자 배우, 각본가로, 영화 《아리랑》을 통해 조선인의 저항 의식을 고취하며 한국 영화사에 큰 획을 그었으나, 민족주의적 영화 제작 중 조선총독부의 탄압과 건강 악화로 요절한 독립운동가이다.
2. 생애
왕평은 1908년 경상북도 영천군에서 태어나 5~7세 때 청송군에서 잠시 살았고, 묘소는 청송군 파천면에 있다. 배재고등보통학교(현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배우학교 1기생으로 연기를 공부했다. 배우, 극작가, 작사가로 활동했으며, 일제 강점기 말 영화계에도 진출했으나 1940년 평안북도 강계군에서 연극 공연 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2.1. 성장 과정 및 연기 공부
경상북도 영천군 출신으로, 5~7세에 청송군에서 잠시 살았고, 묘소도 청송군 파천면에 있다고 한다. 이후 성장 과정은 불분명하다. 배재고등보통학교(현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현철이 운영하던 조선배우학교 제1기 입학생으로 들어가 연기를 공부했다.
2.2. 배우, 극작가, 작사가 활동
왕평은 배우뿐만 아니라 극작가와 대중가요 작사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1930년대 초, 조선연극사의 전속 작가로 작품을 발표했다. 1932년 포리돌레코드의 조선 지점 설립에 관여한 뒤 문예부장을 맡았다.
이애리수의 〈황성의 적〉과 선우일선의 신민요 〈조선팔경가〉는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본격적인 트로트이며, 왕평의 대표적인 작사가로서의 작품이다. 1933년부터 8장이 발매된 인기 극반 《항구의 일야》도 유명하다. 《항구의 일야》는 왕평이 작품을 쓰고 전옥과 함께 주연을 맡기도 했다. 이때는 작가로서는 본명 이응호를, 배우로서는 예명 왕평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