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봉
1. 개요
문예봉은 일제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배우로, 1917년 함흥에서 출생했다. 1932년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로 데뷔하여 《춘향전》에서 춘향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 남편 임선규의 친일 행적으로 인해 친일 논란에 휩싸였으며, 1948년 월북하여 북한에서 공훈배우 칭호를 받으며 체제 선전 영화에 출연했다. 1960년대 숙청설에 휘말리기도 했으나, 말년에 복귀하여 활동을 이어갔고, 1999년 사망하여 애국렬사릉에 묘소가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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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화 배우 -
서광제
서광제는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까지 활동한 영화 평론가이자 영화 감독으로, 카프 참여, 친일 영화 제작, 광복 후 좌익 활동, 월북 후 시나리오 작가 활동을 했으며,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과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화 배우 -
주인규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활동한 배우이자 영화인인 주인규는 1926년 영화 《아리랑》에서 악역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해방 후 북한 영화계에서 활동하다 남로당계로 숙청당해 사망했다. -
조선영화동맹의 인물 -
안종화
안종화는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까지 활동한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배우로서 한국 영화 초창기 작품들을 연출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나, 일제강점기 말기 친일 행적과 광복 후 우익 계열 활동으로 논란이 된 인물이다. -
조선영화동맹의 인물 -
서광제
서광제는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까지 활동한 영화 평론가이자 영화 감독으로, 카프 참여, 친일 영화 제작, 광복 후 좌익 활동, 월북 후 시나리오 작가 활동을 했으며,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과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
함경남도 출신 -
김정일
김정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2대 최고지도자로, 김일성 사망 후 권력을 승계하여 조선로동당 총비서 및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통치하며 3대 세습, 핵무기 개발, 남북 정상회담 등의 사건과 경제난, 인권 탄압 등의 문제를 겪은 인물이다. -
함경남도 출신 -
김창룡
김창룡은 일제강점기 관동군 헌병으로 항일 조직 색출에 참여한 군인으로, 해방 후 대한민국 육군에서 정보 및 방첩 업무를 담당하며 숙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특무부대장으로서 인권 침해 및 사건 조작 의혹, 김구 암살 사건 연루 의혹 등 각종 논란 속에 암살당해 역사적 평가가 엇갈린다.
2. 생애
문예봉은 1917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으나, 경성부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배우였던 아버지 문수일을 따라 유랑극단에 들어가 연기를 시작했다.
13세 무렵에는 이미 아역 배우로 무대에 서기 시작했고, 15세 무렵부터는 성인 역할도 소화했다. 당시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나운규가 그녀의 연기를 보고 영화 《주막》(1932)의 여주인공으로 추천했다. 이후 문예봉은 나운규가 연기한 뱃사공의 딸 역을 맡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933년 극작가 임선규와 결혼했다. 광복 후 조선영화동맹에 가입하여 중앙집행위원을 맡았다. 1948년 월북하여 《내 고향》(1949)을 시작으로 여러 극영화에 출연했고, 한국 전쟁 때는 선무 공연으로 참전했다. 1952년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 사이에는 나운규를 지나치게 찬양한 것이 빌미가 되어 지방으로 추방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복권되었다고 한다. 1982년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으며, 묘지는 애국렬사릉에 마련되어 있다. 1999년 사망하여 묘지는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2.1. 영화계 데뷔와 스타덤
1932년 15세의 나이로 나운규 주연의 무성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에 출연하여 뱃사공의 딸 역할을 맡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 영화로 '화형(花形)', '백합꽃'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청초한 이미지로 193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가 되었다. 조선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1935)에서 춘향 역을 맡아 인기를 얻은 후 경성촬영소에 입사하여 경성촬영소 제작 영화에 잇달아 출연했다.
당시 인기 배우였던 김연실과 비교했을 때, 김연실은 능숙한 연기를 선보였다면 문예봉은 관습화되지 않은 신선한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로 아담하고 깨끗하며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농촌 여성 이미지를 연기했다. 그러나 함경도 사투리가 섞인 억양과 청아하지 못한 목소리는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2.2. 친일 행적 논란
1933년 극작가 임선규와 결혼했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 남편 임선규의 친일 활동과 더불어, 문예봉 역시 친일 영화에 다수 출연하며 친일 행위에 가담했다는 논란이 있다. 이 때문에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영화 부문에 남편과 함께 이름이 올랐다. 대표적인 친일 영화로는 《군용열차》(1938), 《지원병》(1941), 《조선해협》(1943) 등이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문예봉의 친일 행위가 배우로서 주도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낮다고 판단하여 기각했다.
2.3. 월북과 북한에서의 활동
1948년 남편 임선규와 함께 월북했다. 북한에서 《내 고향》(1949), 《빨치산 처녀》(1954), 《성장의 길에서》, 《다시 찾은 이름》 등 체제 선전 영화에 출연했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선무 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1952년 북한 최초의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 사이에는 숙청설이 돌기도 했다. 1965년 《조선영화》 4월호에 게재한 수필에서 스승이자 동료 배우였던 나운규를 지나치게 찬양한 것이 빌미가 되어 지방의 협동농장으로 추방되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복권되어 영화 《춘향전》(1980)에 '월매' 역으로 출연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82년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으며, 묘지는 애국렬사릉에 마련되어 있다.
2.4. 사망
1999년에 사망했고, 묘지는 애국렬사릉에 마련되었다.
3. 주요 출연 작품
| 연도 | 제목 | 감독 | 배역 |
|---|---|---|---|
| 1932 | 《임자 없는 나룻배》 | 이규환 | |
| 1935 | 《춘향전》 | 춘향 | |
| 1935 | 《춘풍》 | 박기채 | |
| 1935 | 《아리랑고개》 | 홍개명 | 총각 |
| 1936 | 《그 후의 이도령》 | ||
| 1936 | 《미몽》 | 양주남 | 애순 |
| 1936 | 《장화홍련전》 | 이명우 | 장화 |
| 1936 | 《무지개》 | ||
| 1937 | 《나그네》 | 옥희 | |
| 1937 | 《인생항로》 | 안종화 | |
| 1938 | 《군용열차》 | 서광제 | 영심 |
| 1938 | 《애련송》 | 김유영 | |
| 1938 | 《새 출발》 | 이규환 | |
| 1940 | 《수선화》 | 김유영 | |
| 1940 | 《수업료》 | 최인규 | |
| 1941 | 《집 없는 천사》 | 최인규 | 마리아 |
| 1941 | 《지원병》 | 안석영 | 분옥 |
| 1941 | 《창공》 | 이규환 | |
| 1941 | 《너와 나》 | 허영 | |
| 1943 | 《조선해협》 | 박기채 | 킨슈쿠 |
| 1944 | 《태양의 아이들》 | ||
| 1945 | 《사랑과 맹세》 | 최인규 | |
| 1949 | 내 고향 | 강홍식 | 옥단 |
| 1950 | 용광로 | ||
| 1951 | 《소년빨치산》 | ||
| 1954 | 《빨치산 처녀》 | 조옥희 | |
| 1955 | 《신혼 부부》 | ||
| 1956 | 《백두산이 보인다》 | ||
| 1959 | 《금강산의 처녀》 | ||
| 1959 | 춘향전 | ||
| 1963 | 《붉은 꽃》 | ||
| 1964 | 《침략선 셔먼호》 | ||
| 1965 | 《성장의 길》 | ||
| 1980 | 춘향전 | 월매 | |
| 1982 | 《두 사람의 선장》 | ||
| 1983 | 《우리는 모두 하나의 가족》 | ||
| 1984 | 《돌아오지 않는 밀사》 | ||
| 1984 | 《푸른 소나무》 | ||
| 1985 | 《생명수》 | ||
| 1985 | 《은빗장》 | ||
| 1985 | 《봄날의 눈 녹음》 | ||
| 1986 | 《광주는 외친다》 | ||
| 1986 | 《위대한 품》 | ||
| 1991 | 《당신을 위한 교향시》 | ||
| 1992 | 《버드》 | ||
| 1992 | 《우리 새로운 세대》 | ||
| 1996 | 《우리 새로운 세대》 | ||
| 1997 | 《후일의 나의 모습》 |
3.1. 일제강점기
문예봉은 1932년 이규환 감독의 《임자 없는 나룻배》로 데뷔하였다. 1935년에는 《춘향전》에서 춘향 역을 맡았고, 같은 해 《춘풍》, 《아리랑고개》 등에 출연하였다. 1936년에는 《미몽》에서 애순 역을, 《장화홍련전》에서 장화 역을 맡았다.
1937년 《나그네》에서 옥희 역, 1938년 《군용열차》에서 영심 역을 연기했다. 1940년 최인규 감독의 《수업료》, 1941년 《집 없는 천사》에서 마리아 역, 《지원병》에서 분옥 역을 맡았다. 1943년에는 《조선해협》에서 킨슈쿠 역으로 출연했다.
| 연도 | 제목 | 감독 | 배역 |
|---|---|---|---|
| 1932 | 《임자 없는 나룻배》 | 이규환 | |
| 1935 | 《춘향전》 | 춘향 | |
| 1935 | 《춘풍》 | 박기채 | |
| 1935 | 《아리랑고개》 | 홍개명 | 총각 |
| 1936 | 《그 후의 이도령》 | ||
| 1936 | 《미몽》 | 양주남 | 애순 |
| 1936 | 《장화홍련전》 | 이명우 | 장화 |
| 1936 | 《무지개》 | ||
| 1937 | 《나그네》 | 옥희 | |
| 1937 | 《인생항로》 | 안종화 | |
| 1938 | 《군용열차》 | 서광제 | 영심 |
| 1938 | 《애련송》 | 김유영 | |
| 1938 | 《새 출발》 | 이규환 | |
| 1940 | 《수선화》 | 김유영 | |
| 1940 | 《수업료》 | 최인규 | |
| 1941 | 《집 없는 천사》 | 최인규 | 마리아 |
| 1941 | 《지원병》 | 안석영 | 분옥 |
| 1941 | 《창공》 | 이규환 | |
| 1941 | 《너와 나》 | 허영 | |
| 1943 | 《조선해협》 | 박기채 | 킨슈쿠 |
| 1944 | 《태양의 아이들》 | ||
| 1945 | 《사랑과 맹세》 | 최인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