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튀켄숲
1. 개요
외튀켄숲은 몽골 지역에 위치한 산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553년경 돌궐이 수도로 삼았으며, 당나라 시대에는 연연도호부가 설치되기도 했다. 744년에는 위구르가 동돌궐을 멸망시킨 후 아(牙)를 옮겼다. 12세기 이후 몽골인들에게 '토지의 여신'이 존재하는 성지로 여겨지며, 현재 몽골 항가이 산맥 동남부의 여러 산맥으로 추정된다.
| 위치 | 몽골 북부 산악 지대 |
|---|---|
| 중요성 | 튀르크족에게 정신적, 문화적 중심지 |
| 어원 정보 | "외튀켄"은 "숲의 신" 또는 "대지의 여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 |
|---|---|
| 고대 튀르크어 표기 | 𐰇𐱅𐰜𐰤:𐰖𐰃𐱁 (Ötüken yïš, 외튀켄 이시[Ötüken yïš]) |
| 한자 표기 | 於都斤 (어도편) |
| 돌궐 제1제국 | 돌궐 제1제국의 주요 중심지 |
|---|---|
| 위구르 제국 | 위구르 제국의 중요한 장소 |
| 종교적 의미 | 튀르크족의 전통 종교인 텡그리교에서 신성한 장소로 여겨짐 |
| 숭배 대상 | 튀르크족은 외튀켄에서 하늘, 땅, 조상을 숭배함 |
| 숲의 여신 | 외튀켄은 숲의 여신으로 숭배받음 |
|---|---|
| 자연과의 조화 | 튀르크족은 외튀켄을 통해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 |
| 정신적 고향 | 튀르크족에게 외튀켄은 정신적 고향과 같은 의미를 지님 |
| 상징적 의미 | 현대 튀르크족에게 외튀켄은 민족적 자긍심과 전통을 상징 |
|---|---|
| 문화 보존 노력 | 외튀켄은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의 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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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신화 -
보돈차르 문카그
보돈차르 문카그는 칭기즈 칸의 선조로, 몽골족 기원 설화에 등장하는 보르테 치노와 구아 마랄로부터 시작되는 족보를 통해 몽골 주요 씨족들의 계보를 보여주며, 그의 후손들은 여러 씨족을 이루어 몽골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
몽골 신화 -
차강사르
차강사르는 몽골력 새해 첫 사흘 동안 기념되는 몽골의 전통 설날로, 평화와 조화를 기원하며 흰색을 순수함의 상징으로 여기고, 가족과 친척을 방문하여 선물을 주고받는 풍성한 잔치를 즐기는 명절이다. -
튀르크 신화 -
마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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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크 신화 -
오구즈 칸
오구즈 칸은 튀르크 민족의 기원을 설명하는 전설 속 영웅으로, 세상을 정복할 운명을 지녔으며 튀르크 민족의 주요 부족들을 형성하는 아들들을 두었고, 튀르크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문화적 유산을 남겨 튀르크 문화권에서 숭배받고 있다. -
돌궐 -
동돌궐
동돌궐은 583년 돌궐 제국에서 분열되어 건국된 튀르크 민족 국가로, 수나라와 당나라의 압박, 내부 분열로 멸망과 부흥을 반복하다가 745년 위구르 카간국에 의해 최종 멸망했으며, 돌궐 비문과 같은 문화를 남겼다. -
돌궐 -
서돌궐
서돌궐은 6세기 중반 중앙아시아에서 발흥한 투르크계 유목민족 국가로, 7세기 초 전성기를 누렸으나 당나라의 압력과 내분으로 멸망 후 분열되었다가 8세기 중반 독립을 쟁취하였다.
2. 역사
외튀켄은 고대 돌궐 제국과 위구르 제국 시기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에게 중요한 성지이자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553년경 돌궐의 목한 가한이 이곳을 수도로 삼은 이래, 동돌궐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이후 당나라의 영향 아래 놓이기도 했으며, 744년 위구르 제국이 들어선 후에도 수도로서의 지위를 유지했다. 12세기 이후 몽골인들에게는 etügenmon, itügenmon, ütügenmon, ütüginmon 등으로 불리는 토지의 여신으로 신성시되어 현재까지 그 인식이 이어지고 있다.
2.1. 돌궐 시대
553년경, 돌궐의 목한 가한(재위: 553년 - 572년)이 외튀켄에 수도인 가한정을 설치하였으며, 이후 이곳은 계속해서 동돌궐의 수도 역할을 하였다.
정관 2년(628년), 동돌궐이 당나라에 항복하여 기미 정책 아래로 들어가자, 철륵 설연타부의 이남은 진주비가 가한을 칭하고 외튀켄(울독군산) 아래에 아장(牙帳, 중심지)을 세웠다.
정관 20년(646년), 당나라는 이남을 토벌하고 설연타부 역시 기미 정책 아래에 두었다. 이듬해인 647년에는 외튀켄(울독군산)에 연연도호부를 설치하였다.
영휘 원년(650년), 당나라는 반란을 일으킨 동돌궐의 차비 가한을 사로잡았다. 이후 그의 남은 무리를 외튀켄(울독군산)에 거주하게 하고 낭산도독을 두어 통치하게 하였다.
천보 3재(744년), 회흘(위구르)부의 골력패라는 동돌궐(제2 카간국)을 멸망시키고, 수도인 아(牙)를 오덕간산(외튀켄)과 곤하(昆河) 사이로 옮겼다.
2.2. 당나라 시대
정관 2년(628년), 동돌궐이 당나라에 항복하여 기미 정책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때 철륵 설연타부의 이남은 진주비가 가한 칭호를 받고 외튀켄숲(울독군산) 아래에 거점을 마련했다.
정관 20년(646년), 당나라는 설연타부의 이남 세력을 토벌하고 설연타부 역시 기미 정책하에 편입시켰다. 다음 해인 647년에는 외튀켄숲(울독군산)에 연연도호부를 설치하여 이 지역에 대한 통치를 강화했다.
영휘 원년(650년), 당나라는 모반을 일으킨 동돌궐의 차비 가한을 사로잡았다. 이후 당나라는 그의 남은 무리를 외튀켄숲(울독군산) 지역에 거주하도록 조치하고, 낭산도독을 임명하여 이들을 관리하게 하였다.
2.3. 위구르 시대
천보 3재(744년), 회흘부의 골력패라는 동돌궐(제2 가한국)을 멸망시키고, 수도인 아(牙)를 오덕간산과 곤하(昆河) 사이에 옮겼다.
3. 위치
우튀켄 산의 위치는 현재 몽골에 있는 항가이 산맥 동남부의 여러 산맥으로 비정된다. 돌궐 시대에는 산뿐만 아니라 그 지역 일대가 "우튀켄의 땅(Ütükän yir)"이라고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