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코크
1. 개요
요한 코크는 헬싱키에서 태어난 인물로, 1900년 비푸리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혁명 문서를 스웨덴에서 핀란드를 거쳐 러시아로 밀수하는 경로를 조직했다. 1905년 총파업 기간 동안 국가 방위대 지도자가 되었으며, 스베아보르 반란에 참여했다가 실패 후 스웨덴,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코크는 1915년 매사추세츠주 피치버그에서 사망했다.
| 본명 | 요한 코크 |
|---|---|
| 원어 이름 | Johan Kock핀란드어 |
| 직업 | 핀란드 군인 |
|---|---|
| 사망일 | 1915년 4월 15일 |
| 관련 내용 | 그의 머리에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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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군인 -
쿠르트 마르티 발레니우스
쿠르트 마르티 발레니우스는 핀란드의 군인이자 우익 정치인으로, 독일 예거 부대 복무와 핀란드 내전 참전을 거쳐 라푸아 운동 참여로 투옥되기도 했지만, 겨울 전쟁에서 라플란드 집단군 사령관으로 활약 후 은퇴하여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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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모 라흐티는 핀란드군의 병기 개발에 기여한 무기 설계자로, 라티-살로란타 M/26 경기관총, 수오미 M-31 기관단총, M/27 "Pystykorva" 소총 등을 설계했으며 조국에 대한 애국심으로 핀란드에 헌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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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 발타리는 핀란드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 저널리스트로, 역사 소설 《이집트인》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핀란드 문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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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
2. 생애
요한 코크는 헬싱키에서 태어나 1900년 비푸리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혁명적인 문서를 스웨덴에서 핀란드를 거쳐 러시아로 밀수하는 경로를 조직하는 등 혁명 운동에 참여했다. 1905년 총파업 당시 국가 방위대 지도자로 활동하며 러시아 차르에 저항했고, 이반 오볼렌스키 총독의 신뢰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학술 단체와의 갈등, 파업 종료 과정에서의 이견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906년 스베아보르 반란에 참여했으나 실패 후 스웨덴,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1915년 매사추세츠주 피치버그에서 사망했으며, 마티 쿠리키가 그의 죽음을 조사했다.
2.2. 1905년 총파업
1905년 총파업 기간 동안 학술 단체와 노동 단체는 러시아 차르에 대항하여 함께 시위를 벌였다. 코크는 파업 기간 동안 국가 방위대의 지도자가 되었다. 코크는 총독 이반 오볼렌스키의 지지와 신뢰를 얻었다. 그럼에도 오볼렌스키는 헌법주의자들과 파업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협상했다. 학술 단체는 코크의 지도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학생과 공과대학생들은 분열되어 괴스타 쇠르슬레프의 지도 아래 자체 조직을 설립했다.
헌법주의자들은 11월 5일에 파업을 끝내고 싶었지만, 노동 군단은 파업을 계속하려 했다. 파업을 지지했던 코크는 파업을 끝내기 위한 협상에 참여했다. 파업은 11월 6일에 끝났고, 다음 날 코크는 자신의 병력을 헬싱키 경찰서에서 철수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