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페터 쥐스밀히
1. 개요
요한 페터 쥐스밀히는 1707년 브란덴부르크에서 태어나 예나 대학교와 할레-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독일의 목사이자 인구 통계학자이다. 그는 군목으로 참전한 제1차 슐레지엔 전쟁 중 저술한 《신의 질서》를 통해 출생, 사망, 결혼 등 자료를 분석하여 통계적 법칙을 발견하고, 특히 출생 성비가 일정하다는 것을 밝혀 독일 인구 통계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쥐스밀히는 1745년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으며, 1767년 베를린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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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통계학자 -
에른스트 엥겔
에른스트 엥겔은 엥겔 계수와 엥겔 법칙으로 유명한 독일 통계학자이자 사회경제학자로, 프로이센 통계국 국장을 역임하며 관청 통계를 정비하고 사회통계학 발전에 기여했다. -
독일의 통계학자 -
에밀 율리우스 굼벨
에밀 율리우스 굼벨은 독일의 수리 통계학자이자 평화주의 운동가로, 극치 이론의 수리 분야를 개척하여 통계학 발전에 기여했으며, 정치적 폭력과 군국주의를 비판하다 나치 정권의 탄압으로 망명했다. -
독일의 신학자 -
에른스트 트뢸치
에른스트 트뢸치는 1865년에 태어나 1923년에 사망한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이자 문화철학자로서, 자유주의 신학을 완성하고 종교사학적 접근을 통해 기독교의 사회적 가르침을 연구했으며,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자였다. -
독일의 신학자 -
요한네스 발만
요하네스 발만은 독일의 신학자이자 교회사가로, 경건주의와 독일 개혁 이후의 교회사 연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으며, 필립 야코프 슈페너와 경건주의의 관계, 요한 게르하르트와 게오르크 칼릭스트의 신학 사상 등을 분석하며 17세기 이후 독일의 종교와 사회 문화를 이해하는 데 기여했다. -
1767년 사망 -
찰스 타운젠드
18세기 영국 정치인이자 재무장관이었던 찰스 타운젠드는 미국 독립혁명의 계기가 된 타운젠드 법을 제정하고 해군卿 위원회 위원, 왕실 회계장관, 무역위원회 제1卿 등 다양한 직책을 수행했으며, 미국 식민지에 대한 과세 정책으로 식민지 반발을 야기했다. -
1767년 사망 -
계황후
청나라 건륭제의 황후인 계황후는 휘발나랍씨로, 황귀비에서 황후가 되었으나 강남 순행 중 머리를 자른 사건으로 폐위되어 시호도 받지 못했으며, 그녀의 성씨, 생년, 폐위 경위 등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2. 생애
쥐스밀히는 1707년 9월 3일, 당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령의 Zehlendorf (Berlin)영어(현재 베를린의 한 지역)에서 태어났다. 예나 대학교와 할레-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의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제1차 슐레지엔 전쟁에 참전하여 진중에서 《신의 질서》를 썼는데, 이 책은 출생, 혼인, 사망자 표를 광범위하게 수집, 정리, 집계하여 일정한 통계적 법칙이 있음을 실증하였다.
2.1. 초기 생애와 교육
쥐스밀히는 브란덴부르크에서 조부모에 의해 자랐다. 1716년부터 1722년까지 베를린 대학교에서 자연사에 관심을 가지며 공부했다. 1724년에는 베를린의 해부학 연구소에서 공부했다. 1727년 부모의 권유로 할레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법학에 흥미를 잃고 신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1728년에는 예나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1733년에 논문을 발표했다.
2.2. 목회 활동과 학문적 업적
1741년, 쥐스밀히는 군목으로 제1차 슐레지엔 전쟁에 참전했다. 같은 해 8월 13일, 에친 공동체의 목사로서 취임 설교를 했다. 1742년에는 베를린-쾰른의 성 페트리 교구에서 프로보스트 직을 맡았다. 1745년에는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그는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이마누엘 칸트와 교류했다.
제1차 슐레지엔 전쟁 참전 중에 쥐스밀히는 《신의 질서》(Die Göttliche Ordnung)를 저술했다. 이 책에서 그는 출생, 혼인, 사망자 수를 광범위하게 수집, 정리, 집계하여 일정한 통계적 법칙이 있음을 실증하였다. 쥐스밀히는 장기적으로 1,000명의 여자 아이 출생당 1,050명의 남자 아이가 태어나는 일정한 성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신의 섭리가 작용한다는 증거로 보았다. 이 연구로 그는 독일 인구 통계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그는 생명표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3. 주요 업적과 영향
쥐스밀히는 1741년 제1차 슐레지엔 전쟁에 종군 목사로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신의 질서》를 저술했다. 이 책에서 그는 출생, 혼인, 사망 기록을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분석하여 일정한 통계적 법칙을 발견했다. 특히, 장기간에 걸쳐 여성 1,000명 출생 당 남성 1,050명이 태어나는 일정한 성비를 확인하고, 이를 신의 섭리로 해석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쥐스밀히는 독일 인구 통계학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그는 카스파르 노이만의 연구를 참고하여 브로츠와프의 월별 사망률 및 사망 원인 통계를 분석하고, 생명표 연구에도 기여했다.
3.1. 《신의 질서》와 인구 통계학
쥐스밀히는 제1차 슐레지엔 전쟁에 목사로 참전하여 진중에서 《신의 질서》를 썼다. 이 책은 출생, 혼인, 사망자 표를 광범위하게 수집, 정리, 집계하여 일정한 통계적 법칙이 있음을 실증하였다.
1741년에 쥐스밀히가 저술한 《인간의 성별, 출생, 죽음 및 번식의 상황에서의 신성한 질서》는 인구 통계학 역사에서 획기적이고 선구적인 연구로 여겨진다. 쥐스밀히는 장기적으로 여성 1,000명당 남성 1,050명의 비율로 출생률의 성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것을 이 세상에서 신의 섭리가 작용한다는 증거로 보았다. 이 연구로 인해 그는 독일 인구 통계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는 그의 저서에서 카스파르 노이만의 연구를 언급했는데, 노이만은 이미 1687년부터 1691년 사이에 브레슬라우(현재의 브로츠와프)에서 연령 및 사망 원인별 월별 사망 통계를 계산했다. 쥐스밀히는 생명표 작성에도 기여했다.
3.2. 학문적 영향과 유산
쥐스밀히가 1741년에 저술한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인 인간의 성별, 출생, 죽음 및 번식의 상황에서의 신성한 질서는 인구 통계학과 인구 통계의 역사에서 획기적이고 선구적인 연구로 여겨진다. 그는 장기적으로 1,000명의 여자 아이 출생당 1,050명의 남자 아이가 태어나는 일정한 성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것을 이 세상에서 신의 섭리가 작용한다는 증거로 보았다. 이 연구로 인해 그는 독일 인구 통계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저서에서 카스파르 노이만의 연구를 언급했는데, 노이만은 이미 1687년부터 1691년 사이에 브로츠와프(현재의 브로츠와프)에서 연령 및 사망 원인별 월별 사망 통계를 계산했다. 쥐스밀히는 또한 생명표에 대해 연구했다.
4. 저서
* 베를린 왕궁의 성장과 빠른 건설, 1752
* 출생, 사망 및 번식을 통한 인간 성의 변화에 있어서의 신성한 질서 제1부, 1761
* 출생, 사망 및 번식을 통한 인간 성의 변화에 있어서의 신성한 질서 제2부, 1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