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
1. 개요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는 1700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에 의해 설립된 학술 기관으로,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과학과 인문학을 모두 다루는 최초의 아카데미였으며, 프리드리히 2세 시대에 이르러 프랑스어 사용, 사변 철학 연구 등을 특징으로 했다. 19세기에는 다양한 연구 사업을 주도했으며, 20세기에는 나치 정권의 탄압을 겪고 동독 시대를 거쳐, 독일 재통일 이후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과학 인문학 아카데미로 재설립되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저명한 학자들이 회원으로 활동했다.
| 이름 (독일어) | Königlich-Preußische Akademie der Wissenschaften (쾨니히리히프로이시셰 아카데미 데어 바이센샤프텐) |
|---|---|
| 이름 (한국어) |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 |
| 이전 이름 (독일어) | Kurfürstlich Brandenburgische Societät der Wissenschaften (쿠어퓌르스틀리히 브란덴부르기셰 소치에테트 데어 바이센샤프텐) |
| 이전 이름 (한국어) |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학회 |
| 또 다른 이전 이름 (독일어) | Königlich Preußische Sozietät der Wissenschaften (쾨니히리히 프로이시셰 소치에테트 데어 바이센샤프텐) |
| 또 다른 이전 이름 (한국어) | 프로이센 왕립 과학 협회 |
| 종류 | 과학 아카데미 |
| 설립 | 1700년 |
|---|---|
| 해산 | 1946년 |
| 후신 |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 |
| 국가 | 독일 |
|---|---|
| 도시 | 베를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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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교육 -
헤르티 스쿨
헤르티 스쿨은 2003년 독일 베를린에 설립된 공공정책대학원으로, 공공정책, 국제 관계, 공공 정책 데이터 과학 분야의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제공하며, 유수의 대학들과 복수 학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국제적인 학술 교류를 지향한다.
2. 기원
1700년,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의 조언에 따라 "Kurfürstlich Brandenburgische Societät der Wissenschaften"(선제후 브란덴부르크 과학 협회)를 설립하고, 라이프니츠를 초대 회장으로 임명했다. 다른 아카데미와 달리 프로이센 아카데미는 국고에서 직접 자금을 지원받지 않고, 라이프니츠의 제안에 따라 브란덴부르크에서 달력 제작 및 판매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1701년, 프리드리히가 프로이센의 왕으로 즉위하여 프로이센 왕국을 건설하면서 "Königlich Preußische Sozietät der Wissenschaften"(왕립 프로이센 과학 협회)로 개칭되었다. 프로이센 아카데미는 다른 아카데미들과 달리 과학과 인문학을 모두 다룬 최초의 아카데미였다. 1710년 제정된 아카데미 정관에 따라, 아카데미는 두 개의 과학 클래스와 두 개의 인문학 클래스로 나뉘었다.
3. 프리드리히 대왕 시대의 발전
프리드리히 2세 (프리드리히 대왕)의 치세 동안 아카데미는 큰 변화를 겪었다. 1744년, 누벨 소시에테 리테레르(Nouvelle Société Littéraire)와 통합하여 쾨니히리히 아카데미 데어 비센샤프텐(Königliche Akademie der Wissenschaften, 왕립 과학 아카데미)이 되었다. 새로운 규정에 따라 미해결 과학 문제에 대한 아이디어 공모 및 금전적 보상 제공이 의무화되었다. 18세기에 천문대(1709), 해부 극장(1717), 콜레기움 메디코-키루르기쿰(1723), 식물원(1718), 실험실(1753) 등 자체 연구 시설을 확보했으나, 이후 베를린 대학교에 인수되었다.
프랑스어 사용 기관으로서, 공식 출판물도 프랑스어로 발행되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아카데미의 공식 언어를 프랑스어로 지정하고, 사변 철학을 주요 연구 주제로 삼았다. 이마누엘 칸트, 장바티스트 르 롱 달랑베르, 피에르 루이 드 모페르튀이, 에티엔 드 콩디약 등 저명한 철학자, 수학자들이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아카데미는 뉴턴주의와 라이프니츠주의 논쟁, 볼테르와 모페르튀이 간의 갈등 등 내부적인 위기를 겪기도 했다. 모페르튀이는 군주주의적 관점에서, 달랑베르는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아카데미의 역할을 바라보며 대립하기도 했다.
프리드리히 2세는 레온하르트 오일러의 후임으로 조제프루이 라그랑주를 초청했다. 이마누엘 칸트는 종교 관련 저술을 베를린에서 출판했는데, 이는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는 검열 대상이었다.
4. 19세기
1815년부터 그리스-로마 고고학 위원회, 동양 위원회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 위원회가 아카데미 주도로 설치되어 연구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들 위원회에는 주로 해당 분야의 학자들이 참여했다. 1945년 이후에는 이러한 위원회들이 대학교 학부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1830년에는 아카데미의 클래스(부문) 개편이 이루어졌다. 기존에는 자연과학 부문 2개와 인문과학 부문 2개, 총 4개의 클래스로 구성되었으나, 이때 물리학-수학 클래스와 철학-역사 클래스, 2개의 클래스로 통합되었다.
5. 20세기
1915년 11월 25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의 장 방정식을 아카데미에 발표했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독일의 지배 아래에서 아카데미는 굘라이히샬퉁(강제적 동일화)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사회 전반에 대한 전체주의적 통제를 위한 "나치화" 과정이었다. 그러나 1933년부터 유대인 직원과 회원들이 추방된 다른 기관들과 달리, 아카데미의 유대인 회원들은 1938년까지 교육부의 직접적인 요청에 의해서만 추방되었다. 1939년 6월 8일, 새로운 아카데미 규정이 발효되어 나치 지도 원칙(퓌러원리)에 따라 아카데미가 개편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주둔 소련군정청은 1946년 7월 1일 아카데미를 Deutsche Akademie der Wissenschaften zu Berlin (독일 과학 아카데미 베를린영어)으로 개편했다. 1972년에는 Akademie der Wissenschaften der DDR (동독 과학 아카데미영어)로 개칭되었다. 전성기에는 동독 전역에 걸쳐 400명의 연구원과 24,000명의 직원을 보유하기도 했다. 독일의 재통일 이후, 아카데미는 해산되었고 1992년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 주 주 의회 간의 조약에 따라 Berlin-Brandenburgische Akademie der Wissenschaften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과학 인문학 아카데미)가 설립되었다. 1993년에는 AdW 회원 60명이 사립 라이프니츠 협회를 설립했다.
6. 주요 회원
*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초대 회장 (1700년)
* 드미트리에 칸테미르, 외국인 회원 (1714년)
* 레온하르트 오일러 (1741년–1766년)
* 몽테스키외, 외국인 회원 (1746년)
* 볼테르 (1750년)
* 드니 디드로, 외국인 회원 (1751년)
* 요한 하인리히 람베르트 (1763년)
* 조제프루이 라그랑주 (1766년–1786년)
*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외국인 회원 (1769년)
* 샤를 메시에, 외국인 회원 (1769년)
* 이마누엘 칸트, 외국인 회원 (1786년)
*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정회원 (1810년)
* 헤르만 폰 헬름홀츠, 통신 회원 (1857년), 외국인 회원 (1870년), 정회원 (1871년)
* 페르디난트 게오르크 프로베니우스, 정회원 (1893년)
* 막스 플랑크, 정회원 (1894년)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정회원 (19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