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폰 팔켄베르크
1. 개요
요한 폰 팔켄베르크는 15세기 초 테오토니 기사단을 지지하며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비판한 도미니코회 수도사였다. 그는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교황 그레고리오 12세를 지지했으며, 저서 Liber de doctrina에서 폴란드 왕과 그 추종자들을 이교도로 규정하고 살해를 정당화했다. 또한 Satira와 Tres tractatuli를 저술하며 폴란드와 왕을 공격했고, 파리 대학교의 신학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팔켄베르크는 폴란드 측에 의해 이단으로 고발되었으나,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판결되지는 않았고, 교황 마르티노 5세에 의해 투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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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폴란드 감정 -
타넨베르크 작전
탄넨베르크 작전은 나치 독일이 폴란드 침공과 함께 폴란드 사회 핵심 구성원을 제거하기 위해 1939년에 실행한 비밀 작전으로, 아인자츠그룹이 폴란드 엘리트 계층을 제거하는 데 주력하여 수많은 지식인과 지도자들이 희생되었다. -
반폴란드 감정 -
게네랄플란 오스트
게네랄플란 오스트는 나치 독일의 레벤스라움 정책으로 동유럽의 슬라브족을 몰살시키고 독일인을 이주시키려던 비밀 계획이었으나, 실행되지는 못했고 나치 독일의 잔혹한 점령 정책과 홀로코스트에 영향을 미쳐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규탄받았다. -
1418년 사망 -
심종
심종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인물로, 태조 이성계의 사위가 되어 청원군에 봉해지고, 제1차 왕자의 난 때 공신에 책록되었으나, 회안군 이방간과 내통한 죄로 폐서인되어 사망했다. -
1418년 사망 -
심온
심온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태종 때 중용되어 세종 즉위 후 영의정에 올랐으나 역모 혐의로 사사된 후 문종 때 복권되었으며, 드라마에서 재조명되기도 했다. -
독일의 신학자 -
에른스트 트뢸치
에른스트 트뢸치는 1865년에 태어나 1923년에 사망한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이자 문화철학자로서, 자유주의 신학을 완성하고 종교사학적 접근을 통해 기독교의 사회적 가르침을 연구했으며,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자였다. -
독일의 신학자 -
요한네스 발만
요하네스 발만은 독일의 신학자이자 교회사가로, 경건주의와 독일 개혁 이후의 교회사 연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으며, 필립 야코프 슈페너와 경건주의의 관계, 요한 게르하르트와 게오르크 칼릭스트의 신학 사상 등을 분석하며 17세기 이후 독일의 종교와 사회 문화를 이해하는 데 기여했다.
2. 생애
팔켄베르크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여 카민 수도원에서 수련 기간을 보냈다는 것 정도이다. 그가 신학 석사였다는 사실은 그가 수년 동안 그의 수도회에서 철학과 신학을 가르쳤음을 시사한다.
많은 동료 수도사들과 그의 수도회 총장인 베르나르 드 다티스(Bernard de Datis)가 알렉산데르 5세와 요한 23세에 대한 확고한 지지자였던 것과는 달리, 팔켄베르크는 교황 그레고리오 12세의 추종자였다. 그는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베르나르를 그의 상사로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할 정도로 반대 입장을 취했다.
3. 저술 활동 및 논란
튜튼 기사단과 폴란드 국왕 요가일라, 리투아니아 대공 비타우타스 간의 분쟁에서 팔켄베르크는 기사단을 지지했다. 양측은 분쟁을 콘스탄츠 공의회에 중재를 요청했다.
팔켄베르크는 1416년 Liber de doctrina에서 폴란드를 과격하게 비난했고, 1412년 Satira에서는 폴란드인과 국왕 요가일라를 모욕했으며, 1416년 Tres tractatuli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옹호했다.
그니에즈노의 니콜라우스 대주교의 명령으로 팔켄베르크는 투옥되었다. 폴란드인들은 팔켄베르크를 이단으로 유죄 판결을 요구했지만, 그의 저서는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스캔들성 비방으로만 비난받고 이단으로 판결되지는 않았다. 도미니크회는 그에게 종신형을 선고했으나, 교황 마르티노 5세는 팔켄베르크를 로마로 데려가 수년간 가두었다. 그가 풀려났는지, 아니면 그곳에서 사망했는지는 불분명하다.
3.1. ''Liber de doctrina'' (1416)
팔켄베르크는 1416년에 파울루스 블라디미리를 반박하기 위해 Liber de doctrina를 저술했다. 이 책에서 폴란드 국왕과 그 추종자들을 우상 숭배자이자 불신자로 규정하고, 그들에 대한 반대가 고귀하고 칭찬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프란체스코회 장 프티가 옹호한 왕위 살해를 정당화하며, 폴란드 국왕과 그 측근들을 살해하는 것이 합법적이라고 결론 내렸다.
팔켄베르크는 "황제는 평화로운 불신자들조차 이교도라는 이유만으로 죽일 권리가 있다. (...) 폴란드인들은 불신자들을 옹호했기 때문에 죽어 마땅하며, 불신자들보다 더 제거되어야 한다. 그들은 주권을 박탈당하고 노예로 전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타니슬라우스 F. 벨치는 저서 파울루스 블라디미리와 국제법 및 정치에 관한 그의 교리에서 팔켄베르크를 집단 학살 정당화를 처음으로 공식화한 작가로 평가했다.
3.2. ''Satira'' (1412)
팔켄베르크는 1412년에 《Satira》를 출판하여 폴란드인과 국왕 요가일라를 공격했다. 당시 요가일라 국왕은 기독교인이었고 리투아니아도 마찬가지였다. 팔켄베르크는 요가일라 국왕을 왕이 될 자격이 없는 "미친 개"라고 폄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