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충렬서원
1. 개요
용인 충렬서원은 고려 후기 충신 정몽주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조선 선조 9년(1576)에 처음 지어졌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선조 38년(1605)에 재건되었다. 광해군 원년(1608)에 사액 서원이 되었으며,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4년에 복원되었다. 현재는 강당과 사당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서원의 형식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며, 정몽주의 유물인 『유한집』과 『단심가』 등을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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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대한민국 |
|---|---|
| 위치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118-1 |
| 유형 | 유형문화재 |
|---|---|
| 번호 | 9 |
| 지정일 | 1972년 5월 4일 |
| 시대 | 조선시대 |
| 참고 | 21,0009000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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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의 문화유산 -
처인성
처인성은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사다리꼴 토성으로, 고려시대 몽골 침입을 막아낸 격전지이자 김윤후가 몽골군을 격퇴한 처인성 전투로 유명하며,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북상을 저지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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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할미산성
용인 할미산성은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구분되며 삼국시대에서 남북국 시대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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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무성서원
정읍 무성서원은 신라 학자 최치원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어 고려 시대 태산사, 조선 시대 무성서원으로 이어졌으며, 최치원 등 여러 인물을 배향하고 성리학 교육을 중시하며, 1968년 사적으로 지정되고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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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병산서원
조선 시대 문신 류성룡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안동 병산서원은 풍악서당에서 시작하여 1614년 개칭되었고, 서원철폐령에도 보존되어 류성룡과 그의 아들이 배향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하회탈 및 병산탈 등 다수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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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
경희대학교 부설 박물관인 혜정박물관은 1991년 개관하여 동아시아 역사 및 미술 유물을 소장하며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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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시외버스정류장
신갈시외버스정류장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에 위치하며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모두 정차하는 곳으로, 용인공용버스터미널 출발 노선 대부분이 경유하며 경남여객에서 운영하고 터미널 번호는 111번이다.
2. 역사
용인 충렬서원은 고려 후기 충신이자 동방 성리학의 시조로 평가받는 포은 정몽주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선조 9년(1576)에 처음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1592)으로 소실되었다. 선조 38년(1605)에 다시 지으면서 정보와 이시직을 함께 모셨고, 광해군 원년(1608)에는 나라로부터 사액을 받아 공인된 교육 기관이자 선현 배향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고종 8년(1871)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4년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초기에는 선현 배향과 지방의 유학 교육을 담당하였으나, 18세기 이후 점차 교육 기능보다는 제향 기능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2.1. 건립과 소실
고려 후기 충신이자 동방 성리학의 시조인 포은 정몽주(1337~1392)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서원이다. 선조 9년(1576)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1592)으로 불타 없어졌다.
2.2. 재건과 사액
충렬서원은 선조 9년(1576)에 처음 세워졌으나,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졌다. 이후 선조 38년(1605)에 서원을 다시 지으면서 기존에 모시던 정몽주 외에 정보와 이시직을 함께 배향하였다. 광해군 원년(1608)에는 임금으로부터 '충렬(忠烈)'이라는 이름과 현판을 하사받는 사액을 받았다. 이로써 충렬서원은 나라의 공인을 받고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었으며, 선현 배향과 지방의 유학 교육 기능을 담당하였다.
2.3. 훼철과 복원
고종 8년(1871)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24년에 복원하였다.
3. 구조
마을 뒤쪽 야산 기슭에 남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원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사당과 학문을 강론하는 강당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인 서원과 달리 다른 부속 건물이 거의 없는 소규모 형태를 띤다.
3.1. 건축 양식
마을 뒤쪽 야산 기슭에 남서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공부하는 강당을 앞쪽에 배치하고 사당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입구의 홍살문과 내삼문·외삼문·사당이 거의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지만, 강당이 축에서 벗어나 사당과 나란히 보이는 점이 특이하다.
또한 재실이나 장경각·교직사 등 부속건물이 없이 사당과 강당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18세기 이후에 서원이 교육적 기능은 사라지고 제사 기능 중심의 시설로 바뀌어 갔음을 보여 준다. 강당도 교육공간보다는 제향 때 모임 장소로 쓰였다. 강당과 사당만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서원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이다.
4. 유물
전하는 유물로 『유한집』과 『단심가』 등을 서원에서 보존하고 있다.
5. 현대적 의의
용인 충렬서원은 강당과 사당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는 서원이 시대 변화에 따라 교육 기능보다는 제향 기능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18세기 이후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이러한 간결한 구조는 소규모 서원의 형식을 잘 나타내는 건축물로서 가치를 지닌다.
비록 고종 8년(1871) 서원철폐령으로 잠시 철거되는 시련을 겪었으나, 1924년에 복원되어 오늘날까지 정몽주를 비롯한 선현들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는 공간으로 남아있다. 이는 서원이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