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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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위무택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병졸로서 고조와 함께 거병하고 낭으로 진여를 쳤다. 이후 위위가 되어 악평후에 봉해졌으며, 고후 5년(기원전 183년)에 사망하여 시호는 간(簡)이었고, 작위는 아들 위승이 이었다. 기원전 184년부터 기원전 183년까지 위위를 역임했으며, 유택의 뒤를 이어 위위에 임명되었고, 정이 그의 뒤를 이었다.

위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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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위무택은 전한 초기의 인물로, 패 땅에서 고조 유방을 따라 거병하여 진여 토벌 등에 참여하며 공을 세웠다. 이후 관직이 위위에 이르렀고 악평후(樂平侯)에 봉해졌다.

2.1. 초기 생애와 군사 활동

병졸로서 패(沛) 땅에서 고조 유방과 함께 거병하였으며, 낭(郞)의 신분으로 진여를 공격하는 데 참여하였다. 이후 관직이 위위에 이르렀고, 악평후(樂平侯)로 봉해졌다.

고후 5년(기원전 183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간(簡)이다. 그의 작위는 아들 위승이 계승하였다.

2.2. 관직 경력

병졸로서 패(沛) 땅에서 전한 고제와 함께 거병하였고, 낭(郞)으로서 진여를 쳤다. 이후 위위가 되어 악평후(樂平侯)에 봉해졌다.

고황후 5년(기원전 183년)에 죽으니 시호를 간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위승이 이었다.

2.3. 사망과 후계

고황후 5년(기원전 183년)에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간(簡)이다. 작위는 아들 위승이 계승하였다.

3. 평가 및 기록

전한 초기의 인물이다. 고황후 통치 시기인 기원전 184년에 위위에 임명되어 기원전 183년경까지 재직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 음력 4월 병신일에는 악평후(樂平侯)에 봉해졌다. 기원전 183년에 사망하여 시호로 간후(簡侯)를 받았으며, 작위는 아들 위승(魏勝)에게 이어졌다. 위승은 공후(共侯) 시호를 받았고, 그 뒤를 위차(魏差)가 이었다.

위무택에 관한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 권19 혜경간후자연표와 반고의 《한서》 권16 고혜고후문공신표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