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B. 킨
1. 개요
윌리엄 B. 킨은 1897년 뉴욕주 버펄로에서 태어나 미국 육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으로 복무했으며, 제28보병사단 참모장, 제1 육군 참모장을 역임하며 노르망디 상륙 작전 기획에 참여했다. 한국 전쟁에서는 제25보병사단 사단장으로 북한군을 막아내고, 리퍼 작전에 참여했으나 제24보병연대 해체를 건의하여 논란이 되었다. 전쟁 이후에는 제3군단장, 제5군 사령관을 거쳐 1954년 전역 후 시카고 주택청 전무이사로 재직하며 인종 통합 문제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킨은 1981년 사망하여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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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육군 중장 -
로버트 싱크
로버트 싱크는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에 참전한 미국의 군인으로, 제506 공수보병연대장으로서 주요 작전을 지휘했으며, 그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물과 미디어 묘사가 존재한다. -
미국 육군 중장 -
레슬리 그로브스
레슬리 그로브스는 미국의 육군 중장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펜타곤 건설을 지휘하고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를 맡아 원자 폭탄 개발을 총괄했다. -
미국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
윌리엄 렌퀴스트
윌리엄 렌퀴스트는 미국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며, 보수주의 성향으로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대한 좁은 해석, 연방 정부 권한 축소 및 주 정부 권한 확대를 주장했으며, `부시 대 고어` 사건과 빌 클린턴 탄핵 재판에 관여했다. -
미국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
리처드 닉슨
리처드 닉슨은 제37대 미국 대통령으로, 외교 정책, 워터게이트 사건, 그리고 사임이라는 상반된 유산을 남겼다. -
뉴욕주 출신 -
믹 폴리
믹 폴리는 1965년생 미국의 프로레슬러, 작가, 배우, 코미디언, 사회 운동가이며, 캑터스 잭, 맨카인드, 듀드 러브 등 다양한 기믹으로 활동하며 WWE 챔피언 3회, WWE 월드 태그팀 챔피언 8회를 포함한 여러 챔피언십을 획득하고, 자서전 출간 및 사회 운동에도 참여했으며 2013년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뉴욕주 출신 -
루이스 잠페리니
루이스 잠페리니는 미국의 장거리 육상 선수이자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으로, 올림픽 국가대표 출전 후 전쟁 중 일본군 포로로 억류되었으며, 전후에는 복음주의자로 용서와 화해를 전파하고 그의 삶은 여러 작품으로 제작되었다.
2. 생애
윌리엄 B. 킨은 1897년 7월 9일 뉴욕주 버펄로에서 태어나 1918년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후 이탈리아, 벨기에, 프랑스 전선을 시찰하고 독일 점령군으로 복무했다. 1919년 말 미국으로 돌아와 조지아주 포트 베닝에서 보병 장교 과정을 수료한 후, 하와이 스콜필드 배럭스 배치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1925년 통신 장교 과정, 1939년 지휘참모대학을 졸업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제28보병사단 참모장, II 군단 참모장, 제1 미국 육군 참모장을 역임하며 오마 브래들리, 코트니 호지스 장군 휘하에서 노르망디 상륙 작전 등 주요 작전 기획에 참여했다. II 군단 재직 중에는 조지 S. 패튼 장군의 병사 뺨 때리기 사건 조사 보고서를 보관하기도 했다.
1948년 제25보병사단장이 된 킨은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부산 방어전에서 북한군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1950년 10월부터는 북진 작전에 참여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했다. 1951년 리퍼 작전에 참여하여 한강 이북으로 적군을 격퇴하는 데 기여했다. 킨은 한국에서 제24보병연대의 전투력 문제를 제기하며 부대 해체와 인종 통합을 건의했고, 이는 매슈 리지웨이 장군에 의해 받아들여져 미군 전체의 인종 통합으로 이어졌다.
1951년 III 군단 지휘관을 거쳐 1952년 제5 미국 육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중장으로 진급했다. 1954년 육군에서 퇴역한 후 시카고 주택국 전무 이사로 재직하며 주택 사업의 인종 통합 문제로 논란을 겪기도 했다. 이후 플로리다주로 이주하여 병원 홍보 이사로 근무하다 1981년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와 군 경력
윌리엄 B. 킨은 1897년 7월 9일, 뉴욕주 버펄로에서 윌리엄 벤자민 킨 주니어(William Benjamin Kean Jr.)로 태어났다. 1918년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여 보병에 복무했다.
임관 후 미국 육군사관학교(U.S.M.A.)에 생도 장교로 배속되었다. 이후 이탈리아, 벨기에, 프랑스의 전선을 시찰했으며, 독일에서 연합군의 점령을 관찰했다. 1919년 말, 미국으로 돌아와 조지아주 포트 베닝에서 보병 장교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킨은 하와이 스콜필드 배럭스 배치 등 계급과 책임이 증가하는 수많은 임무를 수행했다. 1925년에는 통신 장교 과정을, 1939년에는 지휘참모대학을 졸업했다.
2.2. 제2차 세계 대전
1943년 3월, 킨은 제28보병사단 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불과 한 달 후 그는 준장으로 진급하여 미국 II 군단 참모장으로 임명되었으며, 당시 북아프리카에서 오마 브래들리의 지휘 아래 전투를 벌였다. 1943년 말, 제1 미국 육군 참모장으로 임명되어 코트니 호지스의 지휘를 받으며, 소장으로 진급했다. 킨은 종전 때까지 이 직책을 맡았으며, 종전 후 독일 점령 기간 동안 유럽에 남았다.
II 군단 재직 중, 킨은 조지 S. 패튼 장군이 병사 뺨을 때린 사건에 연루되었다. 브래들리가 조사한 후, 보고서의 유일한 사본을 킨에게 맡겼으며, 킨은 브래들리의 허락 없이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도록 지시받았다.
제1 육군에서 근무하는 동안 킨은 D-Day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핵심 기획자 중 한 명이었다. 소련은 제1 육군이 엘베 강에서 붉은 군대와 연결되었을 때 수보로프 2급 훈장을 수여했다.
2.3. 한국 전쟁
1948년 8월, 킨은 제25보병사단의 사단장이 되었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을 부산에서 성공적으로 방어하여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았다.
1950년 10월, 제25사단은 부산을 벗어나 북한으로 진격했다. 1950년 11월, 중공군의 참전으로 유엔군은 후퇴했다. 킨의 부대는 청천강 남쪽과 오산 남쪽에서 방어하며 체계적인 철수를 지휘했다.
1951년 후반, 제25사단은 리퍼 작전에 참여하여 한강 이북으로 적군을 격퇴했다. 매슈 리지웨이 중장은 전반적인 '조화'를 위해 킨을 제25보병사단장에서 해임했지만, 제25사단은 대체로 킨의 지휘 아래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킨은 한국에서 흑인으로만 구성된 제24보병연대가 전투 중 병사들의 '도주' 경향으로 인해 비효율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제24연대 해체와 백인 부대에 1:10 비율로 병력을 충원할 것을 건의했다. 비록 개별 병사들의 능력과 용기는 인정했지만, 연대 전체의 비효율성이 한국에서 유엔의 노력을 위협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리지웨이 장군은 킨의 제24보병연대 평가를 수용했다. 그는 킨을 해임한 후, 한국을 떠나기 전에 킨에게 흑인 부대 폐지와 백인-흑인 부대 통합을 공식 제안하도록 요청했다. 킨은 요청에 응했고, 리지웨이는 이를 통해 극동 사령부 전체의 완전한 통합에 대한 미국의 승인을 얻었다.
2.4. 한국 전쟁 이후
1951년, 킨은 III 군단 지휘를 맡아 처음에는 캘리포니아주 캠프 로버츠에서, 이후 샌페드로의 포트 맥아더에서 근무했다. 그해 10월에는 5,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네바다 핵 실험장에서 열린 훈련에 참가하여 군인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핵무기 실험의 영향을 측정하는 것을 지휘했다.
1952년 7월, 킨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있는 제5 미국 육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중장으로 진급했다. 그는 1954년 육군에서 퇴역할 때까지 이 직책을 유지했다.
2.5. 전역 이후
킨은 1954년 시카고 주택국의 전무 이사로 임명되었으며, 1957년까지 이 직책을 유지했다.
시카고 주택국에서 킨은 주택 사업의 인종 통합보다 공실률 감소를 강조하여 논란이 되었다.
주택국에서 사임한 후 그는 플로리다로 이주하여 클리어워터에 있는 모튼 플랜트 병원의 홍보 이사로 고용되었다. 킨은 은퇴 후 플로리다주 벨에어와 플로리다주 윈터 파크에서 살았으며, 1981년 3월 10일 윈터 파크에서 사망했다.
3. 포상 및 훈장
킨은 육군 공로 훈장, 은성 훈장, 훈공장, 동성 훈장을 받았다.
4. 논란
윌리엄 B. 킨은 한국 전쟁과 시카고 주택청 재임 시절의 행적으로 논란이 되었다.
4.1. 제24보병연대 해체 건의
킨은 한국 전쟁 당시 자신의 휘하 부대 중 하나였던 흑인으로만 구성된 제24보병연대가 전투 중 '황급히 도망치는' 경향 때문에 초기 전투 작전에서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많은 개별 군인들이 능력과 용기를 보여주었음을 인정했지만, 연대 전체가 비효율적이라 판단하여 한국에서 유엔 전체의 노력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에 킨은 제24보병연대를 해체하고, 그 병사들을 백인 부대에 1:10 비율로 충원병으로 배치할 것을 건의했다. 매슈 리지웨이 장군은 킨의 제안을 받아들여 흑인 부대 폐지와 백인-흑인 부대 통합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