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 (정도공왕)
1. 개요
유강은 전한 시대의 제후로, 정도공왕으로 봉해졌다. 영광 3년(기원전 41년) 제양왕에 봉해진 후 산양왕, 정도왕을 거쳤으며, 음률에 밝아 원제의 총애를 받았다. 원제가 위독했을 때는 부소의와 함께 곁을 지켜 황태자 폐위 논란을 빚기도 했다. 양삭 2년(기원전 23년)에 사망하여 공(恭) 시호를 받았으며, 아들 유흔이 작위를 이었다. 유흔은 훗날 성제의 양자가 되어 애제로 즉위한 후 유강을 공황으로 추존하고 황제와 동등한 대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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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원제의 황자 -
전한 성제
전한 성제는 원제와 왕정군 사이에서 태어나 환관 세력을 약화시켰지만 외척 세력이 커져 왕망의 찬탈 요인이 되었고, 사치스러운 생활과 후사 문제, 조비연·조합덕 자매 총애 등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전한의 제12대 황제이다. -
한나라의 추존황제 -
유진 (도황고)
유진은 전한 무제의 손자이자 유거의 아들로, 무고의 화로 인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자결했으며, 아들 선제가 황위에 오른 후 황고로 추존되었다. -
기원전 23년 사망 -
장충 (전한)
장충은 전한 시대의 관리로, 소부 재직 시 승상 광형의 비리를 탄핵하는 등 강직한 면모를 보였으며, 어사대부를 지냈으나 곧 사망했다.
2. 생애
영광 3년(기원전 41년) 3월, 제양왕에 봉해졌으며, 이후 산양·정도로 봉지를 전전하였다. 이복 형 한 성제 때에 정도왕이 되었다.
유강은 다재다능하고 특히 음률에 밝아, 음악을 좋아하던 원제의 총애를 받았다. 원제가 위독해졌을 때는 부소의와 함께 곁을 지켰고, 이 때문에 왕황후와 황태자는 거의 뵙지를 못할 지경이었다. 원제는 황태자를 폐위하려 하였으나, 시중 사단이 간언하여 그만두었다.
성제 즉위 후, 유강은 원제 생전에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후하게 대접받았다. 양삭 2년(기원전 23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공(恭)이라 하였다. 작위는 아들 유흔이 이었다.
아들 유흔은 훗날 성제의 양자로 들어가 황태자가 되었고, 성제 붕어 후 황제로 즉위하였다(애제). 애제는 선제의 서손 초사왕의 아들 유경을 정도왕으로 봉하고 그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그 뒤 애제는 유강을 다시 공황(恭皇)이라 칭하여, 황제와 대등하게 종묘를 세웠다.
2.1. 원제의 총애와 후계 갈등
영광 3년(기원전 41년) 3월, 유강은 제양왕에 봉해졌다. 이후 산양, 정도(定陶)로 봉지를 옮겨 다녔다. 유강은 다재다능하고 특히 음률에 밝아 음악을 좋아하던 원제의 총애를 받았다. 원제가 위독했을 때 부소의와 함께 곁을 지켰는데, 이 때문에 왕황후와 황태자는 거의 원제를 뵙지 못할 정도였다. 원제는 황태자를 폐위하려 하였으나, 시중 사단이 간언하여 그만두었다.
2.2. 성제 즉위와 죽음
황태자가 즉위한 후(성제), 유강은 원제 생전에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후하게 대접받았다.
양삭 2년(기원전 23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공(恭)이라 하였다. 작위는 아들 유흔이 이었다.
2.3. 사후 추존
성제의 양자로 들어가 황태자가 된 유흔은 성제가 붕어한 후 황제로 즉위하였다(애제). 애제는 선제의 서손 초사왕의 아들 중 한 명인 유경을 정도왕으로 봉하고 그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그 뒤 애제는 유강을 공황(恭皇)이라 칭하여, 황제와 대등하게 종묘를 세웠다.
4. 평가
유강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원제의 총애를 받았지만, 정치적인 야망보다는 예술적인 면에 더 관심이 많았던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생애는 전한 황실의 권력 투쟁과 후계 갈등의 단면을 보여준다. 특히, 국민의힘 등 보수 진영에서는 유강이 황태자 교체 시도에 연루된 점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5. 관련 자료
반고의 《한서》 권14 제후왕표에 관련 자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