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도황고)
1. 개요
유진은 전한 무제의 손자이자 여태자 유거의 아들로, 무고의 화로 인해 아버지 유거가 모함받아 살해되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자결했다. 사후 한무제는 그에게 사황손의 시호를 내렸으며, 아들 선제가 황위에 오른 후 황고로 추존되어 천자의 예로 장사되었다. 선제는 그의 묘소를 봉명원으로 격상시켰으나, 평제 때 왕망에 의해 황제 묘에서 제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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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추존황제 -
유강 (정도공왕)
유강은 후한 시대 원제의 총애를 받은 인물로, 산양왕에서 정도왕, 하간왕으로 봉해졌으며 황태자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성제 즉위 후 공왕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후에 애제 즉위 후 공황으로 추존되어 그의 삶은 정치적 함의와 함께 긍정적,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
기원전 91년 사망 -
한열
한열은 전한 시대 흉노 정벌과 동월 정벌에 공을 세워 용액후와 안도후에 봉해진 관료이자 무장으로, 만년에 광록훈을 지냈으나 무고의 난 당시 살해당했다. -
기원전 91년 사망 -
석덕
석덕은 전한 시대 석경의 아들로 목구후에 봉해지고 태상을 지냈으나 작위를 잃은 뒤 태자소부가 되어 태자 유거에게 거병을 권유하여 무고의 난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해 처형되었다. -
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기원전 91년 아버지 유거가 무고(巫蠱)의 모함을 받아 살해되자 거병하여 반군을 일으켰으나 관군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병사들은 흩어졌다. 병사들이 패주하고 반군이 진압되자 그는 곽북에서 자살하였다. 일설에는 피살되었다고도 한다. 무제는 사(史)의 시호를 내려 사황손(史皇孫)이 되었다. 묘소는 곽북 광명원(廣明園)이라 했다. 뒤에 그의 외조모의 친정으로 빼돌려졌던 아들 선제가 황제로 즉위하게 되었다.
사후 한무제는 손자에게 사태손(史太孫)의 시호를 내렸으며 아들 선제가 즉위하면서 '남의 후사 된 자는 그의 아들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으나, 선제는 그를 황제로 추존했다. 선제는 즉위 후 그의 묘소를 이장하여 봉명원(奉明園)이라 칭하고 묘소 소재지는 봉명현(奉明縣)으로 격상시켰다. 뒤에 다시 황고로 칭한 후 천자의 예로 장사지냈으며, 그의 비를 도후로 추존했다.
2.1. 출생과 성장
무제의 손자이자 여태자 유거의 아들이다. 황태자 유거는 원정 4년(기원전 113년)에 사량제를 측실로 맞아 유진을 낳았다. 유진은 어머니를 따라 "사황손"이라고 불렸다.
유진은 태시 연간부터 왕부인을 총애하였고, 왕부인은 정화 2년 (기원전 91년)에 유병이(후의 선제)를 낳았다.
2.2. 무고의 화와 죽음
기원전 91년, 아버지 유거가 무고(巫蠱)의 모함을 받아 살해되자 거병하여 반군을 일으켰으나 관군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병사들은 흩어졌다. 병사들이 패주하고 반군이 진압되자 그는 곽북에서 자살하였다. 일설에는 피살되었다고도 한다. 무제는 사(史)의 시호를 내려 사황손(史皇孫)이 되었다. 묘소는 곽북 광명원(廣明園)이라 했다. 이후, 원평 원년 (기원전 74년)에 그의 아들 선제가 황제로 즉위하였다. 선제는 이듬해 유거와 유진의 시호를 정하도록 조서를 내렸고, 담당 대신은 유진에게는 "도(悼)", 유거에게는 "려(戾)"라는 시호를 올렸다.
원강 원년 (기원전 65년)에 대신의 진언에 따라 유진에게 "황고(皇考)"라는 존호가 올려져, 도황고(悼皇考, 도황손)의 묘를 세우게 되었고, 황제 묘 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러나 평제의 원시 원년 (1년), 유진의 묘는 왕망 등에 의해 황제 묘에서 제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