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형
1. 개요
유근형은 서울 출신의 도예가로, 일제강점기 일본인 경영 도자기 공장에서 도예 경력을 시작하여 고려청자 유약을 재현하고 기술을 계승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는 일본 벳푸시 중외산업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광복 후에는 간송미술관 등에서 청자 연구에 매진했다. 1960년 이천에 해강도자연구소를 설립하고, 1990년에는 해강도자미술관이 개관되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보유자이며, 그의 작품은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원어 이름 | 柳根瀅 |
|---|---|
| 분야 | 도예 |
| 국적 | 한국 |
|---|---|
| 직업 | 도예가 |
| 스승 | 해강 유약, 지순택 |
| 소속 | 해강도자미술관 |
|---|
| 수상 내역 | 대한민국 문화훈장 |
|---|
-
대한민국의 도예가 -
권귀옥
권귀옥은 연극배우로 데뷔하여 코미디언, 사회운동가, 도예가로 활동했으며, 1973년 《웃으면 복이와요》에 출연하여 인기를 얻고 결혼 후 미국 이주, 귀국 후 방송 활동과 사회운동, 도예 활동을 병행한다. -
대한민국의 도예가 -
이세나
이세나는 2003년 연극 배우로 데뷔하여 2007년 삼성전자 애니콜 CF 모델과 '도자기녀' UCC 동영상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대한민국의 배우이며, 드라마와 영화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고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 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 -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분류3 -
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분류3 -
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2. 생애
서울에서 태어나 보성중학교를 졸업한 유근형은 18세에 일본인이 경영하던 한양고려소(漢陽高麗燒)에 들어가 상감(象嵌) 기법을 익혔다. 일제강점기 당시, 그의 초기 작품 대부분은 일본으로 보내져 판매되었다. 진남포, 회령 등 전국 각지의 일본인 경영 도자기 공장에서 기술을 연마하며 경력을 쌓았다.
유근형은 고려청자 복원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과 교류하며 기술을 발전시켰고, 광복 이후에는 한국에서 청자 연구와 제작에 매진하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1. 일본 유학 및 활동
유근형은 보성중학교 졸업 후,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인이 경영하는 한양고려소(漢陽高麗燒)에서 상감 기법을 익혔다. 이후 진남포, 회령 등 일본인이 운영하는 전국 각지의 도자기 공장에서 기술을 연마하였다. 이 시기, 그는 일본인 형제 도예가 아사카와 노리타카와 아사카와 다쿠미와 교류하며 고려청자 유물에 대한 지식을 쌓고 복제 기술을 배웠다. 1921년에는 일본을 방문하여 연구를 심화하였다.
1928년, 일본 벳푸에서 열린 중외산업박람회에 청자 작품을 출품하여 금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일각에서는 유근형이 1920년대에 고려청자 유약을 재발견했다고 평가하지만, 이에 대한 논란이 있다. 홍익대학교 우 교수는 그 발견의 공로가 일본 사업가 토미타 기사쿠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2.2. 광복 이후 활동
광복 이후, 유근형은 간송미술관의 한국민족예술연구소 송북 가마와 태방동의 한국전통미술연구소에서 청자 연구에 매진하였다. 1960년대에는 경기도 이천에 자신의 가마를 짓고 고려청자 기술 복원에 힘썼다. 그는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수집한 많은 자료를 활용하여 1960년 이천 신둔면에 해강도자연구소를 설립했다.
1990년 5월에는 이천 수광리에 해강도자미술관이 개관되었으며, 현재는 아들 유광열 관장이 뒤를 잇고 있다. 유근형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경기도) 보유자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의 작품은 1979년 영화 고려청자에 기록되었으며, 아카데미상 최우수 단편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올랐다. 그의 작품은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http://asianart.emuseum.com/view/objects/asitem/search@/0?t:state:flow=1e90f545-1d4b-4fe8-89c9-b5a0cf977f67 1992.232])과 대영 박물관([https://www.britishmuseum.org/collection/object/A_1992-0623-1-2 1992,0623.1-2])을 포함한 공공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3. 작품 세계
유근형은 수십 년 동안 다음과 같은 다양한 도자 작품을 제작했다.
* 청자 이전 작품.
* 한국 시장을 위한 컵, 찻주전자, 그릇과 같은 일상적인 청자.
* 전시회 판매용 장식 청자 (대부분 일본에서 개최).
* 전시회 전시용 대형 청자 작품.
* 국보 복제품.
* 대형 격자무늬 꽃병과 같은 혁신적인 작품.
4. 수상 경력
5. 평가 및 유산
유근형은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국 전통 도예의 맥을 잇고 발전시킨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특히, 고려청자의 재현과 현대적 계승에 큰 업적을 남겼다.
초기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며 아사카와 노리타카와 아사카와 다쿠미 등 일본인들과 교류하며 기술을 연마했다. 아사카와 형제는 전통 한국 도자기를 옹호했으며, 유근형은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유물을 접하고 복제하는 법을 배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1928년 일본 벳푸에서 열린 중외산업박람회에 청자 작품을 출품하여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려청자 유약 재발견에 대한 공로는 일본 사업가 토미타 기사쿠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유근형은 가마 설계 및 점토 유형에 대한 실험을 통해 고려청자를 부활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 성립 이후, 유근형은 간송미술관의 한국민족예술연구소 송북 가마 등에서 일하며 청자 장르 부활에 헌신했다. 1960년대에는 경기도 이천에 자신의 가마를 짓고, 1960년 이천시 신둔면에 해강도자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경기도) 보유자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의 노력은 한국 도자 예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으며, 그의 작품은 1979년 영화 고려청자에 기록되어 아카데미상 최우수 단편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올랐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과 대영 박물관 등 공공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오늘날 한국 도예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으며,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어 칭송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