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 (패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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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보(劉輔)는 후한의 제후왕으로, 건무 15년(39년)에 우익공에 봉해진 후 중산왕을 거쳐 패왕으로 전봉되었다. 경시제의 아들 유리를 빈객으로 두었다가 유리의 부탁으로 자객을 보내 유분자의 형 유공을 살해하는 사건에 연루되어 하옥되었으나 풀려났다. 그는 법도와 경서를 좋아하여 학문적 업적을 쌓았으며, 명제에게 존경받았다. 원화 원년(84년)에 사망하여 헌(獻)의 시호를 받았으며, 아들 유정이 작위를 이었다.

유보 (패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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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유보(劉輔)는 후한 광무제곽성통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으로, 법도와 경서를 좋아하여 《경씨》·《효경》·《논어》와 도참을 잘 담론하였다. 또 오경을 논하여 패왕통론(沛王通論)이라고 이름붙였고, 유보 본인은 현왕(賢王)이라고 일컬어졌다. 명제는 유보를 존중하여 여러 차례 상을 내렸다.

2.1. 초기 생애와 봉작

건무 15년(39년)에 유보는 우익(右翊公)에 봉해졌다. 2년 후 곽태후중산태후로 격하되었을 때 중산왕으로 옮겨지고 상산을 식읍으로 받았다. 건무 20년(44년)에 왕으로 전봉되었다.

이때 제후왕들은 서울에 머무르며 서로 명예를 다투었고, 각자 빈객들을 많이 모았다. 유보는 경시제의 아들 유리를 빈객으로 두어 총애하였는데, 유리가 유분자를 아버지의 원수로 여겨 그를 위해 자객을 모아 유분자의 형 유공을 죽였다. 결국 유보는 죄를 받아 하옥되었으나 며칠 후 풀려나 봉국으로 부임하였고, 광무제는 여기에 연루된 제후왕의 빈객들을 처벌하였다. 이는 건무 28년(52년)의 일이었다.

2.2. 경시제 아들 비호와 유공 살해 사건

이때 제후왕들은 서울에 머무르며 서로 명예를 다투었고, 각자 빈객들을 많이 모았다. 유보는 경시제의 아들 유리를 빈객으로 두어 총애하였는데, 유리가 유분자를 아버지의 원수로 여기자 그를 위하여 자객을 모아 유분자의 형 유공을 죽였다. 결국 죄를 받아 하옥되었으나 며칠 후 풀려나 봉국으로 부임하였고, 광무제는 여기에 연루된 제후왕의 빈객들을 처벌하였다. 건무 28년(52년)의 일이었다.

2.3. 학문적 업적과 현왕 칭송

유보는 법도와 경서를 좋아하여 《경씨》·《효경》·《논어》와 도참을 잘 담론하였다. 또 오경을 논하여 패왕통론(沛王通論)이라고 이름붙였고, 유보 본인은 현왕(賢王)이라고 일컬어졌다. 명제는 유보를 존중하여 여러 차례 상을 내렸다. 자부심이 강하고 규칙에 엄격한 성격으로, 독서를 좋아하여 『경씨역』, 『효경』, 『논어』와 도참을 해설하는 것을 특기로 삼았다. 『오경론』을 지어 당시에는 『패왕통론』이라고 불렸다. 패국에서 신중한 태도와 절도를 지켜 시종일관했기 때문에 현왕(賢王)이라고 칭송받았다.

2.4. 사망과 후사

沛獻王중국어 유보는 법도와 경서를 좋아하여 《경씨》, 《효경》, 《논어》와 도참을 잘 논하였다. 또 오경을 논하여 '패왕통론(沛王通論)'이라 이름 붙였고, 유보 본인은 현왕(賢王)이라고 일컬어졌다. 명제는 유보를 존중하여 여러 차례 상을 내렸다.

원화 원년(84년)에 죽어 시호를 헌(獻)이라 하였고, 아들 유정이 작위를 이었다.

3. 인물 및 평가

유보(劉輔)는 자부심이 강하고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는 성격이었다. 독서를 좋아했으며, 특히 『경씨역』, 『효경』, 『논어』와 도참을 해설하는 데 능숙했다. 그가 저술한 『오경론』은 당시 '패왕통론'이라 불리며 널리 알려졌다. 패국에서는 신중한 태도와 절제된 행동으로 일관하여 현왕(賢王)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명제는 유보를 존경하고 중용하였으며, 여러 차례 상을 내렸다.

4.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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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밀어서 보기
아버지광무제
어머니미상
왕비미상
아들패희왕 유정
미상

5. 같이 보기

* 후한서
* 유무
* 유언
* 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