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 (패헌왕)
1. 개요
유보(劉輔)는 후한의 제후왕으로, 건무 15년(39년)에 우익공에 봉해진 후 중산왕을 거쳐 패왕으로 전봉되었다. 경시제의 아들 유리를 빈객으로 두었다가 유리의 부탁으로 자객을 보내 유분자의 형 유공을 살해하는 사건에 연루되어 하옥되었으나 풀려났다. 그는 법도와 경서를 좋아하여 학문적 업적을 쌓았으며, 명제에게 존경받았다. 원화 원년(84년)에 사망하여 헌(獻)의 시호를 받았으며, 아들 유정이 작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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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사망 -
유장 (제음도왕)
후한의 황족 유장은 영평 15년에 제음왕에 봉해진 후 동군과 진류군의 일부 현을 봉토로 받았으나, 원화 원년에 사망하고 후사가 없어 봉국이 폐지되었으며, 그의 재임 시절 지역 사회 영향력과 삶에 대한 재평가 논란이 있다. -
후한의 종실 -
후한 명제
후한 명제는 광무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후한의 제2대 황제로, 부패 척결, 유교 장려, 서역 경영 재개 등을 통해 후한의 안정적인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반초를 등용하여 서역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고 불교가 중국에 정식으로 전래된 시기의 황제이다. -
후한의 종실 -
유흡
유흡은 신나라 말기부터 후한 초기에 걸쳐 활동했으며, 경시제 정권 시기에는 원씨왕에 봉해지고 광무제에게 항복하여 사수왕에 봉해졌으나 별다른 공적 없이 사망하였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유보(劉輔)는 후한 광무제와 곽성통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으로, 법도와 경서를 좋아하여 《경씨역》·《효경》·《논어》와 도참을 잘 담론하였다. 또 오경을 논하여 패왕통론(沛王通論)이라고 이름붙였고, 유보 본인은 현왕(賢王)이라고 일컬어졌다. 명제는 유보를 존중하여 여러 차례 상을 내렸다.
2.1. 초기 생애와 봉작
건무 15년(39년)에 유보는 우익공(右翊公)에 봉해졌다. 2년 후 곽태후가 중산태후로 격하되었을 때 중산왕으로 옮겨지고 상산을 식읍으로 받았다. 건무 20년(44년)에 패왕으로 전봉되었다.
이때 제후왕들은 서울에 머무르며 서로 명예를 다투었고, 각자 빈객들을 많이 모았다. 유보는 경시제의 아들 유리를 빈객으로 두어 총애하였는데, 유리가 유분자를 아버지의 원수로 여겨 그를 위해 자객을 모아 유분자의 형 유공을 죽였다. 결국 유보는 죄를 받아 하옥되었으나 며칠 후 풀려나 봉국으로 부임하였고, 광무제는 여기에 연루된 제후왕의 빈객들을 처벌하였다. 이는 건무 28년(52년)의 일이었다.
2.2. 경시제 아들 비호와 유공 살해 사건
이때 제후왕들은 서울에 머무르며 서로 명예를 다투었고, 각자 빈객들을 많이 모았다. 유보는 경시제의 아들 유리를 빈객으로 두어 총애하였는데, 유리가 유분자를 아버지의 원수로 여기자 그를 위하여 자객을 모아 유분자의 형 유공을 죽였다. 결국 죄를 받아 하옥되었으나 며칠 후 풀려나 봉국으로 부임하였고, 광무제는 여기에 연루된 제후왕의 빈객들을 처벌하였다. 건무 28년(52년)의 일이었다.
2.3. 학문적 업적과 현왕 칭송
유보는 법도와 경서를 좋아하여 《경씨역》·《효경》·《논어》와 도참을 잘 담론하였다. 또 오경을 논하여 패왕통론(沛王通論)이라고 이름붙였고, 유보 본인은 현왕(賢王)이라고 일컬어졌다. 명제는 유보를 존중하여 여러 차례 상을 내렸다. 자부심이 강하고 규칙에 엄격한 성격으로, 독서를 좋아하여 『경씨역』, 『효경』, 『논어』와 도참을 해설하는 것을 특기로 삼았다. 『오경론』을 지어 당시에는 『패왕통론』이라고 불렸다. 패국에서 신중한 태도와 절도를 지켜 시종일관했기 때문에 현왕(賢王)이라고 칭송받았다.
2.4. 사망과 후사
沛獻王중국어 유보는 법도와 경서를 좋아하여 《경씨역》, 《효경》, 《논어》와 도참을 잘 논하였다. 또 오경을 논하여 '패왕통론(沛王通論)'이라 이름 붙였고, 유보 본인은 현왕(賢王)이라고 일컬어졌다. 명제는 유보를 존중하여 여러 차례 상을 내렸다.
원화 원년(84년)에 죽어 시호를 헌(獻)이라 하였고, 아들 유정이 작위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