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공 (식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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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공은 적미군에게 납치된 후 경시제에게 시중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동생 유분자를 황제로 추대하려는 적미군에 대항하여 옥에 갇히기도 했다. 그는 경시제가 죽자 그의 시신을 수습하고, 동생 유분자가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도왔다. 광무제에게 귀순한 후에는 경시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사록을 죽이고 옥에 갇혔으나 사면되었다. 결국 유공은 52년에 광무제의 아들 유보의 빈객들에게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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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유공은 적미군이 패망하여 그 화가 형제들에게 미칠 것을 우려하여, 유분자에게 제위에서 물러나는 절차를 알려주고 대사를 연습시켰다. 건무 2년(26년) 새해 첫날 연회에서 유분자를 폐할 것을 상주했으나, 번숭이 반대하여 물러났다. 유분자는 유공이 알려준 대로 제위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사람들은 유분자를 가련히 여겨 사죄하고 다시 인수를 채워 주었다.

건무 3년(27년), 광무제가 동쪽으로 달아나는 적미군을 의양(宜陽)에서 막자, 적미군은 유공을 사자로 보내 항복하였다. 이후 유공은 경시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사록을 죽이고 스스로 옥에 들어갔는데, 광무제는 유공을 용서하였다.

건무 28년(52년), 유공은 광무제의 아들 패헌왕의 빈객들에게 피살되었다. 패헌왕은 경시제의 아들 유리를 빈객으로 두어 총애하였는데, 유리가 유분자를 원수로 여기자 그를 위하여 손을 써준 것이었다. 광무제는 패헌왕을 용서하였으나, 조서를 내려 제후의 빈객 수천 명을 주살하였다.

2.1. 초기 생애와 적미군 가담

적미군이 식현을 지나갈 때 동생 유무, 유분자와 함께 납치되었다. 어려서 《상서》를 익혀 학식이 있었기 때문에, 적미군의 대장 번숭이 경시제에게 항복했을 때 시중(侍中)으로 임용되고 식후에 봉해졌다. 장안에 남았고, 유무와 유분자는 군중에 남아 목동이 되었다. 얼마 안 가 번숭이 유분자를 떠나 다시 관중으로 갔고, 정현(鄭縣)에서 유분자를 황제로 추대하니, 소식을 들은 유공은 스스로 옥에 들어갔다. 이후 적미군이 장안을 함락하였을 때 빠져나와 고릉(高陵)으로 달아난 경시제를 걸어서 찾아갔다. 경시제는 유공을 사자로 보내 적미군에게 항복하였다. 이때 경시제는 장사왕에 봉해지기로 되어있었으나, 적미군은 약속을 어기고 경시제를 죽이려 하였다. 유공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였고, 번숭 등은 결국 약속을 이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결국 경시제는 옛 부하 장앙의 사주를 받은 사록에게 목이 졸려 죽었고, 유공은 밤중에 경시제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2.2. 경시제와의 관계

적미군이 식현(현재의 타이안 시 নিষ௹현)을 지나갈 때, 유공은 동생 유무, 유분자와 함께 납치되었다. 어려서 《상서》를 익혀 학식이 있었으므로, 번숭이 경시제에게 항복했을 때 시중(侍中)으로 임용되고 식후에 봉해졌다. 이후 장안에 남았으나, 경시제가 고릉(高陵)으로 달아나자 걸어서 찾아갔다. 경시제는 유공을 사자로 보내 적미군에게 항복하게 했다.

당시 경시제는 장사왕에 봉해지기로 약속되어 있었으나, 적미군은 약속을 어기고 경시제를 죽이려 했다. 유공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자, 번숭 등은 결국 약속을 이행하였다. 그러나 경시제는 옛 부하 장앙의 사주를 받은 사록에게 목이 졸려 죽었고, 유공은 밤중에 경시제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2.3. 유분자의 즉위와 퇴위

적미군이 식현을 지나갈 때 동생 유무, 유분자와 함께 납치되었다. 어려서 《상서》를 익혀 학식이 있었기 때문에, 적미군의 대장 번숭이 경시제에게 항복했을 때 경시제에게 시중(侍中)으로 임용되고 다시 식후에 봉해져 장안에 남았다. 유무와 유분자는 군중에 남아 목동이 되었다. 얼마 안 가 번숭이 유분자를 떠나 다시 관중으로 갔고, 정현에서 유분자를 황제로 추대하니, 소식을 들은 유공은 스스로 옥에 들어갔다. 이후 적미군이 장안을 함락하였을 때 빠져나와, 고릉(高陵)으로 달아난 경시제를 걸어서 찾아갔다. 경시제는 유공을 사자로 보내 적미군에게 항복하였다. 이때 경시제는 장사왕에 봉해지기로 되어있었으나, 적미군은 약속을 어기고 경시제를 죽이려 하였다. 유공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였고, 번숭 등은 결국 약속을 이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결국 경시제는 옛 부하 장앙의 사주를 받은 사록에게 목이 졸려 죽었고, 유공은 밤중에 경시제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유공은 적미군이 장차 패망하고 그 화가 자기 형제들에게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여, 제위를 내놓는 절차를 유분자에게 알려주고 대사를 연습시켰다. 건무 2년(26년) 새해 첫날에 열린 연회에서 유분자를 폐할 것을 상주하였으나, 번숭이 완고히 반대하니 자리에서 물러났다. 유분자는 유공이 알려준 대로 자리에서 내려와 인수를 풀고는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제위를 포기하겠다는 대사를 읊었고, 사람들은 모두 유분자를 가련히 여겨 사죄하고 다시 인수를 채워 주었다.

건무 3년(27년), 광무제가 동쪽으로 달아나는 적미군을 의양(宜陽)에서 가로막았다. 적미군은 유공을 사자로 보내 항복하였다. 이후 유공은 경시제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사록을 죽이고 스스로 옥에 들어갔는데, 광무제는 유공을 용서하였다.

2.4. 광무제에게 귀순

적미군이 식현을 지나갈 때 동생 유무·유분자와 함께 납치되었다. 어려서 《상서》를 익혀 나름 학식이 있었기 때문에, 적미군의 대장 번숭이 경시제에게 항복했을 때 경시제에게 시중(侍中)으로 임용되고 다시 식후에 봉해져 장안에 남았고, 유무와 유분자는 군중에 남아 목동이 되었다. 얼마 안 가 번숭이 유분자를 떠나 다시 관중으로 갔고, 정현(鄭縣)에서 유분자를 황제로 추대하니, 소식을 들은 유공은 스스로 옥에 들어갔다. 이후 적미군이 장안을 함락하였을 때 빠져나와, 고릉(高陵)으로 달아난 경시제를 걸어서 찾아갔다. 경시제는 유공을 사자로 보내 적미군에게 항복하였다. 이때 경시제는 장사왕에 봉해지기로 되어있었으나, 적미군은 약속을 어기고 경시제를 죽이려 하였다. 유공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였고, 번숭 등은 결국 약속을 이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결국 경시제는 옛 부하 장앙의 사주를 받은 사록에게 목이 졸려 죽었고, 유공은 밤중에 경시제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유공은 적미군이 장차 패망하고 그 화가 자기 형제들에게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여, 제위를 내놓는 절차를 유분자에게 알려주고 대사를 연습시켰다. 건무 2년(26년) 새해 첫날에 열린 연회에서 유분자를 폐할 것을 상주하였으나, 번숭이 완고히 반대하니 자리에서 물러났다. 유분자는 유공이 알려준 대로 자리에서 내려와 인수를 풀고는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제위를 포기하겠다는 대사를 읊었고, 사람들은 모두 유분자를 가련히 여겨 사죄하고 다시 인수를 채워 주었다.

건무 3년(27년), 광무제가 동쪽으로 달아나는 적미군을 의양(宜陽)에서 가로막았다. 적미군은 유공을 사자로 보내 항복하였다. 이후 유공은 경시제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사록을 죽이고 스스로 옥에 들어갔는데, 광무제는 유공을 용서하였다.

2.5. 죽음

적미군이 식현을 지나갈 때 동생 유무, 유분자와 함께 납치되었다. 어려서 《상서》를 익혀 학식이 있었기 때문에, 적미군의 대장 번숭이 경시제에게 항복했을 때 시중(侍中)으로 임용되고 식후에 봉해졌다.

이후 경시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사록을 죽이고 스스로 옥에 들어갔는데, 광무제는 유공을 용서하였다.

건무 28년(52년), 광무제의 아들 패헌왕의 빈객들에게 피살되었다. 패헌왕은 경시제의 아들 유리를 빈객으로 두어 총애하였는데, 유리가 유분자를 원수로 여기자 그를 위하여 손을 써준 것이었다. 광무제는 패헌왕을 용서하였으나, 조서를 내려 제후의 빈객 수천 명을 주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