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강도역왕)
1. 개요
유비(강도역왕)는 전한 경제의 아들이자 강도왕으로, 오초칠국의 난에 참여하여 공을 세워 강도왕에 봉해졌다. 그는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으며, 동중서를 재상으로 등용하는 등 학문에도 관심을 가졌다. 27년간 재위하다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 유건이 뒤를 이었으나 유건이 반역에 연루되어 자살하면서 강도국은 폐지되었다. 현재 중국 장쑤성 쉬이 현에 무덤이 있으며, 1만 점이 넘는 유물이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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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7년 사망 -
군신선우
군신선우는 흉노의 선우로 재위 초기 전한과 화친했으나 마읍 전투 이후 양국 관계가 악화되었고, 사후 동생인 이지사선우가 뒤를 이었다. -
기원전 127년 사망 -
한안국
전한 중기의 관료 한안국은 《한비자》를 익혀 양효왕을 섬기고 오초칠국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웠으나, 뇌물을 통해 고위 관직에 오르는 등 부패한 모습을 보였지만 인재 천거 능력은 인정받았으며 흉노와의 화친을 주장하다 흉노 정벌 실패 후 병사했다. -
전한 경제의 황자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 경제의 황자 -
유승 (중산정왕)
유승은 경제의 아들로 중산국의 초대 왕이며, 오초칠국의 난 이후 제후왕으로 봉해졌고, 영토 삭감 정책에 협조하는 한편 제후왕 탄압 중지를 요청하기도 했으며, 주색을 즐기고 많은 자녀를 두었으며, 그의 묘에서 금루옥의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촉한의 유비가 그의 후손이라고 전해진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2. 생애
경제 전2년(기원전 155년), 여남왕으로 봉해졌다. 경제 전3년(기원전 154년), 오초칠국의 난이 발발하자, 직접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를 공격하여 큰 공을 세웠고, 이 공으로 강도왕에 봉해지고 천자의 기를 하사받았다. 원광 연간(기원전 134년 ~ 기원전 129년)에 흉노의 침입에 맞서 싸우고자 무제에게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했다. 재위 27년 만에 사망하였고, '역(易)'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의 묘소는 현재 장쑤성 쉬이 현 대운산광릉왕묘 유적에 위치해 있다.
사마천의 기록에 따르면, 유비는 많은 궁궐과 탑을 건설하는 등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으며, 뛰어난 신체 능력을 중시하여 각지의 강한 자들을 궁정으로 불러들였다고 한다.
2.1. 오초칠국의 난 참전
오초칠국의 난 당시, 유비는 15세의 나이로 황제에게 오나라를 공격하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경제는 그에게 장군인을 주어 오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반란이 진압된 후, 경제는 옛 오나라 영토 일부에 강도국을 세우고 유비를 왕으로 임명했다. 오나라의 수도였던 광릉(현재의 장쑤성 양저우)이 강도국의 수도가 되었다. 또한 유비는 반란 진압에 대한 공로로 천자의 기치를 받았다.
3. 사망과 이후
劉非중국어는 기원전 128년 1월경에 강도왕으로 26년간 재위한 후 사망했다. 시호는 '역(易)'으로, "변화하려 하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의 아들인 태자 유건이 왕위를 이었다. 유건은 부패한 생활을 하였는데, 아버지의 무덤 위에서 열 명의 여자들과 난교를 벌이기도 했다. 또한 아버지의 총애를 받던 후궁인 노부인을 자신의 첩으로 삼았다.
기원전 121년, 유건은 회남왕 유안, 형산왕 유자의 반역 음모에 연루되었다. 음모가 발각된 후, 세 사람은 모두 자살했고, 그들의 왕국은 폐지되었다. 강도는 황제의 직속 통치를 받게 되었고, 광릉군으로 재편되었다.
4. 무덤과 유물
유비의 무덤은 현재 중국 장쑤성 쉬이 현 대운산에 위치하고 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난징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진행했다. 이 유적은 세 개의 주요 무덤, 열한 개의 부속 무덤, 두 개의 말과 수레 구덩이, 두 개의 무기 구덩이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래 각 변의 길이가 490m인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도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만 점이 넘는 유물이 발굴되었다. 금, 청동 그릇, 무기, 옥으로 된 말뚝이 달린 쟁, 다양한 형태의 등, 강도국의 이름이 새겨진 은제 대야, 음식을 갖춘 부엌 등이 발견되었다. 반량전 동전 10만 개 이상, 수십 대의 모형 수레, 실물 크기 수레 몇 대도 발견되었다.
유비의 관은 손상되었지만, 금루옥의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인접한 M2 묘에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온전하게 보존된 옥관이 발견되었다. 부속 묘 중 하나에서는 '노(淖)'라는 글자가 새겨진 물건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유비의 후궁이었던 노 부인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5. 가계
| 관계 | 이름 | 비고 |
|---|---|---|
| 아버지 | 전한 경제 | 전한의 황제 |
| 어머니 | 척부인 | 경제의 후궁, 노공왕 유여, 교서왕 유단의 어머니 |
| 형제 | 유철 | 전한의 황제 |
| 노공왕 유여 | ||
| 교서왕 유단 | ||
| 아들 | 강도왕 유건 | |
| 단양애후(丹陽哀侯) 유감(劉敢) | 원삭 원년 12월 갑진일에 봉해짐. | |
| 우이후(盱台侯) 유몽지(劉蒙之) | 원삭 원년 12월 갑진일에 봉해짐. 혹 유상지(劉象之) | |
| 광세왕 유궁 | 우이후 유몽지(혹은 유상지)의 아들 | |
| 호숙경후 유서행 | 혹 유서(劉胥), 원삭 원년 정월 정묘일에 봉해짐. | |
| 말릉종후(秣陵終侯) 유전(劉纏) | 혹 유연(劉漣), 원삭 원년 정월 정묘일에 봉해짐. | |
| 회릉후(淮陵侯) 유정국(劉定國) | 원삭 원년 정월 정묘일에 봉해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