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 (조왕)
1. 개요
유수(劉遂)는 전한 시대의 조왕으로, 조유왕 유우의 아들이다. 고황후 사후 조나라 왕이 되었으나, 경제 시대에 상산군을 삭감당한 것에 불만을 품고 오초칠국의 난에 가담했다.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당하여 자살했고, 조나라는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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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54년 사망 -
조조 (전한)
조조는 전한 시대에 활동하며 흉노 대책 마련, 중농억상 정책 주장, 삭번 정책 주도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으나 오초칠국의 난으로 처형당한 관료였다. -
기원전 154년 사망 -
유비 (오왕)
유비는 전한 고조 유방의 형 유희의 아들이자 영포 진압에 공을 세워 오왕에 봉해진 황족 제후왕으로, 구리와 소금 생산으로 부를 축적하고 세력을 키웠으나 오초칠국의 난을 일으켜 진압당하고 사망했다. -
전한 사람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 사람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자살한 왕족 -
유립
유립은 전한 시대의 제후로, 양왕 유정의 뒤를 이어 양왕이 되었으나, 여러 범죄를 저지르고 봉국을 빼앗긴 뒤 자살했다. -
자살한 왕족 -
알리 레자 팔라비
알리 레자 팔라비는 팔라비 왕조의 왕자로서 이란 혁명 이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학업을 이어갔으며, 하버드 대학교에서 고대 이란학 박사 과정을 밟던 중 2011년 보스턴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 생애
유수(劉遂)는 조유왕 유우의 아들이다. 아버지 유우는 태황태후 여씨에게 감금되어 굶어 죽었고, 조나라 왕위는 공왕을 거쳐 여씨 일족인 여록에게 넘어갔다. 고황후 8년(기원전 180년) 고황후 사후 여씨 일족이 몰락하고 문제가 즉위하면서 여록을 대신해 조왕이 되었다.
경제 즉위 후, 조정에서 조조, 원앙 등을 중심으로 제후왕들의 봉국을 깎아내는 정책을 추진하자 이에 불만을 품었다. 경제 3년(기원전 154년), 상산군을 삭감당하자 오왕 유비가 봉토 삭감에 반발하여 일으킨 오초칠국의 난에 가담하려 했다. 상 건덕(建德), 내사 왕한(王悍)이 반대하자 이들을 불태워 죽이고 거병하여 흉노와 연계하고 오·초와 함께 진격하려 했다.
조정은 곡주후 역기를 보내 조나라를 공격했고, 유수는 한단성에 포위되어 7개월간 항전했다. 흉노는 조왕이 포위되고 초와 오가 격파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나라와 연합하여 한나라 변경을 공격하려던 계획을 중단했다. 역기가 성을 함락하지 못하는 사이, 제나라를 구원하고 온 난포가 한단으로 와 수공으로 성을 함락시켰다. 결국 유수는 자살했고, 조나라는 폐지되어 한나라의 군으로 편입되었다.
2.1. 초기 생애
조유왕 유우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유우는 태황태후 여씨에게 감금되어 굶어 죽었고, 조나라 왕 자리도 공왕을 거쳐 여씨 일족인 여록에게 넘어갔다. 고황후 8년(기원전 180년), 고황후가 죽고 여씨 일족이 몰락한 후 문제가 황제가 되면서, 여록을 대신해 조나라 왕이 되었다.
2.2. 조왕 즉위
조유왕 유우의 아들로, 아버지는 태황태후 여씨에게 감금되어 굶어 죽었고, 조나라 왕 자리도 공왕을 거쳐 여씨 일족인 여록에게 넘어갔다. 고황후 8년(기원전 180년)에 고황후가 죽고 여씨 일족이 몰락한 후, 문제가 황제가 되면서 여록을 대신해 조나라 왕이 되었다.
2.3. 오초칠국의 난 가담
경제 즉위 후, 조조, 원앙 등을 중심으로 한 조정의 제후왕 봉국 삭감 정책에 불만을 품었다. 경제 3년 (기원전 154년), 상산군이 삭감되자 이에 반발하여 오왕 유비가 일으킨 반란(오초칠국의 난)에 가담하고자 했다. 상 건덕(建德), 내사 왕한(王悍)이 반대하자 둘을 살해하고 거병해 흉노와 연계하며 오나라와 초나라와 함께 진격하고자 했다.
2.4. 최후
경제 3년(기원전 154년), 조왕은 조정에서 제후왕들의 봉국을 깎아내는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마침 오왕 유비가 봉토 삭감에 반발하여 일으킨 반란(오초칠국의 난)에 함께 모의하고자 했다. 상 건덕(建德), 내사 왕한(王悍)이 반대하자 둘을 불태워 죽이고 거병해 흉노와 연계하며 오나라와 초나라와 함께 진격하고자 했다.
조정에서는 곡주후 역기를 보내 조나라를 공격했고, 조왕은 한단에서 포위되어 일곱 달을 항전했다. 흉노는 조왕이 포위되었고 초나라와 오나라가 격파당했다는 말을 듣자 조나라와 연합해 한나라 변경으로 쳐들어가려던 계획을 중단했다. 역기가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는데, 제나라를 구원하러 간 난포가 임무를 마치고 한단으로 와 수공으로 성을 함몰시켰다. 조왕은 자살했고, 조나라는 폐해져 한나라의 군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