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 (조왕)
1. 개요
유수(劉遂)는 전한 시대의 조왕으로, 조유왕 유우의 아들이다. 고황후 사후 조나라 왕이 되었으나, 경제 시대에 상산군을 삭감당한 것에 불만을 품고 오초칠국의 난에 가담했다.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당하여 자살했고, 조나라는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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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54년 사망 -
조조 (전한)
조조는 전한 시대에 활동하며 흉노 대책 마련, 중농억상 정책 주장, 삭번 정책 주도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으나 오초칠국의 난으로 처형당한 관료였다. -
기원전 154년 사망 -
유비 (오왕)
유비는 전한 고조 유방의 형 유희의 아들이자 영포 진압에 공을 세워 오왕에 봉해진 황족 제후왕으로, 구리와 소금 생산으로 부를 축적하고 세력을 키웠으나 오초칠국의 난을 일으켜 진압당하고 사망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유수(劉遂)는 조유왕 유우의 아들이다. 아버지 유우는 태황태후 여씨에게 감금되어 굶어 죽었고, 조나라 왕위는 공왕을 거쳐 여씨 일족인 여록에게 넘어갔다. 고황후 8년(기원전 180년) 고황후 사후 여씨 일족이 몰락하고 문제가 즉위하면서 여록을 대신해 조왕이 되었다.
경제 즉위 후, 조정에서 조조, 원앙 등을 중심으로 제후왕들의 봉국을 깎아내는 정책을 추진하자 이에 불만을 품었다. 경제 3년(기원전 154년), 상산군을 삭감당하자 오왕 유비가 봉토 삭감에 반발하여 일으킨 오초칠국의 난에 가담하려 했다. 상 건덕(建德), 내사 왕한(王悍)이 반대하자 이들을 불태워 죽이고 거병하여 흉노와 연계하고 오·초와 함께 진격하려 했다.
조정은 곡주후 역기를 보내 조나라를 공격했고, 유수는 한단성에 포위되어 7개월간 항전했다. 흉노는 조왕이 포위되고 초와 오가 격파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나라와 연합하여 한나라 변경을 공격하려던 계획을 중단했다. 역기가 성을 함락하지 못하는 사이, 제나라를 구원하고 온 난포가 한단으로 와 수공으로 성을 함락시켰다. 결국 유수는 자살했고, 조나라는 폐지되어 한나라의 군으로 편입되었다.
2.1. 초기 생애
조유왕 유우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유우는 태황태후 여씨에게 감금되어 굶어 죽었고, 조나라 왕 자리도 공왕을 거쳐 여씨 일족인 여록에게 넘어갔다. 고황후 8년(기원전 180년), 고황후가 죽고 여씨 일족이 몰락한 후 문제가 황제가 되면서, 여록을 대신해 조나라 왕이 되었다.
2.2. 조왕 즉위
조유왕 유우의 아들로, 아버지는 태황태후 여씨에게 감금되어 굶어 죽었고, 조나라 왕 자리도 공왕을 거쳐 여씨 일족인 여록에게 넘어갔다. 고황후 8년(기원전 180년)에 고황후가 죽고 여씨 일족이 몰락한 후, 문제가 황제가 되면서 여록을 대신해 조나라 왕이 되었다.
2.3. 오초칠국의 난 가담
경제 즉위 후, 조조, 원앙 등을 중심으로 한 조정의 제후왕 봉국 삭감 정책에 불만을 품었다. 경제 3년 (기원전 154년), 상산군이 삭감되자 이에 반발하여 오왕 유비가 일으킨 반란(오초칠국의 난)에 가담하고자 했다. 상 건덕(建德), 내사 왕한(王悍)이 반대하자 둘을 살해하고 거병해 흉노와 연계하며 오나라와 초나라와 함께 진격하고자 했다.
2.4. 최후
경제 3년(기원전 154년), 조왕은 조정에서 제후왕들의 봉국을 깎아내는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마침 오왕 유비가 봉토 삭감에 반발하여 일으킨 반란(오초칠국의 난)에 함께 모의하고자 했다. 상 건덕(建德), 내사 왕한(王悍)이 반대하자 둘을 불태워 죽이고 거병해 흉노와 연계하며 오나라와 초나라와 함께 진격하고자 했다.
조정에서는 곡주후 역기를 보내 조나라를 공격했고, 조왕은 한단에서 포위되어 일곱 달을 항전했다. 흉노는 조왕이 포위되었고 초나라와 오나라가 격파당했다는 말을 듣자 조나라와 연합해 한나라 변경으로 쳐들어가려던 계획을 중단했다. 역기가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는데, 제나라를 구원하러 간 난포가 임무를 마치고 한단으로 와 수공으로 성을 함몰시켰다. 조왕은 자살했고, 조나라는 폐해져 한나라의 군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