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포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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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난포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팽월과 친분을 맺고 연나라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장도의 부하가 되어 연나라 장수가 되었다. 장도가 반란을 일으키자 포로가 되었으나, 팽월의 도움으로 대부가 되었다. 팽월이 모반 혐의로 처형당하자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변호하다가 고제의 신임을 얻어 도위가 되었고, 문제 때 연나라 재상이 되었다. 흉노를 격퇴하고 오초칠국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유후에 봉해졌으며, 연나라 재상을 다시 지내다 기원전 145년에 사망했다. 사후 제나라와 연나라 사람들은 난공사를 세워 그를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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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난포는 팽월과 깊은 인연으로 맺어져 함께 고난을 겪었고, 훗날 전한 건국에 기여한 인물이다. 팽월이 억울하게 죽자 목숨을 걸고 그의 억울함을 호소하여 전한 고제의 마음을 돌리기도 했다.

전한 문제 시절 연나라 재상이 되어 은혜를 갚고 원한을 갚는 강직한 모습을 보였다. 기원전 166년, 흉노의 침입에 맞서 대장군 장상여 휘하에서 장군으로 활약하여 흉노를 격퇴했다.

2.1. 팽월과의 인연과 초기 생애

팽월이 아직 재야에 있을 무렵에 팽월과 친교를 맺었고, 곤궁해서 함께 제나라에서 술집 일을 했다. 몇 년 후 팽월과 헤어지고, 유괴되어 연나라에 팔려가 노예가 되었다. 연나라에서 주인의 원수를 갚아 주어 연나라 장수인 장도의 도위가 되었으며, 기원전 206년에 장도가 연나라 왕이 되자 장수가 되었다.

기원전 202년, 장도가 전한 고제를 한왕에서 황제로 추대했으나 얼마 못 가 반란을 일으켰고, 한나라는 연나라를 격파해 난포는 포로가 되었다. 당시 양나라 왕이던 팽월이 이를 듣고 상주해 난포를 속량하여 자기 나라의 대부로 삼았다.

2.2. 팽월의 죽음과 의리

난포는 팽월이 아직 재야에 있을 무렵에 팽월과 친교를 맺었고, 곤궁해서 함께 제나라에서 술집 일을 했다. 몇 년 후 팽월과 헤어지고, 유괴되어 연나라에 팔려가 노예가 되었다. 연나라에서 주인의 원수를 갚아주었고, 연나라의 장수인 장도의 도위가 되었으며, 기원전 206년에 장도가 연나라 왕이 되자 장수가 되었다.

제나라로 사신 갔다가 돌아오던 도중, 팽월이 모반죄를 뒤집어쓰고 서울로 압송되어 삼족이 멸해졌으며 머리가 낙양에 내걸렸다. 그리고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곧 사로잡게 했다. 난포는 팽월의 머리 앞에 사신의 경과를 보고하고 곡했다. 관리에게 체포되었고, 전한 고제는 난포를 삶으려 했다. 난포는 삶기면서 고제에게 한 마디를 청했고, 팽월이 초한전쟁 당시 형양에서 곤궁에 처한 고제를 도와 항우가 서진하지 못하게 공적을 세웠으며, 또 해하 전투에도 참전했으니 팽월이 없었으면 항씨(項氏)는 망하지 않았을 것이고, 양나라라는 봉국을 받았으니 세세토록 전하고 싶어했을 것이라 하여 팽월을 변호하고, 모반의 조짐이 없었는데도 의심만 가지고 주살했으니 공신들이 스스로 두려워할 것이라고 했다(이는 영포·노관의 반란으로 실현되었다). 그러고는 팽월이 죽었으니 자기도 죽겠다며 삶기려 하자, 고제가 풀어주어 도위로 삼았다.

2.3. 전한의 충신으로 활약

팽월이 아직 재야에 있을 때 팽월과 친교를 맺었고, 함께 제나라에서 술집 일을 했다. 몇 년 후 팽월과 헤어지고, 유괴되어 연나라에 팔려가 노예가 되었다. 연나라에서 주인의 원수를 갚아주었고, 연나라의 장수인 장도의 도위가 되었으며, 기원전 206년에 장도가 연나라 왕이 되자 장수가 되었다.

기원전 202년, 장도가 전한 고제를 한왕에서 황제로 추대했으나 얼마 못 가 반란을 일으켰고, 한나라는 연나라를 격파해 난포는 포로가 되었다. 당시 양나라 왕이던 팽월이 이를 듣고 상주해 난포를 속하여 자기 나라의 대부로 삼았다.

제나라로 사신 갔다가 돌아오던 도중, 팽월이 모반죄를 뒤집어쓰고 서울로 압송되어 삼족이 멸해졌으며 머리가 낙양에 내걸렸다. 그리고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곧 사로잡게 했다. 난포는 팽월의 머리 앞에 사신의 경과를 보고하고 곡했다. 관리에게 체포되었고, 고제는 난포를 삶으려 했다. 난포는 삶기러 가면서 고제에게 한 마디를 청했고, 팽월이 초한전쟁 당시 형양에서 곤궁에 처한 고제를 도와 항우가 서진하지 못하게 공적을 세웠으며, 또 해하 전투에도 참전했으니 팽월이 없었으면 항씨(項氏)는 망하지 않았을 것이고, 양나라라는 봉국을 받았으니 세세토록 전하고 싶어했을 것이라 하여 팽월을 변호하고, 모반의 조짐이 없었는데도 의심만 가지고 주살했으니 공신들이 스스로 두려워할 것이라고 했다(이는 영포·노관의 반란으로 실현되었다). 그러고는 팽월이 죽었으니 자기도 죽겠다며 삶기려 하자, 고제가 풀어주어 도위로 삼았다.

2.4. 오초칠국의 난 진압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나자 제나라 방면의 반란을 막기 위해 출전했는데, 이곳에서는 제효왕 유장려가 반란 가담 의사를 철회하여 교서유앙, 교동유웅거, 치천유현 등이 연합해 제나라의 서울 임치를 석 달 간 포위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난포가 평양후 조기와 함께 제나라에 도착하자, 교서·교동·치천 세 나라 군대는 흩어져 각 나라로 돌아갔다. 제효왕이 반란군과 내통하려 했다는 말을 듣고 제나라를 공격하려 해, 제효왕은 자살했다. 교서왕은 자살했고 교동왕·치천왕·제남유벽광도 모두 복주돼 교서·교동·치천·제남·제나라는 모두 평정됐다.

조나라유수의 반란을 진압하러 간 역기가 일곱 달 동안 한단을 포위했으나 함락하지 못하자, 제나라에서 조나라로 와서 수공으로 한단성을 무너뜨려 조나라의 반란도 평정했다. 이러한 공적이 있어 경제 6년(기원전 151년)에 (兪侯)에 봉해졌고, 다시 연나라 재상이 되었다.

2.5. 죽음과 후세의 평가

난포는 경제 중5년(기원전 145년)에 죽었고, 사후 제나라와 연나라 사람들이 사당을 세우고 난공사(欒公社)라고 불렀다. 작위는 아들 난분이 이었다.

난포는 "곤궁할 때 몸을 욕되게 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부귀한 신분이 되었을 때 마음을 풀지 못하는 것은 현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과거에 은혜가 있었던 자에게는 후하게 보답하고, 원한이 있었던 자는 법에 따라 처벌했다.

무제 치세기에 난분은 태상이 되었으나, 제사 때 희생이 규정에 따르지 않아 죄를 받아 봉토를 빼앗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