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의성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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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언(의성강후)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의성후에 봉해졌다. 한 무제가 그의 아들들에게 내린 작위 중 하나였으며, 원정 원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강이라 하였다. 작위는 아들 유복이 계승했다.

유언 (의성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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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원삭 2년(기원전 127년), 유언은 의성후에 봉해졌다. 원정 원년(기원전 116년)에 사망하여 강(康)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작위는 아들 유복이 이었다.

2.1. 의성후 책봉

원삭 2년(기원전 127년), 유언은 의성후(宜成侯)에 봉해졌다.

2.2. 죽음과 시호

원정 원년(기원전 116년)에 죽으니 시호를 강(康)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유복이 이었다.

2.3. 작위 계승

원정 원년(기원전 116년)에 유언은 죽었고, 시호를 강(康)이라 하였다. 그의 작위는 아들 유복이 이었다.

3. 출전

劉偃중국어전한의 제후왕으로, 강후이다. 아버지는 치천의왕이다.

사마천의 《사기》 권21 건원이래왕자후자연표, 반고의 《한서》 권15상 왕자후표 上에 의하면 의성강후 劉偃중국어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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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내용
사기》 권21 건원이래왕자후자연표강후 劉偃중국어은 원삭 6년(기원전 123년) 5월 을사일에 후(侯)로 봉해졌다. 11년 후, 태시 3년(기원전 97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강(康)이라 하였다.
《한서》 권15상 왕자후표 上강후 劉偃중국어은 원삭 6년(기원전 123년) 5월 을사일에 후(侯)로 봉해졌다. 11년 후, 태시 3년(기원전 97년)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