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
1. 개요
유제는 광천혜왕의 아들로, 기원전 137년 8월에 광천왕의 자리를 계승했다. 신하와의 불화로 인해 무고를 당하고, 흉노 정벌을 요청했으나 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아들로는 광천대왕 유문, 광천왕 유거 등이 있으며, 여러 아들들이 후로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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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의 제후왕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의 제후왕 -
유굉 (광릉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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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1. 신하와의 불화와 무고
총애하던 신하 승거(乘距)가 죄를 짓자 그를 처벌하려 했으나, 승거는 도주하여 무제에게 유제가 동복 자매와 간통한다고 무고하였다. 유제는 한나라 조정의 신하들과 황제의 총신 소충(所忠) 등을 고발하고, 중위 채팽조가 광천왕족 유명(劉明)을 잡아 가뒀다고 주장했다.
2.2. 흉노 정벌 요청과 죽음
유제는 총애하는 신하 승거(乘距)가 죄를 짓자 그를 죽이려 했으나, 승거가 달아나자 그의 종족들을 잡아 가두었다. 승거는 이에 앙심을 품고 무제에게 유제가 동복 자매와 간통한다고 모함하였다. 유제는 또한 한나라 조정의 신하들과 황제의 총애를 받는 신하 소충(所忠) 등을 고발하고, 중위 채팽조가 광천왕의 왕족 유명(劉明)을 잡아 가두었다고 주장했다.
조사 결과 유제의 주장은 무고로 밝혀졌고, 유제는 흉노 정벌에 참전하기를 청하여 허락받았으나, 병들어 죽었다. 한나라 조정은 광천국을 폐지했다. 유제는 광천유왕 45년(기원전 92년)에 사망했다.
3. 가계
劉齊중국어는 광천혜왕 유월의 아들이다. 劉齊중국어의 아들로는 광천대왕 유문, 광천왕 유거 외에 다음 인물들이 있다.
* 감정후(甘井侯) 유광(혹은 유원)
* 양제후(襄隄侯) 유성(혹은 양릉후(襄陵侯))
* 신시강후 유길
* 동양애후 유관
* 악신경후 유강
* 창성절후 유원
* 역향강후 유필승
* 무도절후 유조
* 도양후 유량
유성의 아들은 광덕정왕 유유(혹은 광덕왕 유륜)이다.
3.1. 봉작 시기
| 봉작명 | 봉작 시기 |
|---|---|
| 감정후(甘井侯) | 원수 원년(기원전 122년) 10월 을유일 (사기) / 원정 원년(기원전 116년) 7월 을유일 (한서) |
| 양제후(襄隄侯) | 원수 원년(기원전 122년) 10월 을유일 (사기) / 원정 원년(기원전 116년) 7월 신묘일 (한서) |
| 신시강후(新市康侯) | 원봉 5년(기원전 76년) 11월 경자일 |
| 동양애후(東陽愛侯) | 본시 3년(기원전 71년) 4월 임신일 |
| 악신경후(樂信頃侯)와 창성절후(昌城節侯) | 신작 3년(기원전 59년) 4월 무술일 |
| 역향강후(歷鄕康侯) | 신작 4년(기원전 58년) 7월 임자일 |
| 무도절후(武陶節侯) | 오봉 원년(기원전 57년) 7월 임오일 |
| 도양후(都陽侯) | 초원 원년(기원전 48년) 3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