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 (산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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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치(산주후)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원삭 4년(기원전 125년) 산주후에 봉해졌다. 원정 5년(기원전 112년) 주금을 법도에 맞지 않게 사용하여 작위를 박탈당했으며, 이듬해 민월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장성이 대농령과 함께 장군으로 임명되었으나 공격하지 못하고 물러나 죄를 받아 주살되었다.

유치 (산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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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원삭 4년(원삭 4년), 유치는 산주(山州侯)에 봉해졌다. 그러나 원정 5년(원정 5년), 주금을 법도에 맞지 않게 한 죄로 작위를 빼앗겼다.

이후 민월(閩越)의 여선(餘善)이 반란을 일으키자, 유치는 대농령 장성과 함께 토벌에 나섰으나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결국 주살되었다.

2.1. 제후 시절

원삭 4년(원삭 4년), 유치는 산주(山州侯)에 봉해졌다.

원정 5년(원정 5년), 주금을 법도에 맞지 않게 한 죄로 작위를 빼앗겼다.

2.2. 작위 박탈과 죽음

원정 5년(기원전 112년), 주금을 법도에 맞지 않게 한 죄로 유치는 작위를 빼앗겼다.

이듬해 가을, 민월(閩越)의 여선(餘善)이 군사를 일으켜 장군 추력(騶力) 등을 탄한장군(呑漢將軍)이라 부르고 백사(白沙)·무림(武林)·매령(梅嶺)으로 쳐들어가게 하여 그곳에 주둔한 전한교위(校尉) 셋을 죽였다. 유치는 대농령 장성과 함께 장군이 되어 토벌을 맡았으나, 둘은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오히려 안전한 곳으로 물러나니 결국 둘 다 죄를 받아 주살되었다.

3. 출전

* 사마천, 《사기
권21 건원이래왕자후자연표
권114 동월열전
* 반고, 《한서》
권15상 왕자후표 上
권95 서남이양월조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