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 (조선)
1. 개요
유희경은 조선 시대의 인물로, 효성이 지극하고 예학에 밝았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했다. 원래 노비 신분이었으나, 효행과 학문적 성과로 명성을 얻었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 폐비를 반대하고, 인조반정 이후 가선대부, 가의대부 품계를 받았다. 조광조를 흠모하여 도봉서원 건립에 기여했으며, 문집으로 《촌은집》이 전한다. 아들 유일민은 영국원종공신이 되었으며, 사후 자헌대부 한성판윤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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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5년 출생 -
오쿠보 나가야스
오쿠보 나가야스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다케다 가신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기며 행정 능력을 인정받아 막부 운영에 기여했으나, 말년에 부정 축재 의혹으로 실각하고 가문이 몰락했다. -
1545년 출생 -
야마우치 가즈토요
야마우치 가즈토요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무장으로,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기며 도사국을 얻어 다이묘가 되었고, 고치성을 축조하고 가다랑어 타다키의 유래를 만들었으며 20만 석의 영주가 되었으나 자식 없이 사망했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전하여 선조로부터 포상과 교지를 받았다. 당시 사신 왕래로 호조의 비용이 고갈되자, 유희경이 계책을 내놓아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를 받았다.
광해군 때 이이첨이 인목대비를 서인(庶人)으로 강등시키려 하자, 유희경은 상소(上疏)를 올리라는 협박을 거절하고 절의를 지켰다. 인조 즉위 후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품계가 올랐고, 80세 때 가의대부(嘉義大夫)를 제수받았다.
평소 조광조를 흠모했던 유희경은 남언경이 도봉서원을 창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실질적으로 서원을 운영하였다. 사람들은 유희경이 도봉의 산수를 사랑하여 노년을 마칠 계획을 마련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유희경은 죽은 뒤 도봉서원 아래에 부인과 함께 안장되었다.
아들 유일민이 영국원종공신이 되면서 사후 자헌대부 한성판윤에 추증되었다.
2.1. 출신과 효행
할아버지는 유도치(劉道致)이고, 아버지는 유업동(劉業仝)이다. 허균의 《성수시화》를 보면 그가 원래 노비 신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려서부터 효자로 이름이 났다. 13세에 부친상을 당했는데, 어린 나이로 홀로 흙을 날라 장사 지내고 묘를 지켰다. 마침 이 곳을 지나가던 남언경이 유희경의 효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가상히 여겨 피륙을 보내주었다. 남언경은 서경덕의 문인이었다. 이 인연으로 유희경은 남언경에게 《문공가례》(文公家禮)를 배우게 되었다. 이어 《의례경전》 등 선유들의 저서들을 두루 읽어 예학에 밝은 것으로 이름이 났다. 국상이나 사대부가에서 상을 당하면 으레 유희경을 불렀는데, 당시 “양예수가 뒷문으로 나가면, 유희경이 앞문으로 들어온다”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2.2. 임진왜란과 의병 활동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전하여 선조로부터 포상과 교지를 받았다. 당시 사신들의 잦은 왕래로 호조의 비용이 고갈되자, 유희경이 계책을 내놓아 그 공로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를 받았다.
2.3. 인목대비 폐비 반대
광해군 때 이이첨이 모후(母后)인 인목대비를 서인(庶人)으로 강등시키려고 유희경에게 상소(上疏)를 올리라고 협박했으나, 유희경은 이를 거절하고 절의를 지켰다. 인조가 왕위에 오른 뒤에는 이러한 절의가 높이 평가되어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품계가 올랐고, 80세 때 가의대부(嘉義大夫)를 제수받았다.
2.4. 도봉서원과의 인연
평소 조광조를 흠모했던 유희경은 남언경이 도봉서원을 창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실질적으로 서원을 운영하였는데, 사람들은 유희경이 도봉의 산수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노년을 마칠 계획을 마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는 죽은 뒤 도봉서원 아래에 부인과 함께 안장되었다.
3. 작품 세계
박순에게 당시(唐詩)를 배웠다. 같은 천인 신분으로 시에 능했던 백대붕과 함께 풍월향도(風月香徒)라는 모임을 만들어 주도했다. 시는 한가롭고 담담하여 당시(唐詩)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허균이 《성수시화》(惺叟詩話)에서 유희경을 천인으로서 한시에 능통한 사람으로 꼽았다.
문집으로 《촌은집》(村隱集) 3권이 전한다.
4. 가계
유희경의 할아버지는 유도치(劉道致)이다. 아버지는 유업동(劉業仝)이며, 어머니는 배씨(裵氏)이다. 아우는 유희운이다.
* 처: 정부인 허씨(許氏)
* 장남: 유순민(劉舜民)
손자: 유자량(劉自亮)
* 차남: 유우민(劉禹民)
* 삼남: 유성민(劉聖民)
* 사남: 유사민(劉士民)
* 막내: 유일민(劉逸民)
손자: 유자욱(劉自勗)
*** 증손자: 유태웅(劉泰雄)
현손자: 유석겸(劉錫謙)
4.1. 부모
아버지는 1557년에 사망한 유업동(劉業仝)이며, 어머니는 배씨(裵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