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옥
1. 개요
윤정옥은 일제강점기 강원도 고성에서 출생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인물이다.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및 영문학과 교수를 역임하며, 1980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 조사와 해결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결성에 참여하고,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조사하는 등 여성 운동과 위안부 문제 해결에 힘썼다. 그러나 아시아 여성 기금 수령을 반대하며 위안부 피해자들과 갈등을 겪었으며,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해설과 주석 등이 있으며, 유관순상과 한국여성지도자상을 수상했다.
| 이름 | 윤정옥 |
|---|---|
| 원어명 | 尹貞玉 |
| 로마자 표기 | Yun Jeong-ok |
| 출생일 | 1925년 |
| 국적 | 대한민국 |
| 직업 | 영문학자, 인권운동가 |
| 활동 기간 | 알려지지 않음 |
|---|
| 종교 | 알려지지 않음 |
|---|---|
| 배우자 | 알려지지 않음 |
| 상훈 | 알려지지 않음 |
| 웹사이트 | 알려지지 않음 |
-
여자 교육자 -
김활란
김활란은 대한민국의 교육자이자 여성운동가이며 친일반민족행위자로서,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며 여성 교육에 기여했으나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로 비판받았다. -
여자 교육자 -
메리 스크랜튼
메리 스크랜튼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선교사로, 이화학당을 설립하여 여성 교육에 기여하고 여러 학교와 병원을 지원하며 한국 사회 발전에 헌신하다 1909년 사망했다. -
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 -
박래군
박래군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생 박래전의 죽음을 계기로 인권 운동에 참여하여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사무국장, 인권운동사랑방 사무국장 및 정책실장,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3국 국장, 다산인권재단 상임이사,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및 소장, 서울특별시 인권위원회 전문위원 및 부위원장, 2014년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이다. -
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 -
김여진
김여진은 1998년 영화 데뷔 후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고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2000년대 후반부터는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배우이다. -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 -
정태인
정태인은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하고 참여정부에서 경제 정책에 영향을 미쳤으나 행담도 개발 사업 논란으로 물러난 후, 한미 FTA를 비판하고 진보신당 창당에 참여한 경제학자이자 대학교수, 정치인이다.
2. 생애
1925년 일제강점기 강원도 고성군 외금강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이화여자전문학교(현재의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했으나, 학교 측의 강요로 정신대 자원서를 쓴 직후 아버지의 권유로 자퇴하고 가족과 함께 금강산으로 피신하였다. 해방 후 재입학하여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1953년 이화여자대학교 강사가 되었고, 1958년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 교수가 되었다.
1980년 일본군 '위안부' 조사를 시작하였다. 1988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주최 세미나에서 정신대 답사 보고를 하였고, 이후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 정신대연구위원회를 설치하였다. 1990년 한겨레신문에 정신대 취재기를 게재하였다. 같은 해 11월 16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결성하고 공동 대표가 되었다. 2006년 베트남을 방문하여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를 조사하기도 하였다. 이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지도위원으로서 활동하였다.
1991년 일본 중의원 의원 회관에서 일본사회당 도이 다카코 여성 비서로부터 활동비 명목으로 수십만 엔에서 백만 엔 가량의 돈을 영수증 없이 받기도 하였다.
1994년 일본 무라야마 총리의 위안부 보상 성격의 아시아여성기금 위로금 수령 문제로 당시 위안부 피해 생존자 46명 중 33명과 크게 불화가 있었다.
2000년-2001년 여성국제전범법정 공동 주최자였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1925년 강원도 고성군 외금강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이화여자전문학교(현재의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했으나, 학교 측의 강요로 정신대 자원서를 쓴 직후 아버지의 권유로 자퇴하고 가족과 함께 금강산으로 피신하였다. 해방 후 재입학하여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1953년 이화여자대학교 강사가 되었고, 1958년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 교수가 되었다.
2.2. 여성운동 및 위안부 문제 해결 활동
1980년 일본군 '위안부' 조사를 시작하였다. 1988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주최 세미나에서 정신대 답사 보고를 하였고, 이후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 정신대연구위원회를 설치하였다. 1990년 한겨레신문에 정신대 취재기를 게재하여 위안부라는 존재를 한국 여론에 알렸다.
1990년 11월 16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결성하고 공동 대표가 되었다. 2006년 베트남을 방문하여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를 조사하기도 하였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지도위원으로서 활동하였다.
1991년 일본 중의원 의원 회관에서 일본사회당 도이 다카코 여성 비서로부터 활동비 명목으로 수십만 엔에서 백만 엔 가량의 돈을 영수증 없이 받기도 하였다.
1994년 일본 무라야마 총리의 위안부 보상 성격의 아시아여성기금 위로금 수령 문제로 당시 위안부 피해 생존자 46명 중 33명과 크게 불화가 있었다. 1996년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는 윤정옥이 "일본군이 젊은 여성들을 학교에 모아 강제 연행해 갔다"고 주장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1997년 한 세미나에서 "아시아 여성 기금을 받으면 공창이 된다", "아시아 여성 기금의 돈을 받는 것은 다시 더러운 돈으로 몸을 파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전 위안부 할머니들을 압박하여 수령 거부를 강요했다. 1998년 11월 18일 수요집회에서 아시아 여성 기금을 받으려는 한국인 위안부들의 행위는 한국 정부, 한국 국민, 정대협에 대한 배신이라고 발언했다.
2000년-2001년 여성국제전범법정 공동 주최자였다.
2004년 고 심미자 등 전 위안부 13명은 정대협과 나눔의 집을 상대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대협을 "위안부 문제를 구실로 자신들의 부귀영화만을 누리고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고령의) 전 위안부들을 역사의 무대에 구걸하는 사람으로 팔아 사리사욕을 채워 온 악당"이라고 규탄했다.
2020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전 대표인 윤미향을 둘러싼 전 위안부들의 고발, 각종 부정 의혹과 관련하여 "정대협은 처음부터 '정치와는 얽히지 않는다'는 합의 하에 출발했다", "단체가 나서서 돈을 모으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실정을 알리고 할머니들을 돕겠다는 단체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1992년에 시작된 수요 집회 초기에도 모금 활동은 전혀 없었다"며 현재의 정의연과 윤미향을 비판했다.
3. 논란
윤정옥은 1980년부터 국내외에서 일본군 '위안부' 조사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0년에는 그 기록을 한겨레신문에 게재하여 위안부라는 존재를 한국 여론에 알렸다。
1996년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는 윤정옥이 "일본군이 젊은 여성들을 학교에 모아 강제 연행해 갔다"고 주장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윤정옥은 아시아 여성 기금에 반대하며, 기금을 받으려는 위안부들을 모욕하고 방해해 왔다. 2020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전 대표인 윤미향을 둘러싼 전 위안부들의 고발, 각종 부정 의혹과 관련하여 "정대협은 처음부터 '정치와는 얽히지 않는다'는 합의 하에 출발했다", "단체가 나서서 돈을 모으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실정을 알리고 할머니들을 돕겠다는 단체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3.1. 아시아여성기금 관련 논란
1996년의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는 윤정옥이 "일본군이 젊은 여성들을 학교에 모아 강제 연행해 갔다"고 주장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윤정옥은 아시아 여성 기금에 반대하며, 기금을 받으려는 위안부들을 모욕하고 방해해 왔다. 2004년 고 심미자 등 전 위안부 13명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나눔의 집을 상대로 "모금 행위 및 데모 동원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 전에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대협을 "위안부 문제를 구실로 자신들의 부귀영화만을 누리고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고령의) 전 위안부들을 역사의 무대에 구걸하는 사람으로 팔아 사리사욕을 채워 온 악당"이라고 규탄했다.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에서 전 위안부들에게 각 5을 지원한 것에 대해, 윤정옥은 1997년 한 세미나에서 "아시아 여성 기금을 받으면 공창이 된다", "아시아 여성 기금의 돈을 받는 것은 다시 더러운 돈으로 몸을 파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전 위안부 할머니들을 압박하여 수령 거부를 강요했다. 1998년 11월 18일 수요 집회에서 아시아 여성 기금을 받으려는 한국인 위안부들의 행위는 한국 정부, 한국 국민, 정대협에 대한 배신이라고 발언했다.
아시아 여성 기금 이사였던 시모무라 미츠코는 "정대협 멤버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한 위안부 할머니가 '숙소에 갇혀 밖에 나가지 못하게 되어 싫다'고 전화한 적도 있습니다. 할머니들은 속으로는 정대협을 원망했지만, 정대협이 무서워서 공개적인 자리에 나오라고 하면 나가고, 데모를 하라고 하면 데모를 했습니다. 불쌍한 약자들이었습니다"라고 증언했다。
아시아 여성 기금을 희망하면 매춘부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위안부들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젊었다면 입을 벌려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게 하고 싶다"며 분노를 터뜨렸으며, 정대협으로부터 오히려 인권을 유린당해 왔다고 비판했다. 정대협은 실제로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으면 자발적 공창이 된다고 주장하며, 아시아 여성 기금을 받은 7명의 전 위안부에 대해 한국 정부의 보조금 수령을 방해하고, 협박과 공갈을 일삼았다는 사실을 전 위안부들이 고발했다。
2020년 정대협의 후신 단체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전 대표인 윤미향을 둘러싼 전 위안부들의 고발, 각종 부정 의혹과 관련하여 "정대협은 처음부터 '정치와는 얽히지 않는다'는 합의 하에 출발했다", "단체가 나서서 돈을 모으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실정을 알리고 할머니들을 돕겠다는 단체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1992년에 시작된 수요 집회 초기에도 모금 활동은 전혀 없었다"며 현재의 정의연과 윤미향을 비판했다。
3.2. 정의기억연대 및 윤미향 관련 비판
1996년의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는 윤정옥이 "일본군이 젊은 여성들을 학교에 모아 강제 연행해 갔다"고 주장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아시아 여성 기금에 반대하며, 기금을 받으려는 위안부들을 모욕하고 방해해 왔다. 2004년, 고 심미자 등 전 위안부 13명이 정대협과 나눔의 집을 상대로 "모금 행위 및 데모 동원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 전에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대협을 "위안부 문제를 구실로 자신들의 부귀영화만을 누리고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고령의) 전 위안부들을 역사의 무대에 구걸하는 사람으로 팔아 사리사욕을 채워 온 악당"이라고 규탄했다.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에서 전 위안부들에게 각 5000000JPY을 지원한 것에 대해, 윤정옥은 1997년 한 세미나에서 "아시아 여성 기금을 받으면 공창이 된다", "아시아 여성 기금의 돈을 받는 것은 다시 더러운 돈으로 몸을 파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전 위안부 할머니들을 압박하여 수령 거부를 강요했다. 1998년 11월 18일 수요집회에서 아시아 여성 기금을 받으려는 한국인 위안부들의 행위는 한국 정부, 한국 국민, 정대협에 대한 배신이라고 발언했다. 아시아 여성 기금 이사였던 시모무라 미츠코는 "정대협 멤버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한 위안부 할머니가 '숙소에 갇혀 밖에 나가지 못하게 되어 싫다'고 전화한 적도 있습니다. 할머니들은 속으로는 정대협을 원망했지만, 정대협이 무서워서 공개적인 자리에 나오라고 하면 나가고, 데모를 하라고 하면 데모를 했습니다. 불쌍한 약자들이었습니다"라고 증언했다。아시아 여성 기금을 희망하면 매춘부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위안부들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젊었다면 입을 벌려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게 하고 싶다"며 분노를 터뜨렸으며, 정대협으로부터 오히려 인권을 유린당해 왔다고 비판했다. 정대협은 실제로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으면 자발적 공창이 된다고 주장하며, 아시아 여성 기금을 받은 7명의 전 위안부에 대해 한국 정부의 보조금 수령을 방해하고, 협박과 공갈을 일삼았다는 사실을 전 위안부들이 고발했다。
2020년, 정대협의 후신 단체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전 대표인 윤미향을 둘러싼 전 위안부들의 고발, 각종 부정 의혹과 관련하여 "정대협은 처음부터 '정치와는 얽히지 않는다'는 합의 하에 출발했다", "단체가 나서서 돈을 모으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실정을 알리고 할머니들을 돕겠다는 단체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1992년에 시작된 수요 집회 초기에도 모금 활동은 전혀 없었다"며 현재의 정의연과 윤미향을 비판했다。
4. 저서
* 《미국 자연주의와 셔우드 앤더슨》 (한국영어영문학회 간행, 1970년)
*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해설과 주석 (탐구당, 1984년)
* 《조선인 여성이 본 '위안부 문제': 내일을 함께 만들기 위해》 (윤정옥 외 삼일서방, 1992년) (한겨레신문 연재 수록)
* 《증언·강제 연행된 조선인 군 위안부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아카시 서점 1993) (조사·편집 참여)
* 《평화를 희구하며: '위안부' 피해자의 존엄 회복을 향한 걸음》 (하쿠사 서점, 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