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택중
1. 개요
윤택중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한국민주당 창당에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2·4 파동 당시 야당 의원으로서 자유당 정권에 저항했으며, 대한민국 제2, 4, 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또한, 문교부 장관과 단국대학교 학장을 지냈으며, 신민당 지도위원, 민족통일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 의장 등을 역임하며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에 헌신했다.
-
단국대학교 학장 -
장도빈
일제강점기 언론인이자 역사학자, 교육자였던 장도빈은 《대한매일신보》 논설위원으로 항일 의식을 고취하고 역사 연구로 식민사관에 맞섰으며, 광복 후에는 《민중일보》를 창간하고 단국대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학장을 지냈다. -
단국대학교 학장 -
김정실
김정실은 보성전문학교 졸업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실천원양성소 강사, 단국대학교 재단설립 이사, 부학장, 제2대 학장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신익희와 함께 임정 산하 정치공작대 총무를 맡았으며 제2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
대한민국의 문교부 차관 -
서명원
서명원은 독립운동가 서재필의 종손으로, 교육학자이자 대학교수, 교육행정 관료로서 서울대학교 교수, 문교부 차관, 여러 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 문교부 장관, 학술회 회원, 교육개혁심의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
대한민국의 문교부 차관 -
홍종철 (1924년)
홍종철은 한국 전쟁에 참전한 군인 출신으로, 5·16 군사 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 겸 문교사회위원장, 박정희 정부의 대통령경호실장, 문교부 차관, 공보부 장관, 문화공보부 장관, 문교부 장관을 역임한 정무직 공무원이다. -
장면 내각의 국무위원 -
주요한
주요한은 일제강점기 시인이자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며, 친일 행위로 인해 논란이 있으며, 국회의원과 상공부 장관을 역임했다. -
장면 내각의 국무위원 -
권중돈
권중돈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무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민주당, 신민당 등 야당에서 활동하며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2. 생애
2.1. 독립운동과 한국민주당 창당 (1945년 이전)
윤택중은 1945년 9월 16일 서울 천도교기념관에서 1,600여 명의 발기인이 모여 창당된 한국민주당(약칭 한민당)에 연락부의 일원으로 참여하였다. 한국민주당 창당대회에는 고려민주당, 조선민족당, 한국국민당, 국민대회준비회, 충칭(重慶)임시정부 및 연합군환영준비위원회 등의 정당·단체가 참여하였다.
이들 정당·단체의 민족지도자들은 1945년 9월 4일 서울 종로국민학교에서 대표 82명이 모여 신당발기총회를 열고 당명을 '한국민주당'으로 결정하였으며, 9월 8일에는 한국민주당 발기인 1,000여 명 명의로 조선인민공화국 타도성명서를 발표하고 충칭임시정부 절대지지 태도를 밝혔다.
9월 21일과 22일 양일간 총회위임에 따라 지역을 안배한 조선민족당·한국국민당 공동비율로 8인의 총무(후일 1인 추가)와 사무국 외 각 부서와 중앙감찰위원 30인을 선출하여 당의 체제를 갖추고 송진우를 수석총무로 선출하였다.
한국민주당은 조선민족의 자주독립국가 완성, 민주주의 정체수립, 근로대중의 복리증진, 민족문화 앙양 및 세계문화 공헌, 국제헌장 준수 및 세계평화 확립을 당의 정강으로 삼았다. 또한, 국민기본생활 확보, 호혜평등 외교정책 수립, 언론·출판·집회·결사 및 신앙의 자유, 교육 및 보건의 기회균등, 중공업주의 경제정책 수립, 토지제도의 합리적 재편성, 국방군 창설 등을 정책으로 내세웠다.
한국민주당의 주요 인물로는 영수(領袖)에 이승만, 김구, 이시영 등이 있었고, 중앙집행위원 수석총무는 송진우 였다. 총무는 원세훈, 백관수, 서상일 외 5인이였으며, 연락부에는 부장 최윤동과 서상천, 김산, 윤택중, 김법린 외 5인이 참여하였다.
2.2. 정치 활동 (1945년 ~ 1961년)
2·4 파동(二四波動)은 1958년 12월 24일 자유당 정권이 무술 경위를 동원하여 야당 의원들을 폭력으로 몰아낸 가운데 새로운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여러 법안들을 통과시킨 일련의 정치 파동이다. 처리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이 부상을 입었으며, 국가보안법 통과가 초점이었으므로 '보안법 파동'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으로 반항하던 야당 의원 중 윤택중을 비롯하여 김상돈, 조일환, 허윤수, 유성권, 전영석, 박창화, 구철회, 김재곤, 김응주, 박순천, 조일재 등 12명의 의원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2.1. 2.4 파동 (1958년)
2·4 파동(二四波動)은 1958년 12월 24일 자유당 정권이 무술 경위를 동원하여 야당 의원들을 폭력으로 몰아낸 가운데 새로운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여러 법안들을 통과시킨 일련의 정치 파동이다. 처리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이 부상을 입었으며, 국가보안법 통과가 초점이었으므로 '보안법 파동'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으로 반항하던 야당 의원 중 윤택중을 비롯하여 김상돈, 조일환, 허윤수, 유성권, 전영석, 박창화, 구철회, 김재곤, 김응주, 박순천, 조일재 등 12명의 의원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3.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 (1961년 이후)
4. 경력
전라북도 교육청 학무국장과 전주명륜대 학장을 역임하였다. 문교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1954년 단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하였다. 제2대, 제4대, 제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960년 문교부 정무차관을 거쳐 문교부 장관이 되었다. 1961년 5월 20일 5·16 군사 정변으로 사퇴하였다. 1971년 신민당 지도위원회 부의장을 지냈다. 민족통일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를 역임하였다. 1993년부터 2002년까지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 제4대 의장을 역임하였다.
5. 역대 선거 결과
| 선거명 | 대수 | 직책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 | 2대 | 국회의원 | 전북 익산군 을 | 민주국민당 | 4,193표 (13.70%) | 1위 | 당선 | 초선 |
| 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 | 3대 | 국회의원 | 전북 익산군 을 | 민주국민당 | 7,940표 (21.20%) | 3위 | 낙선 | |
|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 | 4대 | 국회의원 | 전북 익산군 을 | 민주당 | 17,079표 (40.85%) | 1위 | 당선 | 재선 |
| 대한민국 제5대 국회의원 선거 | 5대 | 국회의원 | 전북 익산군 을 | 민주당 | 17,226표 (45.45%) | 1위 | 당선 | 3선 |
| 대한민국 제6대 국회의원 선거 | 6대 | 국회의원 | 전북 이리시·익산군 | 민주당 | 17,919표 (22.30%) | 2위 | 낙선 | |
| 대한민국 제7대 국회의원 선거 | 7대 | 국회의원 | 전북 이리시·익산군 | 신민당 | 41,696표 (44.67%) | 2위 | 낙선 | |
| 대한민국 제9대 국회의원 선거 | 9대 | 국회의원 | 전북 군산시·옥구군·이리시·익산군 | 민주통일당 | 23,801표 (12.87%) | 4위 | 낙선 |